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미셀 도이취 '밤마다 페로에는'

clint 2024. 5. 2. 05:44

 

 

 

권투 챔피언인 페로에는 밤마다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은 새벽이 되어 이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는데,

그때마다 페로에는 극도의 피로와 엉치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는다.

그는 도대체 이 존재가 누구이며 혹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절망적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의사 겸 과학자이며 급진적인 미래주의자인

스텐저 박사를 만나기는 것이 겉으로는 부러진 엉치뼈로부터 오는 고통을

치료받기 위해서 이지만, 사실은 자기가 싸우는 상대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이다.

그 대가로 페로에는 스텐저 박사에게 자신의 신체와 영혼을 실험용으로 팔았다.

그러는 동안에 페로에는 로사를 만난다.

로사는 그 전에 이미 페로에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는 로사에게 페로에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실 페로에 와 로사는 우연히 만난 후,

자신들의 과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
또한 페로에는 반인반마인 산토르, 곰 인간, 황소인간, 돼지인간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신비의 원시 섬에서는 인간을 동물로 변형시키는 주술사도 만난다.

그곳에서 원하는 동물로 변형시켜주겠다는 주술사의 제의를 거부하고

마지막 인간으로 남기를 결심한다. 이처럼 페로에가 방황하고 있는 사이에

로사는 극장장에게 발탁이 되어 마리아라는 이름의 유명한 여배우가 된다.

성공을 꿈꾸었던 마리아는 폐로에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스텐저 박사와 결혼을 한다. 그런데 스텐저 박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페로에가 마리를 방문한 직후 발생한 것이어서,

페로에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심문을 받게 된다.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페로에는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지만,

그를 심문했던 마리아의 열광자인 한 형사의 손에 살해되고 만다.

이때 스텐저가 살해되기 직전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원의원에 의해

'세계의 박물관'의 개막식이 성대하게 거행된다.

이 개막식에 대통령을 비롯하여 상원의원, 극장장, 마리아 등 유력 인사들과

동물로 분장한 초대 손님들이 참석하여 저마다 한 마디씩 축사를 한다.

박물관은 거대한 수족관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은 스텐저의 연구소였다

그 안에는 인류의 역사를 장식했던 인물들의 몸 조각들이 떠다닌다.

참석자들은 축배와 함께 무도회를 시작한다.


2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각의 장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기보다는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고 또 연속성도 없는 에피소드들이다 따라서 사실 상 단일한 줄거리를 구축해 내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것은 이 작품이 하나의 연속적인 줄거리, 즉 앞장과 뒷장이 서로 인과론 적인 관계를 가진 이야기를 구축하면서 사건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을 요구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줄거리를 구축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욱 요구되는 작품이다.

 

 

 

이처럼<밤마다 폐로에는…>은 줄거리의 차원에서 조각화와 불연속화라는 특징이 있으면서 또한 여러 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 그러나 그 층들이 서로 잘 구분되어 있지 않고 뒤섞여 있는 그런 작품이다. 다른 말로<밤마다 폐로에는…>은 페로에의 현실 속에서의 행위와 꿈속에서의 행위 등, 여러 층을 가지고 있는 작품인데, 이 층이 서로 구별되지 않고 섞여 있다. 그것은 모든 사건을 선형적인 축선 상에 배열할 수밖에 없는 연극의 특성상, 극과 극 속의 극을 잘 구분 하는 '극중 극'처럼 충과 충을 잘 구분해 놓지 않으면, 현실 속의 행동과 꿈속의 행동이 모두 마치 동일한 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것도<밤마다 페로에는…>이 줄거리를 구축해내기가 어려운 작품인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밤마다 페로에는…〉은 대화나 독백과 같은 연극적인 요소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그 외에 소설과 같은 서술 형식, 일기체, 시, 노래 등 다양한 양식의 글쓰기가 혼재해 있는 작품이다. 90년대의 도이취 작품에서는 춤, 노래 등의 요소들이 더 강화되면서 양식적 혼재가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

 

 

 

 

