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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clint 2024. 8. 30. 20:13

 

 

 

평범한 어느 날 오후, 차를 운전하던 한 남자가 차도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다른 남자의 운전을 받아서 집에 무사히 도착한다. 
그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그를 대신 운전한 남자도 간호한 아내도, 
남자가 치료받기 위해 들른 병원의 환자들도, 
그를 치료한 안과 의사도 모두 눈이 멀어버린다.
정부는 백색실명 현상을 전염병으로 여기고 눈먼 자들을 
빈 정신병동에 격리수용하기에 이른다.

처음 6명이 수용된 이곳에 며칠 후 240명이 들어오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병동에서 오직 의사의 아내만이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한다. 그녀는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상태로 남편을 따라온 것이다. 
군인들은 자신들도 전염될까봐 사람들을 총으로 무자비하게 죽이고, 
격리자들 중 한 무리는 자신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독점한 채 
돈과 귀중품을 가져오면 식사를 준다고 한다. 
그리고 금품이 없자 각 숙소 별로 여자를 데려오라고 한다. 
의사의 아내는 그들 중 우두머리를 가위로 찔러 살해한다. 
그리고 한 여자가 숨겨온 라이터로 정신병원에 불을 낸다. 
정신병원 밖으로 나가자, 병동을 지키던 군인들은 이미 없고 
수용되었던 사람들은 병동 밖으로 뛰쳐나온다. 
군인들 역시 모두 눈이 멀었던 것이다. 아니 전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어서 음식을 찾으러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아무데나 배설을 한다. 
개들은 길거리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뜯어먹는다.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인 의사, 색안경 낀 여자, 
사팔뜨기 소년,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 등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그들은 음식을 찾아 먹고, 몸을 씻고 
잠을 청한다. 그러던 어느날, 맨 처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남자의 시력이 
회복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눈먼 자들의 시력 역시 돌아온다.

동명 영화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 본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던지고 있는 사라마구의 문학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상황, 즉 '만약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이 보게 된다면'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그에게 처음이 아니다. 이미 『돌뗏목』에서 사라마구는 가능(현실)과 불가능(상상)을 서로 교차시키며, 포르투갈이 유럽 대륙에서 떨어져나와 대서양에 표류하는 것과 같은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미래를 가상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사라마구의 대표적인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로 여 겨지는 이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은 심층적 알레고리를 바탕으 로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독자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호머의 오디세이아처럼 여행하게 된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뗏목일 뿐이다'라고 외치며 유럽연합 사이에서 신음하는 현재의 포르투갈과 포르투갈 국민의 정체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사라마구를 만나볼 수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돌뗏목』과 마찬가지로 가상적 설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며 차 안에 있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눈이 머는 현상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퍼져간다. 눈이 멀게 되는 이상한 전염병은 급속히 확산되어 도시 전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이러한 설정은 자연의 재앙으로 현대 사회의 시민들을 유랑하게 만든 『돌뗏목』과 같다. 그러나 『돌뗏목』은 이베리아 반도를 배경으로 한 한정적 설정이기에 타문화의 사람들에게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면이 있다. 반면에 『눈먼 자들의 도시』 는 비록 그 출발점이 『돌뗏목』과 같은 과감한 상상력에 기인하고 있지만 어떠한 국가, 어떠한 민족이 아니라 이 세상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 어떤 특정한 시간에도 위치하지 않는, 바로 과거일 수도, 오늘일 수도, 내일일 수도 있는 시간 속에 위치한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인물을 통해 인간이란 종(種)이 지니는 모순된 세계가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이루어 지고 있다. 이 알레고리를 통한 사라마구의 새로운 상상력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무책임한 윤리의식과 이에 대한 무지의 고발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눈이 멀었다'라는 사실 그 자체이다. '눈이 멀었다'라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제 소유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존 양식으로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 었을 뿐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우리의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 하는 장님이기에 눈을 비벼 눈곱을 뗀 후 세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어가면 갈수록 우리도 모르게 작가의 담론에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조금씩 인습과 편견, 고정 관념과 정형화된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해방된다는 것은 다시금 눈을 뜨는 것이다. 눈을 뜰 때에야 우리는 "내 목소리가 바로 나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소."라고 절규하는 텍스트의 목소리가 진정 가슴에 와닿게 된다. 이 소리는 단순히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볼 수 없기에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기는 목소리, 바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재앙에 대한 놀람과 공포,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드러내며 우리의 무지를 질타하는 사라마구의 목소리인 것이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느 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의사 부인처럼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하고 생각하며 갑작스레 공포에 질리게 될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렇게 '봄(시각)'과 '말함(청각), 아니 그 반대로 실명과 침묵이란 장치를 통해 무책임한 윤리 의식과 붕괴된 가치관,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현대사회를 잘 암시해 주고 있는 소설이다. 현대 사회의 모습은 작품 전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눈먼 사람들의 수용소 격리, 이들에게 무차별하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의 폭력, 전염병을 억제하기 위해 수용조치를 내린 냉소적인 정치인, 눈먼 사람들 각자가 보여주는 이기주의, 범죄 집단을 캐리커처한 듯한 무장 그룹, 도시에 넘치는 쓰레기 등. 이같은 장면들은 나치 시대의 유대인 수용소, 카뮈의 <페스트>, 재앙에 직면한 현대 도시, 눈먼 자들이 다른 눈먼 자들을 인도하는 기독교적 사랑 등과 같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작품을 떠올리게 하며 한층 더 그 효과를 더하고 있다.  격리 수용된' 눈먼 자들이 선동에 이끌려 쉽게 폭력을 저지르는 만행은 섬뜩할 정도로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야만적인 폭력에 관한 교과서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인간의,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만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동시에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삶의 가치를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총으로 무장한 집단(군인이나 나중에 들어온 눈먼 자들)들이 저지르는 폭력은 사회관계와 사회의 계층화, 파괴되어 가는 도덕과 체념에 대한 갈등, 현대인의 정신 이상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며 인간의 모순과 비인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는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가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관계의 회복은 살아있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연대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휴머니즘이다. 바로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인 것이다. 특히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눈먼 자 들의 도시를 따뜻한 인간 사회로 만드는 이러한 연대 의식의 축으로, 인간의 선한 면을 대표하고 있다.

