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경식 '춤추는 시간 여행'

clint 2023. 10. 30. 18:23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연출가는 80년 광주에서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사태라는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야말로 난데없이 계엄군의 이성을 잃은 한 병사에게 아내를 강간당한다.

그의 아내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목을 매어 자살했고,

연출가는 십여 년 이상 동안 그때의 그 병사를 찾아 나선다.

그가 범인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보고 싶어서이다.

그 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아내를 살릴 수 있고, 자기 자신 역시

과거처럼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서 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그는 참회의 장을 연극으로 설정하고,

당시의 상황을 완벽하고도 충실하게 재현해줄 배우,

즉 당시의 계엄군 병사와 자기 아내와 완벽하게 닮은 여자를 찾아 나선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을 연출가라고 스스로 말한다.

 

 

작가의 글 이경식

이 작품을 쓰면서, 관객이 이 작품을 보면서 연출가가 미쳤다고 생각 하게끔, 그리고 여자와 남자 역시 미쳤다고 생각하게끔, 그리고 나아가 관객 자신들도 미친 게 아닐까 뒤돌아보게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가치를 뒤바꾸고 뒤섞음으로 해서 어쩌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지 않고 개개인의 마음 속에 뒤섞여 있으며 그로 인해 혼돈의 악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아픈 역사의 상채기를,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다른 측면에서 새삼스러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그 아픈 상채기를 미래로 나아가는 건설적인 힘으로 바꾸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무한증오에 불타는 편집증 적인 파괴적 모습과, 과거의 따뜻하고 아름답고 애틋한 기억을 못내 그리워하는 순진한 모습, 이 부조화가 빚어내는 시대착오와 사회부적응의 병리를 연출가의 성격 속에 동시에 담으려고 욕심을 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진실의 복권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주장 아래 "인정되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남자'가 아무리 자기가 결백하다고 주장해도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과, 명백한 피해자이자 충분할 만큼 불행을 맛본 사람('여자')이 그 불행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불행 속에서 끝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동시에 설정한 것도 쾌도난마 식으로 정리할 수 없는,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얽힌 감정의 골의 한 단면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서였다. 요컨데, 요즘 유행하는 용어인 '용서와 화합'의 폭과 깊이를, 역사에 희생당한 한 인물을 통해 더듬어보려는 것이 이 작품의 집필의도이다.

 

주인공인 연출가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강간당한 충격에 아내가 자살하게 된다. 
연출가는 10년 동안 복수를 위하여 아내를 강간한 계엄군을 찾는데, 
가해자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는 것이 유일하게 아내를 살리는 길이고, 
자신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가는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연기해 줄 배우를 찾고, 
계엄군과 똑같이 닮은 남자와 자신의 아내와 닮은 여자를 데리고 연극을 시작한다. 
연출가는 남자와 여자에게 당시 상황을 연극으로 연기하도록 강요하면서 고백하도록 만든다. 


「춤추는 시간 여행」은 메타드라마 형식을 통하여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집어 인간 개인의 폭력과 상처를 추적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작가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섞고, 뒤집으면서 혼돈의 악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아픈 역사의 생채기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힘으로 전환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집필하였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연출가가 진행하는 연극을 관객에게 보여 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느낀 감정의 한 단면을 드러내 판단하게 만들면서 용서와 화합에 대하여 고민하게 한다.

 


평론(김윤철 / 세종대 교수·연극평론가)
 이경식의 〈춤추는 시간여행〉만이 화해의 방법 찾기에 실패하는 과정을 담는다. 극은 13년 전 광주에서 진압군에 의해 가정을 파괴당한 한 연극 연출가가 당시 그의 아내를 능욕했다고 믿어지는 남자를 납치하여 아내와 함께 그 폭력의 장면을 재연하는 이야기다. 얼핏 일방적인 흑백논리가 극을 지배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의도적으로 흐려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연출가에 의해 납치 당한 열두 번째 남자라는 사실은 그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을 암시하는 한편, 남자가 바뀔 때마다 아내는 그 치욕의 순간을 반복 상연하게 하기 때문에 그 장면을 강요하는 연출가의 가학성이 오히려 드러나는 것이다. 어째든 피해자인 연출가는 남자로부터 진정한, 그래서 감동적인 참회의 장면을 끌어내어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조건을 찾고자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연출가는 남자를 죽이고 새로운 배우사냥에 나선다. 존 파울즈의 〈콜렉터〉를 연상케 하는 극 구성이다. 작가의 메시지가 연극언어로 전환되지 않아 인물들이 살아있게 창조되지 않은 점, 연극과 무대 만들기에 대한 토론이 너무 잦아 극 진행이 방해받은 것, 똑같은 대사의 계속되는 반복 등은 이경식의 글쓰기가 갖는 문제점들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극의 가장 큰 결함은 마지막 장면의 처리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연출가가 새로 나타난 남자와 간이매점의 주인에 의해서 정신질환자로 규정되는데, 이는 피해자로서의 연출가를 설명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극의 순환구조가 증거 하는 바 그 동안 많은 남자들과 아내를 희생시켜온 가해자로서의 연출가의 정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모순을 낳는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창길 '반신반수'  (1) 2023.11.02
정복근 극본 '해님 달님'  (3) 2023.10.31
장우재 '목포의 눈물'  (2) 2023.10.28
소리 극 '닭들의 꿈, 날다'  (2) 2023.10.27
김주성 '어느 똥개의 여름'  (2)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