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면 하계(下界)의 심판장.
염라대왕이 제노비아를 심문한다.
간음하고 타락한 여인에게 그 죄를 묻는다.
제노비아는 당당히 맞선다. 인간 답게 살고
남자를 사랑한 것도 죄냐고 묻는다.
염라대왕은 저승사자를 불러 제노비아가 실토하게
채찍으로 고통을 주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즐기는 제노비아…
처벌의 강도가 높아져도 버티는 제노비아.
결국 염라대왕은 판결을 유예하고 대법관회의를 소집한다.
그사이 저승사자는 제노비아의 과거를 파헤치려 하고
그녀에게 세세히 묻는다. 저승사자가 상대남자 역으로 과거를
재연한다. 특이한 죄는 없는 듯한데…
그녀는 낙태 수술을 5번 한 것이 드러나고… 염라대왕에 보고 된다.
결국 지옥에서도 제노비아를 어찌할 수 없게 되자
개로 환생하는 심판을 내린다.
작가의 말 - 장일홍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남성편력이 화려한 여성이 있다. 그녀에게 있어 섹스는 새로운 남성과 만나는 진지한 통과의례인 것처럼 보였다. 이 만남의 의식에 있어서 섹스는 <존재의 확인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한 건, 그녀는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남자를 ‘최선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거다. 얼마 후, 나는 그 여자가 유년기 때부터 사랑에 굶주려 왔다는 걸 알았다. 남자의 품에 안기지 않으면 생을 지탱해낼 수 없는 여자,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끝없이 애욕의 갈증을 느끼는 여자들의 배후에는 이처럼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잠재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정신분석학자가 아니므로 분석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회칠한 무덤처럼 내부에서 썩어가는 이 음란하고 패덕한 시대와 파산해가는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리아 콤플렉스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돌로 쳐죽이려고 했을 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는 예수의 심판은 마리아에 대한 증오와 연민의 연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이 구원과 해방에 이르게 한다는 짜릿한 전언을 남긴다. 따지고 보면 타락한 창녀 「제노비아」를 단죄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오히려 제노비아야 말로 동물적 성충동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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