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인디언 보호구역 마을...
사회적으로 버려진 인디언 가족들…
그리고 많은 인디언 남성들은 소외감과 불확실한 삶을 버리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등진 체 하나 둘 떠나지만
인디언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삶을 개척하려는 여인들은
후손들에게 책임감마저 느낀다.
빙고게임! 세계빙고대회 상금으로 그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려고
7명의 인디언 여인들이 여행을 시작한다.
그녀들은 이혼한 여인,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인,
자신의 딸을 조카라고 부르는 여인,
동성애자, 첫아이를 입양시킨 여인,
약혼자를 친언니에게 빼앗긴 여인,
정신장애소녀를 양녀로 둔 여인,
이들의 뒤엉킨 삶이 드라마틱하고 애절하고 쉼 없는 갈등과
싸움, 용서, 사랑, 죽음을 가져오지만 자신의 종교를 지키며,
그들의 신이 자신들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레즈 시스터즈’는 아름답고 슬픈,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7명 인디언 자매들의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여 년 전 캐나다에서 최고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 각국에서 공연된 이래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한때 ‘인디언 레저베이션’이란 팝송이 유행하면서 전 세계적 관심을 모은 바 있던 인디언 보호구역은 이제 더 이상 관심과 기대도 불러 모으지 않는 낡은 주제로 밀려나 있으나 연극 ‘레즈 시스터즈’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인디언들이 그들의 땅에서 얼마나 슬퍼하고 힘들어하는지, 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인생론 적이며 서사적인 연극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작품 ‘레즈 시스터즈’는 이전의 인디언 관련 작품과 달리 캐릭터 모두가 여성들이다. 그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소박한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일상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삶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다. 누구나 고난과 고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대박(?) 을 꿈꾸게 된다. 요즘의 로또 식으로 말이다. 이 작품에도 이들 7명의 여성들을 모으게 하는 마력적인 힘의 세계 빙고대회가 열리는데 상금은 50만달러이다.
세계 최대의 빙고대회와 7명의 인디언 자매들, 대회에 출전 하면서 갖는 이들의 소박한 꿈은 만약 행운의 여신이 와준다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라이브 밴드를 듣고, 좋아하는 가수의 레코드판을 전부 사들일 것이며, 고장난 가스레인지를 신형 렌지로 교체하고, 집안의 양변기를 새로 장만하는 등 누가 들어도 여성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소박한 것들이다. 여기에 한번쯤 상상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섬 하나를 사들이는 것들, 참으로 인간적인 면을 갖춘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편한 사람들이다. 이들 인디언 자매들은 그러면서도 쓰라린 상처와 아픔이 이었지만 말이다. 자신들이 몸과 마음속에 남아있는 인디언의 피와 뿌리는 뽑아버리고 싶어도 뽑아 버릴 수 없는 숙명적인 정체성이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7명 자매들의 이야기는 진솔하고, 가슴 깊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해준다. 결국 생활개선 자금 마련을 위해 빙고대회에 출전하지만 분홍빛 꿈은 무산되고 일상으로 돌아와 깨닫는 삶의 숭고한 지혜와 자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삶의 지침이 되는 인생 교과서 같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디언 자매들의 삶과 문제를 고통과 기쁨,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감싸면서 나아가서는 여성들의 인권문제까지도 다루는 다층의 깊이를 가진 작품이 바로 ‘레즈 시스터즈’이다.
<레즈 시스터스>에서 나나부시 <레즈 시스터스>는 크리족 캐나다 원주민 작가 톰슨 하이웨이의 2막 극으로 1986년 11월 26일 제4막 극단과 지구공연 예술단이 초연했고 1986년에 출간되었다. 이 극은 온타리오주 매니툴린 섬에 있는 가상의 공간 와세이치간 힐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일곱 원주민 여성 혹은 '자매들'의 꿈과 희망의 여정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 낸다. '지상 최대의 빙고' 대회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여성들의 대대적인 모금 노력, 대회가 열리는 대도시 토론토에 도착하기까지 우여곡절 많은 자동차 여정,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빙고 대회 장면들이 숨 가쁘게 진행되는 동안 캐나다 원주민 여성 특유의 유머, 영적 요소, 크리 및 오지브웨이 민족의 언어 표현이 무대를 메운다. 무엇보다 원주민의 영적 유대와 집단 정서 흔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미스터리한 캐릭터 나나부시의 등장이다. 그는 원주민 자매들의 이야기와 액션이 진행 되는 동안 간간이, 그리고 잊힐 만한 순간에 "흰 깃털의"의 갈매기로 때로는 "검은 깃털의"의 쏙독새 형상으로 등장해 자매들의 중요한 일상 순간순간을 지켜본다. 영적 존재인 나나부시가 새의 몸을 빌려 인간 세상에 현현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자매들에게 그는 마을을 어지럽히는 한낱 성가신 갈매기일 뿐이다. 맏언니 펠라지아의 말처럼 "옛날이야기, 옛날 말. 거의 모든 게 사라졌고”, 원주민 자매들의 기억 속에 "우리의 나나부시는 잊힌" 존재다. 나나부시는 무대/현실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마리아델이 자궁경부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음을, 자식 없는 베로니크의 불안감과 그녀가 지적장애아 자부니건을 입양한 사연을 관객과 독자는 알게 된다. 나나부시가 인간 세상을 지켜보는 가운데 에밀리의 동성애 지향성이 남편의 가정폭력과 그로 인한 남성혐오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자부니건이 백인소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 둘 폭로된다.
