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양원 '그물 안의 여인들'

clint 2023. 10. 2. 18:46

 

청년 의학박사 서필운은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의 암세포에 관한 연구는 특히 국내의학계에서 커다란 기대와 관심 속에 싸였으며, 그것은 또한 젊고 야심만만한 필운에게 의사 로서의 야망을 불태울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출세와 명예가 곧 손에 잡힌 듯 다가온 그에게 좌절은 너무나 빠르게 시작됐다. 바로 그의 아내 미숙이 간암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귀국해서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이 불행은 필운에게 구체적으로 압박감을 주었고, 그 시련은 곧 자신의 온갖 영달과 야심에 가득 찬 야망에, 메울 수 없는 함정을 파 놓고 말았다. 필운이 이 구체적이고 분명한 시련과 씨름하고 있을 무렵, 은경이 나타났다. 은경은 필운의 미국 유학 시 가까이 지낸 여인이다. 밝고 싱싱한 그녀의 체취와, 세련된 용모, 현대적인 감각은 오랫동안 필운을 잡아 두었다. 바로 그 은경이 뒤따라 귀국한 것이다. 「의사」를 버리고 「남편」이 될 것인가, 「남편」을 버리고 「의사」를 택해야 할 것인가로 허덕이던 필운은 잠시나마 은경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이미 아내 미숙의 병은 수술할 시기를 지나 있었기 때문에, 만일 스스로가 집도(執刀)를 단행한다면 세상은 그를 가리켜 뭐라 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필운으로선 자신의 오랫동안의 노력은 물론, 필생의 야심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반대로 아내 미숙을 방치해 둔다면, 그건 고의적인 살인행위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아내가 죽기를 기다리는 파렴치한 남편이 될 수 없다는 도덕률이 있기 때문이다. 끝내 필운은 「의사」를 버리고 「남편의 길」, 버려진 인간을 찾고자 수술을 단행한다. 물론 결과는 예측한대로 실패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더 한층 강렬하게 필운을 압박한다. 사회의 냉담함과 법조직은 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 의학상의 불가항력을 이용해서 고의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 은경과 합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과연 필운은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살인범일까?

 

 

극단 자유극장 <그물 안의 여인들>

기간: 1971.5.26~30 극장: 국립극장

작가: 박양원 연출: 최치림

출연: 박정자, 추송웅, 채진희, 전무송, 김금지, 장미자 등

 

극단 자유극장의 제19회 공연이며 동아연극제 수상 기념 공연인 <그물 안의 여인들> 이 작품은 동아일보 제6회 현상 희곡 당선작으로 작가 박양원은 <실종기>도 발표한 바 있다.

미국에서 암세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청년 의학박사 서필운은 귀국하자마자 아내의 간암으로 벽에 부딪친다. 이미 수술의 시기가 지나버림으로 아내의 병은 의사로서는 냉정히 수술을 거절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남편이기에 아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처지에 빠진다. 그는 의사로서, 또 의사인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벽을 넘어 남편의로서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가진 채 집도를 결심한다. 수술은 실패하고 그는 이 실패가 의학상의 불가항력이었다는 자기 변명 속에 머뭇거렸던 자신의 야심과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갈등과 압박을 당한다.

 

 

작가의 글 - 朴良元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려던 게 솔직한 표현을 하자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유는 있다. 한마디로 요약할 순 없지만 좌우간 연극인들이 부딪쳐야 할 장벽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연극의 경우가 그렇고 연기자의 문제가 그렇고 관객의 경우가 그렇고어디 다 열거하라. 그렇게 많은 장애를 안고 사는 우리가 즐겁게 연극을 하겠다는 그것부터가 잘못인 줄 안다. 어디 그 뿐이다. 創作극에 대한 냉대-. 번안극에 대한 독특한(?) 愛情에 비해 너무 등한하지 않나 하는 감이 없지 않다. 물론 번역극이 바다를 횡단해서 서울에까지 올 땐 좀 나은 作이겠지. 하지만 문제는 우리 것을 방치해 뒤야 하느냐는 分明한 의문이 남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보다 우선해서 해결할 과제가 있다. 사이비연극人들 아니, 연극 인연하는 인사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들 때문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와 혼미는 그나마 실낱 같은 희망마저 앗아가 버린다. 그들이 끼치는 악취는 대로 우리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그들의 달콤한 말은 우리의 건강한 안색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理性을 마비시킨다. 한 가닥 양식이 남아있다면 스스로가 물러서야 할 일이다. 정말 스스로를 위해서는 그것이야 말로 현명한 처사요, 演劇界 전반을 위해서도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즐겁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된다면 진정 演劇의 活氣는 그때부터 시작되지 않겠는가. 좋은 자리에 지나친 말을 했나 보다.

 

朴良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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