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공인한 채권추심원들. 이들을 “회수조”라고 부른다.
가까운 미래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저출산으로 인구절벽 상태에 이른다.
국가는 부족한 인구를 채우기 위해 외국인 이민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이러한 이민 정책으로 한국에서 외국인 공무원, 교사, 군인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를 강타하는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태양 흑점이 폭발하면서 지자기폭풍이 지구를 강타한 것.
이 지자기폭풍은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전기를 사용하는
교통, 통신, 컴퓨터, 공장 기기를 파괴한다. 무엇보다 은행들의 컴퓨터가
파괴되어 데이터가 손상되면서 은행에 예금했던 사람들은 모두 무일푼이 된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은행 데이터는 사람들의 채무기록이다.
국가는 <국가재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든 은행을 국유화하고
채무기록이 있는 사람들에게 빚을 갚을 것을 독촉한다.
"고객님은 악성 채무자로 등록되셨습니다. 공무 집행하겠습니다."
서울 어느 지역의 ‘회수조’ 조장을 맡고 있는 현역 군인인 조상인 대위는
빚을 진 적이 없다 거나 액수가 다르다고 우기는 시민들의 말을 뻔한 거짓말로
여기며 강경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프랑스 외인부대처럼 특정기간 복무하면
국적을 얻을 수 있는 회수조에는 한국국적을 얻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들이 많다.
조상인의 회수조에는 네팔 구르카 용병 출신 라메시와 탈북민 출신의
감정사 리정식이 있다. 시민들은 회수조의 강압적인 채권추심과
신뢰할 수 없는 채무기록에 분노하여 시위를 벌인다.
평화적이었던 시위가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시점에
조상인 대위에게 예측하지 못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다.
차근호 작, 최원종 연출 <회수조>는 극 초반 회수조들이 국가부채를 폭력적으로 회수하는 과정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국가재건위에 저항하는 불복종시민연대 활동 정도만 그리면서 내부협력자 정보를 흘린다. 국가에 반역하는 회수조 내 내부자 정보가 공안검사 출신 감찰관을 통해 흘러나오고, 불복종시민연대의 활동가 제바로프 역시 감찰관에게 활동기밀을 흘리면서 긴장감 넘치는 구도가 형성된다. 극의 전환점은 회수조의 팀장인 조상인 대위의 아내 메이가 국가재건위에 반하는 불복종시민연대를 주도한 핵심자로 밝혀지는 것. 국가재건위는 벌금 5억원을 부과하고, 조상인은 리정식, 라메시와 협력해 밑장 빼기 방식으로 거둬들인 벌금으로 아내를 살리려 한다. 평화시위로는 민주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메이는 서울타워 폭파 계획을 세우고 발포명령자가 남편 조상인임을 알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삶의 동지이자 이념의 적으로 조우하게 된 메이와 조상인이 총을 들고 대립하고 조상인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세우고 목숨을 끊는다.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 조상인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 뿐이다.
<회수조>는 개발도상국의 이민자,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가 모여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는 미래국가의 모습을 그려낸다. 미래국가의 국가재건위원회는 시민들의 저항을 '발포'로 통제하고 회수조는 채권을 받아내며 국가가 개입하는 기록의 조작과 삭제가 이루어진다. 반항하는 자, 국가에 저항하는 자의 가슴에 박히는 것은 총알이다. 70, 80년대의 정치사가 반복되는 30년 뒤 미래사회이다. <회수조>가 그려내는 미래사회는 정의와 상식이 실종되고 전체주의적 통제가 합법화되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이다. 극 중에서는 강남 지역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 시민들에게만 벌금을 부과하는데, 이러한 선택적 벌금부과는 국가재건위원회 권력층이 부를 축적한 '강남의 나라' 컨트롤 타워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2042년이지만 70~80년대 한국의 시민사회와 대학,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보여준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이 여전히 진행 중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작가의 글 - 차근호
홍콩의 우산혁명 때 민주화를 외쳤던 많은 홍콩인은 한국의 광주민주화 운동을 떠올렸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 많은 미얀마인은 한국에 도움을 청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룬 나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의 역사를 외국인을 통해 듣게 되고 “맞아, 우리가 그랬었지!"라며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는 상황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홍콩인이나 미얀마인이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를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문제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과거의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마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폭탄과 같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갈등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적대감만이 난무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모든 사람을 생활과 생존에 몰두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 아래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존하고자 하는 미덕을 상실했다.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점하려는 우리는 말 그대로 상식도 정의도 부재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내동댕이쳐졌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자각조차 못하 고 있다는 점이다.
「회수조」는 인구소멸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민족 국가가 된 한국의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생활과 생존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정신과 가치란 잊힌 지 오래다. 이것을 지켜 나가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소수자인 외국계 한국인들이다. 「회수조」는 이들을 통해 한국의 정신과 가치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 한지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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