이처럼 인디언 자매들의 삶,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공유되어 온 그들의 비밀이 나나부시가 지켜보는 가운데 관객과 독자에게 폭로된다. 이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던 혹은 망각되었던 이들의 과거가 인간세상에 발을 붙인 정령 나나부시를 통해 현재에 소환되고 있으며, 이로써 나나부시는 신과 인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캐나다 원주민의 영적 유대와 집단 정서의 매개임이 드러난 다. 이런 점에서 극의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나나부시자 신이라기보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소환된 그가 현실의 "원주민 자매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기억 속 인물" 혹은 "체현된 기억"인 그는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원주민의 현실에 현현하고 이들 삶에 개입하면서 두 시공간을 "소통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나나부시의 면모는 앞서 언급한 신/창조주, 트릭스터, 문화 영웅의 세 가지 의미에 추가해 문학적 상상력으로 구현된 나나부시의 또 다른 정체성이자 그에 대한 원주민의 인식이다. 나나부시는 급기야 인간의 몸을 빌려 빙고 경기장의 '빙고 마스터'(Bingo Master)로 등장한다. 빙고 마스터와의 로맨틱한 댄스장면의 끝에 마리아델은 죽음을 맞는다. 극의 배경은 와사이치간 언덕으로 되돌아가고, 이곳에서 마리아델의 장례식이 거행되며, 나나부시는 토론토 여행길에 동행했던 것처럼 마리아델의 마지막 임종의 길에 함께한다. 이때 그는 검은 깃털의 쏙독새 형체로 현현한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인디언 보호구역의 환경과 여성들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극의 시작처럼 53세의 맏언니 펠라지아는 여전히 지붕을 수리하며 망치질하고, 갈매기 모습으로 돌아온 나나부시가 지붕에 앉아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나부시가 망치 장단에 즐겁게 춤을 추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나나부시(Nanabush) 이야기는 북미 원주민의 생활양식과 사고체계를 이해하는 데 소중한 기록물이다. 또한 이 신화적인 인물은 원주민들의 삶과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역사적·문화 인류학적 가치 외에도 창조적 작가들을 통해 문학작품으로서 미적가치에 기여하는 존재다. 아울러 캐나다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확보해 주고, 캐나다 문예에 독자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원 천이 된다. 나나부시는 하이웨이의 희곡 <레즈 시스터스>에 극화되어 등장한다. 작품 앞에 붙인 <나나부시에 대한 노트에서 "북미 인디언 신화라는 꿈의 세계"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생물체, 존재, 사건들 중"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그리스도가 기독교 신화 영역에 있는 것처럼 "원주민 세계에서 중추적이고 중요한 인물로” 소개된다. <레즈 시스터스>에 등장하는 나나부시는 크리와 오지브웨이 신화에 나오는 창조주, 트릭스터, 문화 영웅 등으로서 인물과 동일하지 않다. 그는 역사나 문화적인 의미가 있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극적인 예술의 산물이며 <레즈 시스터스> 연구는 이 같은 미적 자질을 고려한 연구와 텍스트 분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극과 무대의 마지막을 지키는 갈매기/나나부시는 원주민 자매들 눈에 보이지 않고 기억에서도 잊혔지만 기실 그는 한결같이 '거기'에 있어 왔음을 몸으로 증언한다. 한편 나나부시가 원주민들에게 성가시고 '낯설게 보이는 것은 현재 캐나다 원주민의 삶의 방식과 환경이 변했음을 역설적으로 환기시킨다. 나나부시는 실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지만, 정작 그가 발붙이지 못할 정도로 변한 것은 원주민의 현실이라는 역설이다.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원주민이 낯선 존재가 되었듯, 그렇게 나나부시도 원주민 눈에 낯설고 성가신 '갈매기'로 비칠 뿐이다. 원주민의 이야기는 캐나다 문학에서 더 이상 부수적이거나 여백에 기술된 산물이 아니다. 1992년에 출간된 <영어로 쓰인 캐나다 문학 선집>에서 볼 수 있듯 캐나다 원주민의 작품은 정전화 과정을 거쳐 아동 청소년을 위 한 교육뿐 아니라 대학 교과목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톰슨 하이웨이 또한 폴라인 존슨, 토머스 킹, 에든 로빈슨 등 원주민 작가들과 함께 캐나다 문학의 주축을 이루며, 캐나다 문학만의 변별점을 마련했다. 하이웨이의 나나부시 이야기는 “인간적인 것, 자연적인 것, 그리고 초자연적인 것"들이 혈연으로 상호 연결된 캐나다의 문화와 문예를 대변하는 '동시대 문학으로 평가된다.
