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곽병창 '꿈속에서 꿈을 꾸다'

clint 2024. 8. 4. 10:21

 

 

 

숲속 도깨비들의 마을, 역병이 물러간 뒤의 잔치가 한창인데,

갑자기 요양원에서 홀로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노파의 소식이 들려온다.

노파의 돌보미 AI 보람이와 꼭두가 급히 현장으로 달려가고,

장면은 급하게 일제강점기말 전주 인근의 한 마을로 돌아간다.

마을 친구들인 만배는 징용을 나가고, 대현, 병주는 징병에 끌려간다.

이들 친구인 판식은 대현 부친의 도움으로 징병을 피해 마을에 남는다.

대현의 여동생 경순은 만배의 어린 아내 필례, 병주의 연인 정희 등과

함께 이들을 배웅한다.

세월이 흘러 해방이 되었어도 이들 세 청년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대현은 관동군에 자원 입대한 뒤 탈출하여 독립군이 되었다가 소식이 없고,

만배는 사할린 탄광까지 흘러갔다가 남북이 분단된 뒤 고향에

돌아올 길이 끊긴다. 인도네시아 포로수용소의 군무원으로 근무했던 병주는

포로 학대 혐의로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가

결국 동경의 골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황판식은 육이오 전쟁의 와중에 자신의 은인이었던 경순 부친 박선생을

빨갱이라고 모함하고 나중에 그 집까지 차지한 채 살아간다.

박선생은 옥중에서 병사하고 그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충격과 슬픔에 못 이겨

죽고 만다. 박선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사 민의균은 자책감에 검사직을

사직하고 알콜 중독에 빠진다.

홀로 남은 경순은 가까스로 민의균 집의 비서로 들어가고 민의균은

그녀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채 죽어간다.

 

 

 

 

어느 해에 대현이 남파 공작원이 되어 잠시 마을을 다녀가지만

경순은 그를 만나지 못한다. 정희의 아들 기철은 황판식 밑에서

구사대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늦게야 사할린에서 소련 여인 까챠와

결혼한 뒤 아들까지 둔 만배는 홀로 돌아오지만 고향에 가지 못하고

동료 귀환자들과 함께 수용소 생활을 한다. 대현이 북한에서 낳은

아들 명국이 탈북하여 고모인 경순을 찾아오지만

경순은 그를 빨갱이라며 외면한다.

만배는 말년에 필례와 같이 살다가 한국에 찾아온 까챠와 아들을

다시 만난 뒤에 숨을 거두고, 황판식도 사고로 황망하게 죽는다.

명국은 집요하게 대북 전단을 날리는 무리들에게 홀로 반항하고

끌려가면서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한다.

요양원에서 보람이의 도움을 받으며 말년을 보내던 경순이

조카 명국을 찾아 재회한 뒤에 마지막 독백을 남긴다.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뒤엉키는 원망과 복수의

시간들이 지나고 마침내 화해의 시간이 다가온다.

숲속은 평화를 되찾고 잔치판이 흐드러지게 열리면서 막이 내린다.

 

 

 

 

작가의 글 - 곽병창

‘꿈속에서 꿈을 꾸다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배우들과 함께 꾸는 꿈으로 구현하고자 합니다.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국민적 정서와 연극을 통한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듬고, 나아가 이 작품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특히 창작극회가 그동안 제시해 왔던 사회적 이슈와 역사적 흐름을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창작극회가 면면한 연극 정신을 이끌고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는 추동력은 바로 극단 본연의 사명감과 배우들의 예술혼이 점철되었기 때문이라고 인식합니다. 이 작품은, 극단 창작극회의 창단공연인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1961, 박동화 작), <꼭두, 꼭두!>(1993, 곽병창 작), <상봉> (2003, 최기우 작), <, , 조부> (2019, 송지희 작) 등 전국,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들의 주요 등장인물을 한자리에 모아, 새롭게 창작한 것입니다.

 

 

 

창작극회 창립 60주년 기념으로 2022 12 16~18일에 한국 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처음 공연하였고, 2023년 대한민국연극제 본선(제주 블랙박스 Be-IN, 2023.6.16.)에서 공연하였다. 2023 12 K Theater Awards 베스트연극단체(작품)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