<밤마다 폐로에는...>은 구조가 매우 복잡하며, 사실적인 내용과 비사실적인 내용들이 섞여 있는 등, 이해하기가 그렇게 쉬운 작품은 아니다. 연출자 라보당은 공연 프로그램에서 〈밤마다 페로에는…〉을 호머의<오디세이>와 비교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2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종의 모험(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방황이지만) 연극이며, 이 모험이 만화경처럼 그려져 있으면서 은유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많지만, 시 공간적 배경이나,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것 등에서 상이점도 많다. 잘 는 바와 같이 〈오디세이>는 '목마' 전략을 제안한 그리스 군대에서 가장 지혜로운 영웅, 율리시즈가 트로이를 함락한 후 고향으로 귀환하던 중에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겪은 이야기이다. 〈밤마다 페로에는…〉에서 페로에는 꿈을 꾸기 때문에 방황을 한다. 꿈속에서 그는 누구인지 모르는 상대와 싸움을 벌였고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벌이면서 방황을 한다. 즉 그는 꿈속의 인물을 현신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서 방황하게 된 것인데,실제로 그 싸움의 결과는 온 몸에 난 상처나 부러진 엉치뼈처럼 현 실 속에서도 생생하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영웅이다. 다만 율리시즈가 전 사라는 고전적인 영웅의 모습이라면, 페로에는 대중의 스타 '권투 챔피언'라는 현대적인 영웅이다. 율리시즈는 방황 중에 많은 괴물 또는 요정들과 싸움을 벌이는데, 페로에는 누구인지 모르는 인물과 싸움을 벌인다. 괴물이나 요정, 혹은 누구 인지 모르는 싸움의 대상은 '미지의 것'에 대한 비유이다 이런 미지의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은 곧 혼돈이며, 이 혼돈의 세상에서 주인공들이 방황을 하는 것, 다른 말로 모험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혼돈의 환유인 미지의 것은 두려움의 대상인 것이다. 또 혼돈이 질서의 상대적인 개념이고 보면, 미지의 것을 '정복' 한다는 것은, 그것을 안다는 것이고 따라서 혼돈의 정복은 세상의 질서(혹은 이치)를 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지식이란 우주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지식은 참지식이 아니다. 율리시즈가 방황 중에 괴물들을 정복하고 때로는 평화롭고 풍요한 시간을 보낸 때도 있고 페로에가 권투 챔피언으로서 대중의 열광을 받고는 있으나, 끝내 고향으로의 귀환을 염원하는 것 또 끝까지 싸운 상대를 추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율리시즈가 방황하고 있을 때, 그의 고향에서는 그가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율리시즈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페로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미지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 그의 방황은 끝이 나지 않는다. 개개의 지식은 우주의 질서에 대한 근원적인 지식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무의미한 지식이다. 근원적인 지식 그래서 의미 있는 지식이란 고향에 돌아온 지식, 즉 존재를 확인받은 지식, 정체 성을 확인한 지식을 뜻한다. 결국 율리시즈는 고향으로 귀환하는 대에 성공한다. 이렇게 해서<오디세이>는 '방황 = 미지의 세계 = 존재하지 않음' 과 함께 '방황의 끝' 고향으로의 귀환 = 자기 존재의 확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며, 이는 인식론적인 방황이 존재론적인 확신에 의해 해소된다는 사실, 또는 모든 인식의 근원적인 문제는 존재의 문제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밤마다 페로에는…>에서는 페로에가 과연 미지의 인물이 누구였다는 것을 알아냈는지 확실하지 않다 페로에가 형사1 에게 살해되기 전, 꿈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머리를 들고 반인반마와 인간의 근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 그가 어렴풋하게나마 싸운 상대가 또 다른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밤마다 페로에는…>은 존재의 문제, 정체성의 문제를 미완의 상태, 누구나 영원해 추적해야 할 상태로 남겨놓는 듯하다.

