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고대,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중북부 아시아. 강철검의 비법을 캐러 포타하라무렌(카르마키의 신궁)으로 잠입했던 아무르의 전사대 수장 가라한 아사는 카르마키군에 쫓기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기억을 잃는다. 아무르의 야철장 큰마로의 딸 아라에 의해 발견된 가라한. 큰마로와 마을 사람들은 철검을 든 이 낯선 사내를 카라마키인으로 오해하여 죽이려 한다. 그러나 아라의 재치와 보호로 살아남게 된 가라한은 아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며 아라로부터 산마로라는 이름을 얻는다. 산마로와 마을청년들이 철광석을 찾으로 간 사이, 아무르의 야장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카르마키군이 침입한다.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며 카르마키의 야장 귀족 ‘수하이바토로’는 아라의 아버지 큰마로를 무참하게 죽이고 그녀를 데리고 간다. 뒤늦게 마을로 돌아와 끌려가는 아라의 뒷모습과 폐허가 된 마을, 큰마로의 죽음을 본 산마로는 분노한다. 수하이에게 끌려간 아라를 구하기 위해, 큰마로의 팔찌를 차고 아무르의 밀정 바리를 찾아 포타하라무렌으로 온 산마로. 바리는 그가 아무르의 전사대 수장 가라한 아사임을 알아보지만 산마로는 아라의 행방만을 애타게 찾는다. 그를 바위궁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임무에도 아라만을 찾는 순수한 산마로에 매료되어 수하이의 거처를 가르쳐 준다. 그러나 포타하라무렌에서 푸른 용부의 기운을 느낀 카르마키의 여사제 카라가 등장하여 산마로를 포박하고, 아라는 산마로가 아무르 전사대 수장 가라한임을 알게 된다. 쇠사슬에 묶여 카라의 강한 염파를 받다 깨어나는 가라한. 그에게 이제 ‘산마로’의 기억은 없다. 밀정 바리에 의해 가라한은 포타하라무렌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게 되지만, 아라는 ‘산마로’의 기억을 잃은 가라한 아사를 보며 여러 겹의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산마로와 아무르족을 위하여 수하이로부터 철검의 비법을 배우리라 결심하며 수하이의 곁에 있기로 한다. 수하이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질투와 끌림에 부대끼며 야장일을 가르친다. 그러나 아라는 철검(불의 검)을 완성하는 순간 용광로를 뒤엎고 바리와 함께 탈출한다.
[2막] 아무르의 바위궁. 가라한의 귀환과 왕국의 비호를 위한 소서노의 천신제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바리와 아라가 잡혀온다. 바리를 알아보는 가라한. 아라를 몰라보는 가라한. 그런 가라한에게 아라가 철검을 바치자 철검은 주인을 알아보며 서글피 운다. 적장의 첩, 적의 아이를 밴 부정한 여인, 철검을 안고 온 의심스러운 여인에 대한 불신과 멸시의 눈초리 속에서도 아라는 아무르를 위해 야철장 일을 자처한다. 드디어 아무르의 철검을 완성하던 날 밤, 아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나, 가라한의 저지로 죽지도 못하고 다만 슬프게 운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카르마키의 왕 온구트(카라의 이복 남매)로부터 겁탈당하고 농락당해왔던 카라는 점점 폭군이 되어가는 온구트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다. 그리고 아라에 대한 사랑과 질투에 눈이 먼 수하이를 용병으로 앞세워 비밀리에 아무르를 침공한다. 갑작스런 카르마키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아무르군. 그러나 전투 끝에 가라한은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지고 만다. 며칠밤을 의식을 잃은채 누워있으면서도 아라의 이름을 부르는 가라한 을 보며 애타는 마음으로 아라는 정성스럽게 간호한다. 긴잠에서 깨어난 가라한은 곁에 있는 아라를 보며 안쓰럽고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가라한은 태어날 아라의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나 아무르 전사대 수장 가라한의 짐이 되기 싫어 바리를 따라 바위궁을 떠나온 아라는 곧 수하이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카르마키와의 공격에 승리하고 철검의 대량생산으로 들뜬 아무르. 카르마키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느라 어수선한 가운데, 가라한에게 바리가 나타나 아라를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순간 멍해지는 가라한... 산마로의 기억이 돌아온 가라한은 주위의 만류에도 사랑하는 아라를 구하러 떠난다. 소서노도 따라간다. 가라한 곁에 두느니 내손으로 죽이겠다며 아라를 잡아왔으나, 카라의 술책을 알고서 괴로워하는 수하이. 결국 단신으로 아라를 구하다 죽고 만다. 하라무렌(검은 강)을 끼고 대치한 아무르와 카르마키. 가라한의 불의 검이 울고, 카라의 음산한 무녀들이 춤을 춘다. 멀리서는 치열한 전투의 그림자. 사슬을 끊고 아라를 안고 도망치려는 가라한을 감싸 안은 검은 안개들. 소서노는 카라와 최후의 대결에서 안개 속에 한줄기 빛을 만들며, 소멸해가는 카라를 향해 다음 생에서는 벗이 되겠다고 한다. 결국 아무르는 승리하여 초원을 되찾게 되고, 가라한 아사와 아라의 품 속에서 바리는 ‘내 사랑노래의 끝’을 부르며 죽어간다. 가라한과 아라는 바리를 안고 ‘빛의 머리 거인`’이 살고 있다는 동쪽을 향해 떠난다.
