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우재 '이 형사님 수사법'

clint 2023. 10. 1. 11:17

 

 

연극 <이 형사님 수사법>은 강남구 세곡동 비닐하우스 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이를 수사하는 강력1반 형사들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작품이 시작되면서 애초에 범인이 누구인지 밝힌 후 범인을 수사하는 코믹하고 황당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연극<이 형사님 수사법>에는 개성 강한 형사들의 조작적인 수사 과정,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하고 비논리적인 전개와 유희들로 가득 차있다.
장우재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연극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범죄를 돌파해보기 위해 독특하고 황당한 방식으로 수사에 접근하는 강력1반의 수사법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객이 상상하는 그 이상을,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로 초대할 이 작품은 배꼽 잡는 웃음 뒤에 서늘한 현실을 깨닫게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성과주의, 외모지상주의와 높은 실업율, 88만원 세대의 비애가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 결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결국 말도 안 되는 진짜 현실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휴머니즘, 자기 연민, ~하는 척, 위악을 부림 둥 이 작품에 입힌 과잉에너지는 물론 작가 본인이 밝히고 있듯 '스까고헤이의<열해살인사건〉'에 대한 헌정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놓치고 눙치는 에너지가 능한 이 작가가 강력히 작렬하는 에너지를 탐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말도 안 되는 세상, 말도 안 되는 수사법으로 돌파합니다.' 라고 작품 의도와 서사 줄기를 밝혀놓았는데 이 '수사법'을 '레토릭' 의 '수사법'으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사람살이의 세계, 인정과 순정의 어느 지점을 과장법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가 스까고헤이에게 기울어진 지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지하기에 웃기고 막장 같지만 허구로 짠 놀이판 안에서의 '리얼'에 호소하는 연극, 부러 놓치는 상식의 이탈 음 속에서 인정과 순정의 아련한 화음이 들려온다. 어쩐지 연기 면에서도 주문이 많아질 것 같은 작품이<이 형사님 수사법>이다
가장 시적이지 않은 인간, 시적이지 않은 사연, 시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살인사건'에서 극적 발상은 시작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야심처럼 노래할 수 없는 순간에 노래하게 하는 '어둠 속의 댄서'라든가, '미타니 코우키'의 웃을 수 없는 곳에서 웃음이 나오게 하는 법정 코미디 (멋진 악몽》과 도 같은 '웃을 수 없는 상황과 사연 속에서 웃게 하자'는 야심찬 기획에서 창작동기를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극은 발목절단 연쇄살인사건을 좇는다. 다중인격의 여형사 '이 형사'가 주도하는 수사과정에 여장 취미를 가진 '형사 반장'이 조력자로 등장하고 속은 순정남이지만 겉은 까칠하게 구는 (오랜 실업 끝 막 취업한) '김 형사', 소녀 아이돌 광팬인 '박 형사' 등 일본판 대중서사에서 나올법한 설정과 과장으로 장식한 인물들이 이 형사 주변을 포진한다. 수사과정에서 유인 수사, 조작수사, 함정수사가 난무하고, 신파를 시늉하면서 수사는 뒤죽박죽 묻지 마 소동으로 증폭되어 간다. 도무지 형사 같지 않은 형사들의 군상 속에서 수사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데, 이형사의 첫사랑으로 밝혀진 시인지망생 (이형사의 과외교사였던) 연쇄살인범이 공손히 자백을 자처하고 관객의 김을 빼놓는다. 대놓고 하는 수사를 패러디인 셈이다 우연 남발, 신파를 시늉함, 경악 등 감정의 과잉성에 대한 유희적 예찬이 넘쳐난다.
인물들 저마다 비밀스런 이중생활이 점입가경으로 드러나고 극은 막장 드라마의 플롯을 충실히 따라간다. 와중에 부동산 투기녀의 시인되기 프로젝트 키 작은 남자의 콤플렉스와 애환, 강박증 등 사연들도 봇물처럼 더해진다.
이 연극에 의하면 범죄의 주된 동기는 현대인들의 자기기만, 마음 속 감춰 놓은 키 높이 깔창 같은 심리적 치장과 속임수 때문이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과 순정'이라는 코드로 범죄 동기와 마무리를 바라보는 형사들……, 폭력 적이고 메마른 세계에서 그들이 꿈꾸는 삶의 행복과 의미 부여는 아이돌 그룹이 우리 일상 속 깜짝 이벤트로 등장해주는 것 정도다. 순정 없는 세상에 서 순정을 갈구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선언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문제 적 상황 앞에서 진지한 진단과 처방을 날리는 모든 꼰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순정남발, 순정강요 과잉 순정 앞에서 어이없어 웃다보면 소란 끝의 고요처럼 '순정'의 가치를 믿고 싶어지게 하는 '순정코미디‘가<이 형사님 수사법>이다

 

 

 

 

장우재 : 1971년 목포 생
1989년 건국대학교 재학시절 멋모르고 친구 따라 건대극장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난생 처음 현실보다 더 재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3U03년. 극단 이와삼을 창단하여 몇 편의 작품(〈차력사와 아코디언>(2003). 〈그때 각각〉(2005). 〈악당의 조건〉(2006, 김광보 연출))을 직접 연출하여 내놓고 뒤늦게 영화공부를 시작.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 간 뒤 새로운 글쓰기 및 영화연출을 배웠다. '작가는 결국 세상이라는 밭에서 글감을 구해야 한다.' 는 신념아래 2009년부터 줄기차게 세종문화회관 시민연극교실에서 시민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있으며 한예종, 대진대. 수원여대, 용인송담대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연출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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