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자그만 포구를 끼고 농부 어부, 실향민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마을. 이웃에 간척 대공사가 벌어져 마을 터주산, 황금산이 채석장으로 바뀐다. 이 채석장에서 발파사고가 일어나 하교길 아이의 죽음으로 이 마을 주동이 되는 문중 형제 간에 황금산 소유권분쟁이 일어난다. 마을을 정신적으로 주관하는 제주는 황금산을 건드려서 자초한 화인 만큼 황금산 보존을 주장한다. 간척회사 토목기사 임재일은 발파사고에 책임을 느끼고, 마을 분쟁을 풀어보려고 회사에 사표를 낸다. 두 집안 분쟁의 요인은 가까운 일로 산소 이장문제, 쌓다만 방파제문제로 밝혀진다. 임재일은 두 집안의 젊은이들을 충동, 포구 초입에 떠있는 나래섬 마을의 당집에서 죽은 아이의 제를 지낼 때 문제의 산소를 이장, 함께 제를 지내도록 만들어, 분쟁의 하나를 해결한다. 화해가 화해를 낳는다. 두 집안의 주동으로 마을 사람들은 쌓다만 방파제를 연장해서 나래섬을 축으로 포구를 막아 간척지로 바꾸는 공사를 벌이게 된다.
<나래섬>은 작가의 고향인 아룽구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작가 특유의 질박한 충청도 사투리, 마을과 나래섬의 숨겨진 내력과 생활상이 구체화되어 있다. 오태석의 작품들 중 드물게 서구적인 플롯의 정석에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한집안 내 인척간의 선명한 갈등을 축으로 사건들이 복잡화되다가 절정과 해결에 이르는 안정된 극구조를 취하고 있다. <나래섬>은 무엇보다 지리 공간이 중요하다. 지리 공간에는 항상 역사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바닷가 마을인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이씨 문중이 터를 잡아 살아왔고 전쟁 때 실향난민들이 황해도에서 내려와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는 이씨 문중의 종가산인 황금산이 있으며 그 안에는 임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포구에는 파도를 막기 위해 구한 말부터 쌓은 뚝이 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중단되어 있다. 포구에서 보이는 나래섬은 이 마을 사람들의 탄생을 관장하는 영적인 섬이다. 오래 전 마을에 유행병이 들었을 때 산모가 산달에 배를 타고 나래섬에서 아기를 낳기 시작하면서 그 습속은 계속 내려온다. 그래서 제주(祭主)에 의해 숭앙되는 이 섬은 삼신할미가 이 마을 사람들을 낳아 '애기집'이라 불린다. 이러한 어촌에서 문중 내부의 대립은 시작된다. 종가산인 황금산의 발파로 어린 아이가 죽게 되자 이를 계기로 이장 이씨와 그의 팔촌인 선주의 오래 묵었던 갈등은 표면화된다. 이씨는 선영 유택들이 있는 종가산의 발파를 반대해왔지만 선주는 간척공사에 돌을 공급하고 수익을 얻는다고 하여 강행한다. 그런데 선주가 종가산 발파를 허락한 까닭에는 오 래 전에 죽은 동생 정묵을 종가산에 묻지 못하게 한 문중에 대한 불만이 게재해 있었던 것이다. 정묵은 인민공화국 시절 부역자였으며 사람을 둘이나 죽여 행패가 자심했고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공주 교도소에서 10년 전 사망한 인물이다. 이러한 두 집안의 갈등은 아이의 죽음으로 다시 불이 붙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종가산의 유지와 파괴 문제는 산업화에 따른 개발과 보존의 차원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종가산을 지키려는 입 장은 아이의 장례를 치루는 제주와 무당에게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들은 개발의 논리와 주장을 전면 부정하고 자연의 신성을 그대로 유지하길 소망한다. 그녀는 전래 설화를 사실처럼 굳게 믿는다.
이 작품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갈등하는 작품이다. 그 갈등은 황금산 발파와 같이 마을 전체와 관련된 것도 있지만 가족적인 것도 있다. 죽은 아이를 고향인 황해도로 데려가겠다는 실향민 황 노인이나 지독한 가난 땜에 가족들과 생이별하기 싫어하는 진각 아범의 모습은 마음을 시리게 저민다. 토속 신앙의 전근대성과 개발의 근대성, 전통의 습속과 문중의식, 실향과 가난의 한이 어우러진 마을은 전후 현대 사 회의 시골 풍속도다.
작가의 글 - 오태석
아주 속상하다. 우리 모두가 기가 죽어 있어 보일 때, 작은 일에 급급해 있는 모습, 뻔한 얘기 거듭되야 먹히고, 차선을 지키지 않는 차 속에서, 화장실의 거울 페어 간 자국 마주하고, 돈 먼저 받는 찻집에서, 공사간에 멋대로 취급되는 시간에 마주치고, 연일 신문의 큰 활자들 거듭되고 있고, 白頭山 떼어줬다는 외신을 보고. 믿고 있다. 너희 삼형제면 호랑이 잡는다는 말씀 믿고, 지체, 오기, 기개, 경륜 아직 다 있고, 넘의 나라 가르쳐서 상대할만한 도량도 있는 것이고, 白頭山 도루 찾을 것이다. 거기 올라가서 최남선 선생 모냥, 한아버지 저올시다. 아무것도 없는 저 올시다, 절하면, 天地는 연방 막혔다 터졌다 할 것이다. 한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떡여 주시고, 눈을 꿈뻑거려 주시고, 입을 우물우물 하시는 것모냥, 그러고 반겨 주실 것이다. "나래섬"은 충남 서산의 돗곳리라는 마을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희곡화 했다. 나래섬을 중심으로 뚝을 쌓는 간척사업이 토속신앙, 오랜 인습, 아래 윗동리의 갈등 등으로 난관에 봉착하나 온 마을의 발전을 위한 의지에 밀려 성공적으로 간척사업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농어촌의 해학과 풍자, 그리고 민속풍습과 함께 형상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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