캐나다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보면 <레즈 시스터스>는 원주민들을 백인들에게 동화시키려는 1969년 백서와 캐나다의 '원래 주인'으로서 이들의 독자적 위상을 인정하는 1996년 RCAP 보(Report of the Royal Commission on Aboriginal Peoples) 사이에서 원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텍스트 다. 예술사 관점에서 보면 하이웨이의 텍스트는 이누이 트 조각, 트링기트족의 가면, 오지브웨이의 퀼(quill) 같 은 다양한 예술품들이 캐나다 내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문예사의 주류에 이름 올리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다. 국 립 원주민 성취 재단(National Aboriginal Achievement Foundation)을 통해 원주민들은 캐나다 문화 형성의 주 체로서 권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레즈 시스터 스>는 원주민들이 자기 권리와 목소리를 내는 과정의 한 여정을 차지하는 의미 있는 텍스트다. 원주민들은 자신 의 땅을 백인 이주민들에게 내어 준 것이 아니라 그들과 공유하고자 했으며, 극 중 일곱 자매의 유쾌하고 도발적 인 행동주의 및 이들의 영역을 성역화하는 듯한 나나부 시의 춤은 원주민 문화가 백인에 의해 소멸되거나 동화 된 것이 아니라 캐나다를 대변하는 중심 문화이자 캐나 다 원주민의 영적 유대와 집단 정서로 현재에 면면히 살 아 있는 캐나다 유산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것임을 전 초적으로 알리는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작가 하이웨이는 <트릭스터와 함께 웃음>에서 특히 유머에 초점을 맞추어 아쉬나베의 문화를 해석하고 나나부시의 가치를 재평가한다. 극에서 나나부시는 신화에서 재현되는 신창조주, 트릭스터, 문화 영웅 이미지와 차별되는 문학적 허구와 상상력의 산물이다. 한편, 나나부시가 새의 형상으로 무대에 현전함은, 그가 인간에게 보이지 않지만 분명 인간세계에 존재함을, 과거에 잊혔지만 산 자들의 기억에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임을 말해 준다. 극 <레즈 시스터스>에서 나나부시는 이승과 저승을 잇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허구적 상상과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캐나다 원주민의 정신적 유산의 흔적이자 그 유구한 역사에 대한 증언으로 재창조된다.
톰슨 하이웨이(Tomson Highway)
5남 7녀 12남매 중 11남인 톰슨은 생애 첫 6년을 북서부 매니토바의 호수와 숲에서 보냈다. 겨울엔 덫을 놓고 여름에는 낚시를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유목민의 삶이었다. 크리어가 유일한 언어였으며 오늘날까지도 톰슨의 형제자매들은 크리어와 치페와어(Chipewyan)만 사용하고 영어를 쓰지 않는다. 톰슨은 6세부터 영어를 배워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자유롭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고교 졸업 후 매니토바 대학교 음악학부에 진학해 2년간 피아노를 공부했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1975년 5월 우등생으로 음악 학사 학위를 받았다. 바로 이곳에서 영어권 캐나다에서 가장 존경받는 극작가이자 시인 중 한 명인 제임스 리니를 만나 함께 작업했다. 미셸 트랑블레의 극을 처음 본 것도 바로 이때였다. 30세 이후 극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작품은 보호구역과 도심 주민센터에서 주로 원주민관객을 대상으로 공연되었다. 1986년 12월 발표된 〈레즈 시스터스〉가 주류 무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토론토의 1986∼1987년 연극 시즌 최고의 신작으로 도라 메이버 무어상(Dora Mavor Moore Award)을 수상했고, 우수한 캐나다 희곡에 수여하는 플로이드 S. 차머스 상(Floyd S. Chalmers Canadian Play Award) 후보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1986). 1988년 8월에는 캐나다를 대표해 에든버러 국제 연극 축제 본무대에 올랐다. “레즈” 혹은 인디언 보호 구역을 가감 없이 그려 내고 캐나다 인디언의 참모습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창작 사명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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