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태원 소설, 안종관 각색 '객사(客舍)'

clint 2024. 5. 15. 16:20

 

 

 

동학란에 역적으로 몰린 최대감의 부인 현순은 이름을 벽순으로 바꾸고 그 집 하인 판돌과 위장 부부가 되어 자식들의 이름도 판돌의 자식들 이름을 따서 고치고 멀리 떠나 살게 된다10여년이 흘러 세상에서는 모두 부부로 알고 자식들도 그렇게 알면서 교지기의 일을 맡고 있다. 최대감의 자식인 대달이, 중달이, 순달이 그리고 인달이, 판돌이 자식인 영달이, 소달이 이들 사이의 유일하게 알고 있는 마을 유림회 지도자 황보관은 최대감의 유복 여인 인달을 자기가 데려가 공부를 더 시키려고 마음먹고 있으나 벽순은 반대한다. 영달의 남편 안목수는 판돌을 찾아와 향교 뒤 오동나무를 달라고 조른다. 완강히 거절하는 판돌의 뜻을 알과 안목수의 얼굴에 검은 마음이 도사리기 시작한다안목수는 판돌의 허락도 없이 향교의 오동나무를 베어갔다. 이 오동나무가 읍내 거리에 나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판돌은 아연 실색한다. 이 소식은 드디어 유림회에 전해졌고 홍진사는 이 사실을 추궁한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판돌의 집을 부수고 벽순도 때린다. 한편 신사를 건립한다는 소식 때문에 황보관의 고민은 커진다. 안목수가 나타나 신사 건립은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뜻이 있다고 하면서 천망대와 향교는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벽순은 마을에서 집을 잃은 채 객사로 옮겨지고 판돌은 지서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신사 건립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속에 벽순 일가의 객사생활은 어렵게 이어진다. 판돌은 죽을 고문을 당하고 집으로 풀려나왔으나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자살을 한다이 마을을 떠나는 이 농민들이 많아지는 속에서도 대달은 열심히 일을 하며 각시를 맞게 된다.

 

 

 

신사 준공식 하루 전 날 영달은 신사에 목매달아 죽음으로써 문제는 커진다. 안목수는 모든 일을 뉘우치고 부인 영달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사공을 죽이고 신의주로 도망해 버린다영달이 신사에 목매달아 죽은 죄로 벽순은 모진 고문을 받는다. 일본인 서장은 영달의 죽음이 아니고 향교에서 죽었다고 위장하려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죄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벽순은 끝내 거부한다. 모진 고문 때문에 벽순은 귀가 먹고 눈이 안보이고 만신창이가 된다어머니 벽순은 경찰서에 붙잡혀 죽을 고문을 받는 가운데 집안 생활은 어려워만 간다. 자식들은 먹을 끼니를 이어 가질 못하고 죽으로 연명하며 겨우 살아간다. 중달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생쌀을 먹은 나머지 배가 터져 죽고 만다소달은 집안에 감춰 두었던 돈을 훔쳐 달아나고 대달은 열심히 일한 덕택으로 논을 5마지 구입했느나 일본놈의 억압에 빼앗기고 그 놈들에 맞아 죽는다. 어머니 벽순은 모진 고문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수레에 실려 집으로 옮겨진다. 그날 신사가 불타는 속에 벽순은 혼미한 정신속에 자식들을 찾으나 이미 제 정신이 아니고 인달이 만이 남아서 죽음을 향해 한많은 어머니 벽순의 모습을 지켜본다.

 

 

 

 

<객사>(1979)는 원고지 2 5백 매가 넘는 이태원의 장편소설을 350매의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인데, 원작자 이태원의 말대로 소설과는 다른 "완전히 하나의 창작품"이다. 이 희곡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영합한 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세력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영남의 보수적인 양반층 남성들과 동학의 만민평등사상에 투철한 여성들 사이의 갈등을 치밀한 구성과 생동감 있는 사투리로 그려냈다. 국립극단에서 이해랑 연출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했는데, 출연진을 보면 당시의 정상급 배우인 손숙, 김동원, 이호재, 심양홍, 이진수, 정애란, 백성희, 전무송, 권성덕, 장민호 등이 망라돼 있다.