순정만화가 김혜린 원작의 만화. 청동기-철기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중국 북방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가상의 부족들을 두고 주인공 아사와 아라의 인생 여정을 그린 대하서사극이다.
장장 12년에 걸쳐서 연재잡지를 떠돌다 2004년에 12권이 나와 완결되었다. 북해의 별 - 비천무 - 불의 검으로 이어지는 김혜린의 대하 서사극 3작품 중에서 가장 분량도 길고, 가장 그림체도 발전했으며, 주제 의식도 가장 뚜렷하고 섬세한 작품으로 꼽힌다. 작가 김혜린의 역사관과 민족관과 여성관을 엿보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으로 2020년대에 보기에는 다소 구시대적 사상과 감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나, 당대의 계급투쟁적, 민족주의적, 민주주의적, 페미니즘 적인 정체성을 찾으려던 386세대의 고민과 나름 내린 해답을 고찰해 볼 수 있는 렌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순 가상 역사극인 것만은 아니고, 판타지 적인 요소도 가미되어서 작중에 주술이나 마법 같은 요소도 등장한다. 제목 '불의 검'은 작중 등장하는 철검으로, 여야장(여자 대장장이)아라가 사랑하는 산마로를 위해 벼린 검이다.
예맥 계열(작가 인터뷰에서 밝힌 설정)의 가상의 북방부족 '아무르'와 '카르마키' 간의 초원의 패권 다툼과 그에 개입하는 중원 세력의 음모가 한창이던 북방 초원지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아사'와 여주인공 '아라'의 기구한 사랑 이야기가 주요 스토리다. 이 가운데 아무르는 인명과 몇몇 사용하는 어휘, 백두산과 유사점이 꽤 있는 '빛의 머리 거인의 산'을 찾아서 떠나는 마지막 결말의 설정상 한민족과의 연결점이 엿보이는 부족이다. 다만, 아무르족과 한민족의 연관성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는 해석 역시 적절하지는 않다. 빛의 머리 거인의 산이 백두산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애초에 백두산 자체가 한민족뿐 아니라 만주족에게도 영산으로 여겨지는 산이다.
2005년 9월 뮤지컬로 제작되어 장충동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아사 역에 임태경과 최민철, 아라 역에 이소정과 홍금단, 수하이 바토르 역에 서범석이 연기했다. 영화 비천무의 충격으로 김혜린 작가가 직접 나서서 감수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원작이 워낙 방대한지라 3시간 여의 공연에 모든 내용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두 펼쳐 넣기는 무리여서 이래저래 많이 잘려 나간 채 아사와 아라, 수하이의 삼각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공연 당시 음악은 준수하고 대본도 그럭저럭 평타인데 군무만큼은 확실히 보충해야 된다는 평이 많았다. 특히 '그대도 살아주오'라는 아사의 넘버가 넘버들 중 유명한 편이고 듣기에 꽤 괜찮다.
폐막 후 재공연을 기다리는 팬들도 제법 있었지만 십수 년이 지나도록 재공연은 없었고, 2020년대를 넘어가면서는 뮤덕들 사이에도 세대교체가 몇 번 이루어져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