 

 

 

〈밤마다 페로에는…>을<오딧세이>와 비교하면서 한번 더 눈여겨 볼 것은 배경의 상이점이다. 율리시즈의 방황은 바다라는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페로에의 방황은 도시라는 문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 문명은 과학 (또는 과학주의)의 환유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폐로에는 과학이라는 문명의 바다에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다. 페로에가 사는 시대의 과학은, 스텐저 박사의 말을 빌면, 유전자 변형, 복제, 재구성 등이 가능한 세계이다. 특히 이 '재구성 (reconstitution)'이라는 개념은 위에서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작품의 여러 층을 헝클어 놓고 그래서 작품을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재구성이란 용어가 작품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페로에 와 로사가 두 번째로 만난 6장, 극장에서이다. 여기에서 페로에는 살해당한 여배우, 페를르 만도자의 시체를 가리키면서 내일 재구성이 실시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재구성은 아마 현재의 부검과 같이 만도자의 사인을 알아내기 위한 일종의 조사라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그러나 작품 전체의 차원에서 보면 재구성이라는 용어는 실제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스텐저 박사가 페로에에게 행하는 실험, 즉 페로에의 꿈을 추적하는 실험도 재구성에 관한 것이던가 아니면 최소한 재구성과 관련된 것 같다. 로사가 마리아로 변신한 것도 재구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 두 경우에 있어서 재구성은, 마치 영화<토탈리콜〉이나<매트릭스>에서 기억을 재생하거나 주입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재구성은 어떤 사람의 기억을 재생해내거나, 또 는 어떤 기억을 사람에게 주입하여 실제 경험에서 온 기억과 뒤섞는 작업인 것 같다. 재구성은 꿈과 사실의 경계를 허물 어 뒤섞는 장치, 즉 언급한 영화에서처럼 사실의 세계와 사이버의 세계의 혼합, 실제의 경험과 주입된 경험의 혼합, 그래서 결국은 충을 뒤섞는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재구성은 로사의 마리아로의 변신처럼, 연기 혹은 연극의 메커니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로사의 변신이 마치 연극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배우가 허구적 인물로서의 등장인물로의 변신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이 극장이라는 사실도 그 때문이다. 여하튼 작품 속의 모든 인물들은 일단의 재구성을 받은 듯하다. 그 결과는 등장인물들이 동물의 탈을 쓰고 등장하는 것처럼 어떤 유형으로 단순화되고 그래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것이다. 오직 폐로에만은 계속해서 꿈을 꾸는 인물이고 그래서 스텐저가 페로에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밤마다 폐로에는…〉 꿈꾸지 않는 오늘날의 문명, 그 과학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꿈꾸는 인간으로의 회복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 존재성 또는 정체성의 확인 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작가. 미셀 도이취
미셀 도이취는 1948년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20세 초반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쟈크 라낑(Jacques Lacan) 등 기호학, 사회학, 심리학의 대표적인 학자들에게 심취해 있었다.
70년대에 장-뽈 벤셀(Jean-Paul Wenzel) 둥과 함께 일상 극(Theatre du Quotidien) 그룹을 만들면서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전시대의 연극이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재미를 제공하거나, 혹은 원대한 이념이나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려했다면, 일상 극은 주변 사람들의 생생하고 세세한 일상생활, 즉 이들은 과연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이들이 주관성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한 인간임을 재확인하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며, 나아가 서로 다른 목소리와 세계를 이해하고 나누고자 한 연극이다.
그러나 도이취는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에서 장-삐 에르 뱅상(Jean-Pierre Vincent}과 작업을 시작하면서, 곧 일상 극의 사실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시적이고 몽환적이며 극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 또는 지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감각적이고 무거우면서도 동시에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80년대의 작품들이 이에 속하는 데, 〈수송), (엘 시시시 1986), 〈싯 베니아 베리보 Sit venia verio>(1988) 등은 정치, 사회적 메카니 즘을 뒤흔드는 인간의 열정에 관한 작품들이며,<밤마다 페로에는(1989)>은 인류 문명의 위기와 그의 비관적인 미래에 관한 연극이다. 현재 미셀 도이취는 극작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로 활동하기도 하며 '알레아 잡지의 편집인으로 이론 및 비평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