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폴라 보글 '외설적인'

clint 2024. 7. 2. 17:40

 

 

 

한 희곡에 대한 실화를 가상의 극단을 통해 풀어낸 작품이다. 
1906년 폴란드의 젊은 유대인 극작가 숄렘 아쉬는 
<복수의 신 The God of Vengeance>을 발표하지만 혹평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독일, 러시아, 터키, 슬로바키아의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올리고 1923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진출한다. 
그러나 유대인의 삶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같은 동포한테 고발당하고 
결국 출연진과 제작자는 외설죄로 체포되고 공연은 중단된다. 
고향으로 돌아간 극단은 때맞춰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미국에 남은 작가는 그 현실 앞에 절망한다. 
노년의 작가에게 한 유대인 젊은이가 찾아와 
그의 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지만 
작가는 매몰차게 거부한다. 
떠나는 작가 앞에 그가 쓴 작품 속 두 소녀가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레믈의 대사처럼, "한편의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대인 작가인 숄렘 아쉬(Sholem Asch)가 1906년에 창작한 <복수의 신(The God of Vengeance)>이 그것이다. 이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과정으로 유럽을 거쳐 미국에까지 공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잊혀져 갔는지를 연대기적으로 풀어낸다. 이렇게만 보면 과거의 연극 한편에 주목하여 그것을 해체하고 재창조해서 지금의 무대에 다시 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될 수 없는 것이 «복수의 신» 자체가 많은 화두를 담고 있는 독특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첫째, <복수의 신>은 민족의 고유성 혹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유대인 작가 숄렘 아쉬가 유대인의 언어(이디시어)로 창작한 유대인의 이야기라는 점이 그것인데, 어디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표(浮漂)하던 당시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을 핍진하게 형상화하면서 고민하게 했다는 점이다. 둘째, 동성애를 전면화했다는 점이다. <복수의 신>의 주인공인 리프켈레와 망케는 모두 여성이고,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 시대에 유대인이 스스로 유대 포주와 창녀를 형상화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동성애를 묘사했다는 것 역시 문제적이었다. 셋째, <복수의 신>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검열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을 지워버린 미국공연에서 배우들이 외설죄 판정을 받았던 실재 사건은 예술과 동성애에 대한 상업의 논리 혹은 사회적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정리하자면, <복수의 신>과 이 공연을 둘러싼 당대인의 인식과 공연환경은 유대인과 동성애, 혐오와 차별, 검열과 사회적 편견 등 다양한 키워드들을 품고 있었으며, 폴라 보글은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외설적인»으로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외설적인 원제: INDECENT> 에서 숄렘 아쉬의 <복수의 신>과 그것이 공연되는 환경을 중심에 두면서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는 한편으로 구성의 측면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매우 세련되게 덧씌웠다. 죽어서 재가 된 배우들이 살아나 앞으로 진행될 모든 장면들을 연기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기본구성으로 설정되어 있고, 거기서 복수의 신의 연대기에 따라 연극을 창작하고 공감하고 배척하고 검열하는 사람들의 축이 기본 구성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안쪽에는 <복수의 신> 공연 장면들이 저리잡는다. <복수의 신>, 그것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 드리고 모든 사람을 연기하는 이미죽은 극단원들, 이렇게 점차 범주가 확장되는 세 겹의 구성을 취하면서 무겁고 다양한 키워드들을 서로 연관지으며 강조하고 있다. 거기에, 망케와 리프켈레로 대표되는 두 여자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장면 사이사이에 각자 다른 인물로 배치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을 보편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복수의 신>에서는 2막에 해당하는 비 내리는 장면이 «외설적인»에서는 가장 마지막 장면에 배치된 것은 작가의 이런 의도와 계산에 따른 것이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두 사람의 관계와 사랑은 그렇게 마지막에 아름다움의 절정이 되어 '이것이 정말 외설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외설적인'이라는 제목의 역설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폴라 보글의 영리한 감각은 희곡이 취하고 있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검열, 혐오, 차별, 학살, 동성애 등등 단어 하나의 무게만으로도 엄청난 키워드임에도 이 희곡은 절대 무겁지 않다. 왜냐하면 1900년대에서 1920년대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인기를 누린 대중극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캬바레', 미국의 '보드빌' 등 명칭은 다르지만 무희들의 춤, 노래, 소극 등으로 구성된 버라이어티 쇼라는 공통적 속성을 가진 대중극이 이 시기의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작가는 1906년 창작된 복수의 신이 어떤 양식을 취했는가는 상관없이 <외설적인 원제: INDECENT>에 과거대중국 양식을 적용하여 노래와 춤, 다양한 쇼의 요소들을 활용함으로써 경쾌하고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외설적인 원제: INDECENT»이 겹겹이 쌓은 구성을 통해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전개되는 것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공연 양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결국 «외설적인 원제: INDECENT»은 <복수의 신>이라는 100여 년 전의 연극을 매개로 하여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여러 키워드들을 가장 연극적으로 펼쳐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