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동해에 떠 있는 통통배 한 척,
배 위엔 한 가족이 밧줄에 묶여 서로 이어져 있다.
치매 걸려 자주 정신이 자유로워지는 노인,
튼튼한 의족으로 거침없이 발길질 하는 아비,
가족보다 하느님 아빠를 더 사랑하는 어미,
가족의 생계를 위해 비리경찰로 거듭난 아들,
방에 처박혀 공상과 책에 빠져 지내던 지체장애 딸,
이 수상한 가족은 아들의 비리가 발각되자 죽을 결심을 한다.
드넓은 바다에 몸을 던지고자 배까지 훔쳐 타고 바다로 나오지만,
비장한 각오와는 다르게 유치한 싸움에 총질까지 하며 시간만 보낼 뿐
도무지 죽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최후의 만찬으로 먹은 회 때문에 단체로 배탈에 시달린다.
크고 작은 소동도 아들의 유서와 함께 막을 내리고,
최후의 순간에 이들은 그 동안의 속내를 서로에게 터놓기 시작하는데……
<만선>은 2011년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만선>은 희곡의 완성도 뿐 아니라 <꿈속의 꿈>, <천국에서의 마지막 계절>, <두더지의 태양>등의 작품으로 인정받은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극단 작은신화의 신동인 연출과 극단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와 하나된 호흡이 잘 들어맞은 웰메이드 작품으로 다소 엉뚱하고 엽기적인 한 가족의 코믹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이며 존재인지, 그 먹먹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이다.
또한 ‘만선’의 기쁨과는 거리가 먼, 가득하기 보다는 부족하기만 한 우리 사회 밑바닥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가족을 통해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 한 켠이 시린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극 ‘만선’은 치매 할아버지, 사고로 의족을 달고 있는 아버지, 고된 심신을 의지할 곳 없는 어머니, 비리경찰에 배 절도범이 된 아들, 지체장애 딸이 죽어야만 하는 수십여 가지 이유들을 쏟아내는 것으로 시작, 결국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내리게 된다. 과연 이들은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게 될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은 한없이 우울하지만 연극 ‘만선’은 이를 코미디로 역전시킨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라는 제한적 공간을 주 무대로 설정, 막혀있으나 또한 완전히 열려있는 공간을 통해 묘한 웃음을 유발시킨다. 좁은 공간 안에서 죽기 위해 혹은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가족과 인간의 우스꽝스러움을 감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다소 엉뚱하고 엽기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어떤 의미이며 존재인지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인생 처음으로 만선을 외치는 한 가족의 ‘간절히 죽음을 원하는’ 그러나 ‘죽을 수 없는’ 가슴의 이야기다.
작가의 글 - 김원
밥 주는 길고양이가 7마리입니다. 처음엔 한 마리였는데, 나중에 정신 차려 보니 7마리가 됐더군요. 문 앞에 사료를 가득 쌓아 두면 그게 하루 만에 바닥난다니까요. 뜨내기 길고양이까지 합치면 몇 마리가 찾아오는지 저도 몰라요. 몰라요, 몰라. 될 대로 되라지. 어느 날, 2층에 사는 주인 할머니께서 엄포를 놓았습니다. 고양이들이 할머니 화단을 파헤치고 똥을 싸니 밥을 주지 말라고요. 아니, 할머니도 독거노인, 저도 독거총각. 그래서 썰렁한 이 집에 짐승들이라도 바글거리면 활기차고 좋지 않겠냐고, 앞으로 할머니 대신 제가 화단 관리하겠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과일까지 뇌물로 바쳤는데 씨도 안 먹히더군요, 제길. 계속 사료를 준다면, 약을 놓아 고양이들을 죽이겠다는 주인 할머니의 협박에 결국 사료통을 거두었습니다.
그날 이후, 밖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길고양이들 걱정이 떠나질 않아요. 얘들 굶고 있으면 어쩌나, 쓰레기통 뒤지다 누가 던진 슬리퍼에 맞으면 어쩌나. 아, 이 새끼들 괜히 할머니 화단에 똥구멍을 벌려서 진짜. 걱정하다 꼼수를 부렸습니다. 밤에만 몰래 사료통을 내놓고 아침 일찍 거두기로요.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녀석들에게 정 주지 말자고요. 밥만 주자. 딱 그것만 하자. 그러면 나도 덜 피곤하겠지. 그 후로는 길고양이들을 사무적으로 대했습니다. 무심히 밥만 줄 뿐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나사 빠진 놈처럼 실없이 웃거나, 고양이들 애교에 침을 질질 흘리며 통조림을 까주지도 않았고요. 그랬는데... 어느 날 밤, 매일 밥 먹으러 오던 길고양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딱 동네 빵집의 단팥빵만한 핏덩이 세 마리가 병아리처럼 울면서 걸어다니는데, 너무 귀여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어미 고양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어떤 한량 새끼랑 홀레 붙어 이 핏덩이를 낳았는진 묻지도 않았다니까요. 어미 고양이를 한참 어루만지다 알았습니다. 정 안 주려 했는데 어느새 정들었구나.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시나브로.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고양이에게도 식구의 정을 느끼는데, 한 핏줄인 가족끼린 어련하겠습니까. 그냥 정이 아니라 오만정이 오가는 게 가족이죠. 이 작품 <만선>엔 오만 정도 모자라 살의(殺意)까지 오가는 가족이 나옵니다. 작품 속 진상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습니다만, 그런 작의까진 파악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이 작품 아니라도 살다 보면 숱하게 자문하실 텐데요. 뭐. 도대체 가족이 뭐기에, 가족이 뭐기에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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