극작가 안종관은 소설과는 달리, 신식 교육을 받은 인달이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인 벽순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켰다. 벽순은 남편인 최봉익 대감이 동학에 가담하여 처형된 다음 하인인 판돌과 부부가 되어 자신이 낳은 자식 넷과 판돌의 자식 둘을 모두 거두어 키운다. 반상의 구별이 엄연한 시대에 동학의 평등사상을 받아들여 15세 연상의 하인을 지아비로 삼아 이름마저 김현순에서 김벽순으로 바꾸고 양반댁 마님에서 향교의 고지기 아낙으로 변신한 그녀는 스스로 여성해방을 이룩한 혁명적인 여성이다. 그 때문에 벽순은 양반가문의 혈통과 체면에 집착하는 황보관 같은 유림들은 물론이고, 여전히 상전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 판돌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유림과 마을 주민들의 반발에도 향교 뒤 언덕의 천망대에 신사가 들어설 때 끝까지 버티며 저항하는 것은 벽순 일가다. 신사 건립에 앞장섰던 벽순의 사위 안목수가 아내인 영달이 신사에 목매어 자살한 다음 악질순사 장사공을 죽여 신사에 매달아 놓고 만주로 도망침으로써 결국 신사는 폐기되어 불타고 만다. 지역의 유림 대표인 황보관은 그가 흠모하는 최봉익의 유복녀인 인달을 데려다 공부시켜 며느리로 삼고 벽순 일가에게 논밭을 떼어주겠다고 끈질기게 회유하지만, 벽순은 완강하게 거부한다. 항일의식에 투철한 인달이 동경유학생인 황보관의 아들이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군수로 부임해온다는 소식에 실망하여 혼사를 거부하는 대목은 어쩌면 좀 부자연스럽고 관념적으로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벽순과 인달 모녀의 꼿꼿한 자세와 의기는 겉으로는 항일을 외치면서도 결국 시세에 영합하여 부귀와 영달을 추구하는 양반 유림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원작자와의 각색자의 대담 중에서)

李台元 원작가 : 정말 힘드셨을 거예요. 소설은 전 4부에 총 49장으로 나누어져서, 중요 등장인물만도 40여명에 달하는데, 그것을 350 여매의 희곡으로 압축하여 무대에 올리자면 상당한 부담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막상 완성된 희곡을 보니까 이건 완전히 하나의 창작품이더군요. 놀랐어요. 각색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겠어요. 원작에서나 자신도 몰랐던 점이 희곡에 사는 날카롭게 부각되어 번득이는 부분도 많았어요.
安鍾官 각색자 : 벽순의 삶과 동학정신의 연결을 특히 강조해서 희곡화했읍니다만, 특별한 의식과 사상이 있어서 애국자가 되는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주어진 시대의 삶을 정직하게 살 때, 그것이 곧 이웃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삶으로 직결된다는 하나의 표본이 될 만해요. 가족들의 죽음을 왜곡되고 욕되지 않게 하겠다는 단순한 정직이 일인들 스스로가 신사를 불태우게 만들지 않습니까? 인간은 한울님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든가 (人乃天), 개인이 사회적 일체로 전환되고, 모든 인간은 동등한 자유를 향유 한다든가同歸一体論), 사회적 차별없이 대인관계에서의 정직과 성실을 앞세우며 독립과 사회 정의를 위한 싸움에 앞장선다든가 (事人如天)하는 동학 정신이 그대로 벽순의 삶에 끈끈하게 구현되어 있읍니다. 
李台元 : 安선생이 희곡의 중심을 벽순의 삶에 집중시킨 것을 보고, 원작자 이상으로 작품 분석에 철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각색의 글 - 안종관

동학운동의 반봉건 반식민 저항정신이 객사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는데, 이해랑 선생님은 연출하면서 그중 반봉건, 특히 황보로 대표되는 양반층에 대한 비판 부분을 수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분의 소신이 너무 완강해서 내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공연 첫날 막이 오르기 한 시간 전에 극장 그릴에서 저녁을 같이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 즐겼던 맥주를 몸소 잔에 따르고 일어서시더니, 내가 이씨 왕가 직계 혈손이라 양반에 대한 비난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말씀과 함께 정중하게 이해와 용서를 구했다. 당시 연극계에서 선생님의 권위와 카리스마가 우뚝하던 분인데 하찮은 신출내기 작가에게 이리도 공손하게 용서를 구하다니! 그분의 진심과 인품에 놀라 황송하고 황망해서 몸 둘 바를 몰랐던 내가 눈에 선하다. 선생님은 <객사> 공연 몇 년 전 국립극장 장막 희곡 현상 공모 심사 때 내 희곡 <늙은 수리 나래를 펴다>를 끝까지 당선작으로 밀었다고 한다.

 

李台元  작가
安鍾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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