José Saramago


포르투갈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는 예순에 가까운 나이인 1980년 『바닥에서 일어서서』를 발표하여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의 큰 호평 속에 문단의 주목을 뒤늦게 받은 대기만성형의 작가이다. 그는 특히 80년대 들어 역사와 환상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환상역사소설'이란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하며 포르투갈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실제 그의 작품들은 문장부호가 무시된 채 격류가 흐르는 듯한 문체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사회에서 잃어 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을 통해 삶과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8년 스웨덴 한림원이 현대 문학의 한 커다란 흐름인 마술적 리얼리즘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사라마구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것은 이처럼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문학 언어의 추구와 함께, 조국 포르투갈의 희박해져 가는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나아가 이성에 치우쳐 윤리의식을 상실한 현대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는 그의 오랜 문학 작업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라마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전에 이미 포르투갈어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포르투갈 최 고 시인의 이름을 딴 '까몽이스상'(1995년)을 받았다. 또 국내 외의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몇 년 전부터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듭 거론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성을 일찍부터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상업적으로도 자신의 작품 대부분이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에 수많은 독자를 확보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포르투갈 문학과 지성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추앙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1991년 발 표한 『예수의 제2복음』으로 인해 정부와 사회의 박해를 받아 조국 포르투갈을 떠나게 되는 슬픔을 겪는다. 포르투갈작가협 회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 예수의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사라마구는 가톨릭 교회와 보수층으로부터 교회를 위협 하는 제목과 내용을 지닌 작품이라고 거센 비난을 받게 된다. 정부는 1992년 유럽문학상 후보로 사라마구를 추천하는 것을 거부하기까지 했으며, 결국 그는 1년 뒤인 1993년 포르투갈을 떠나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 그중에서도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열풍이 부는 란사로떼 섬으로 이주하게 된다.
사라마구의 작품 세계의 특징은 실험적 문학정신과 사회와 개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다. '시간', '초자연', '담론의 연속성', 그리고 '여행'이란 네 개의 축, 다시 말해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빗댄 현재의 재해석, 사실적 세계를 벗어나지는 않으면 서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듯한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요소, 문장부호의 변화와 생략을 통한 새로운 문체의 시도, 마지막으로 외부 세계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통한 인간 내부세계의 여행이란 네 개의 축은 사라마구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는 장치로, 사라마구는 이를 통해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세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마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 부호를 생략하며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제 면에서 보았을 때 사라마구는 포르투갈의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며 유럽연합(EU)의 틈바구니에 끼여 신음하는 조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해 왔다. 또한 권위와 억압에 대한 개인의 저항, 파괴되어 가는 현대인의 윤리 의식과 무지 등을 지적하며 사회와 개인의 갈등에 대한 치열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가령 1983년 발표하여 그에게 국 제적 명성을 처음으로 안겨준 『수도원의 비망록 」이나 『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위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싸움이나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체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렇게 사라마구가 사회와 개인의 갈등에 대한 치열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독재와 혁명, 아프리카에서의 무모한 식민지 전쟁 등으로 인간존재를 한없이 누추하게 만들어왔던 20세기 포르투갈 역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