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딸이 어느 날 "엄마, 난 남자예요"라고 말했을 때
오랜 기간 연극과 사회운동을 하며 그 둘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해온 작가도
매우 당황해 무지한 질문을 쏟아냈다고 아래의 작가의 글에서 고백한다.
<변신>은 정신과 몸을 바꾸는 고통스러운 전환을 견뎌내고
남자로 변신한 세 트랜스젠더 소년들의 우정과 연대를 다룬 이야기다.
세 주인공은 고유하고 내밀한 경험담을 나누며 시공간을 오간다.
독자들은 아마도 작품을 읽은 뒤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질 것이다.
"왜 트랜스젠더가 되는가?" "외과수술로 몸을 바꾸면 진정 다른 성으로 바뀌어
살 수 있을까?" 여자도 작가처럼 그런 질문 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전전긍긍했다.
유전학자들이 말하듯 이건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 경험으로 생물학적
성을 버리고 수술까지 감내하며 다른 성이 되는 것일까?
그런 경험담을 엮은 책들의 목록도 뒤져 보았다. 하지만 명쾌한 답은 얻지 못했고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생물학적 정보가 미세하고 복잡한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어떤 체험에 대한 반응 역시 개인마다 다르다. 경험 이후 반응은 타고난 본성일 수도 있고 외부 환경을 통해 체득된 것일 수도 있다. 똑같은 볕을 쬐어도 어떤 가지는 천천히 자라고 어떤 가지는 빠른 속도로 알 수 없이 뻗어 나가듯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과 속도도 예측할 수 없다. 어디로 뻗어 나갈지 알 수 없는 식물의 선처럼. 그 변화 속도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느려 지거나 굳어지기도 하지만 시간에 따라 사람의 모습도 관계도 변해간다. "비슷하다", "닮았다"는 이유로 같은 부류로 나누는 성격 테스트나 그룹화하는 과정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나'에서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속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기가 누군지 평생 모른 채 타인에 의해 규정되어 살아가다 생을 마친다. 한배에서 나와도 똑같은 아이가 없듯 똑같은 장애인도 똑같은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도 없다.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진정한 “시지프스"일 것이다. 스스로 LGBT임을 밝히는 운동, 관련 법안 개정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변신>의 주제나 문제의식은 그만큼 보편적이다. 따라서 스페인과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한국에도 이 작품에 공감할 독자가 상당하 리라 짐작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런 것들은 "말하지 않은 채” 남겨 두자고 읽어 보지도 못한 비트겐 슈타인이 말했다. 여전히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비교적 일찍이 관련 주제를 공론화해 온 미국에서 극장을 나서며 "호모새끼(faggot)"라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1990년대 미국의 시골 술집에서 동성애자 남성이 강간당해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다. 토리 에이모스(Tori Amos)는 그 죽음을 애도하며 "인어왕자(Merman)"라는 노래를 불렀다. 비슷한 아픔을 다룬 수많은 영화, 문학을 접하며 이것은 더 이상 유희나 볼거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작품을 읽을 독자에게도 작품의 희극적 장치들이 깊은 아픔을 통과한 사람들 속에서 나온 귀한 체험담인 것을 유념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변신>은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 일정이 연기되어 국립연극원(Centro Dramático Nacional) 마리아 게레로 극장에서 2020년 10월 2일부터 11월 8일까지 총 35회 100분 상연시간으로 공연되었다. 공연이 먼저 이루어지고 출판되었으므로 역자는 작가에게 공연 영상과 원고를 파일로 전달받아 한국어로 옮기게 되었다. 읽는 동안 웃고 또 웃고 울다가 가라앉았다. 왜 작가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팔로마 페드레로는 31편이상의 희곡, 영화 시나리오와 시, 소설, 에세이를 썼다. 스페인 일간지 《디아리오16(Diario16)》, 《엘 문도(El mundo)》, 《ABC》, 《라라손 (La Razón)》 등의 신문에 사설과 칼럼을 썼으며 국내/국제 연극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 7월 유네스코 국제연극 대사로 선정되었다. 사회에서 격리될 위험에 놓인 사람 들과 연극을 통해 소통하는 비영리기관 "하늘에서 떨어 진자들(Caidos del Cielo)"의 대표이자 설립자다. 작가의 노력과 재능, 치열함,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 깊이에 동시대인으로서 존재 자체가 감사하다.
작가의 글 - 팔로마 페드레로
어느 날 18살 딸이 자신이 남자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곧 그게 진심이란 걸 느꼈지요. 그때는, 저도 참 무지한지라, 순서도 지각도 없이 저 자신에게 엄청난 질문들을 해댔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몸이 여자인데 어째서 자기가 남자라는 거지? 지금 막 생긴 가슴의 멍울을 왜 받아들이지 않지, 생리를 하는데 왜 저렇게 낙담하는 걸까? 언제 자기가 남자 라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건강을 해치고 임신도 할 수 없는데 성전환 하려는 열망이 저렇게 큰 걸까? 내가 뭘 잘못했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곧바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여러 기관을 찾았습니다. 트랜스젠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사회적으로 유령 취급 당하는 것에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 '하늘에서 떨어진 자들'(NGO 단체)에서 공연을 올리기로 계획했습니다. 배우가 없다면 우리가 양성하 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공연이 되기로 했 고, 그들 스스로 그것을 해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 고 거기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전환에 대해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들을 적대하고 거부하는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 주인공 들이 구성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들 은 우리에게 변신의 의미를 폭로할 것입니다. "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진화하는 것이며 성장하는 것이고 다르 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하는 것과 같은 셈이죠, 나는 누 구일까? 그렇게 변함없이 계속되는 변화의 길을 걷기 위 해서요.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 고립된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우리를 수용해 준 테아트로 델 바리오(Teatro del Barrio)와 하늘에서 떨어진 자들(Caidos del Cielo)에게. 그리고 우리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동료들에게. 필라르 로드리게스, 이시스 아베얀, 후안후 리트란, 마리암 그란데 라 루나레스에게 안토니오 가리게스 워 커, 마르코스 오렌고, 디에고 카브랄레스에게, 엘레나 다발리요, 아나 마리나 도리스몬드, 프리메라 토마 코치. 그리고 베로니카 메이 에스투디오. 또한 하늘에서 떨어 진자들의 헌신과 재능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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