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거짓말」은 1985년 12월 5일에 초연되었으며, 1986년 오프브로드웨이 및 오프- 오프브로드웨이의 우수 작품에 수여하는 오비상과, 뉴욕 극비평가협회의 '올해의 희곡상' 을 수상했다. 60년대에 실험극으로 시작된 셰퍼드의 극작은 1970년대 중반, 「굶주리는 층의 저주」(Curse of the Starving Class, 1977), 「매장된 아이」(Buned Child, 1978), 「진짜 서부 극」 (True West, 1980) 등 소위 가족 극 삼부작' 을 발표하면서 초기의 재즈적 글쓰기(미국 50년대 비트 소설가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받은 셰퍼드는 사물의 재현적 외양인 아닌, 그 순간 거기 존재하는 현존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려 했다. 그는 자신의 초기 극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나는 잭 케루악이 발견한 재즈-스케칭으로 글쓰기를 연습했다. 그것은 연주자가 즉흥연주를 할 때와 똑같은 원칙이다. 이러한 종류의 연습이 끝난 뒤. 굳이 나일 필요가 없는 내 안의 무엇인가가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내게 엄습했다. 글쓰기의 공로는 나에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에 더해 사실주의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사랑에 눈먼 바보」(Fool for Love, 1983)와 「마음의 거짓말」로 이어져, 이상 다섯 작품은 부조리 적 사실주의라 부를 수 있는 작품시기를 형성한다. 셰퍼드는 「마음의 거짓말」로 오랜 휴지기에 들어가고 그의 극작은 90년대에 들어서야 재개된다. 곧 「마음의 거짓말」은 7-80년대 셰퍼드의 극작에 있어서 하나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핵심 모티브는 역시 작품이 씌어 지기 약 10여 년 전인 1976년 작 「페코스 빌이 아내를 죽인 저녁에 느낀 비탄」에 이미 나타나 있다. 아내를 죽인 빌은 자신의 폭력과 범죄를 비음의 거짓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빌의 대사에서 그것은 한 사람을 키우고, 그의 현재를 결정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그것은 다음 세대에 대물림되는 과거의 찌꺼기다. 거짓과 그에 의한 폭력의 대물림은 셰퍼드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변주되고 있는 기초적 테마이다. 「마음의 거짓말」도 예외는 아니다. 제이크의 성격과 외모는 그의 아버지와 놀랍도록 닮았으며, 샐리는 로레인과, 베스는 멕과, 그리고 마이크는 베일러와 닮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성격적 측면에서만 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유사성은, 위의 빌의 말처럼, 마음속 거짓말이 그들을 키우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근본적 특성이 되고 있는 '마음의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등장인물들 역시 이러한 거짓말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그들이 진실로 믿고 있는 거짓은 스스로가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어 상대방에게 덧씌운 환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그 환상의 이면에는 진실에 대한 회피와 서로에 대한 지독한 무지가 도사리고 있다. 제이크의 가족은 진실을 감추고 살아간다. 제이크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잊기 위해 유아기적 퇴행을 보이며 아버지를 영웅으로 믿으려 한다. 그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 역시 쇠락해 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사실로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레인은 남편이 자신을 떠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그 대신 아들인 제이크에게 집착한다. 제이크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어린아이이다. 샐리 역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의 붕괴에 저항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이제는 "떠나는 것에 질렸다.”고 말한다. 서로에 대한 무지는 베스네 가족에게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베일러는 일상사에 있어서 멕보다 서투르면서도 자신이 집안을 보살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여자들은 "미쳐가는” 존재, 보살펴야할 존재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혼자 지내기 위해 사슴 사냥에 골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크 역시 가족에 대해 충실한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베스의 마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제이크와 그의 동생 프랭키를 자신의 적으로 간주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멕은 자주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남편과 아들에게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그녀는 심지어 사위인 제이크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들 간의 대화는 지속적으로 의사소통의 단절 양상을 보인다. 다리를 다쳐 베스의 집에서 지내게 된 프랭키는 결국 이렇게 소리친다.
프랭키 : 모른다고요? 자, 내 말이 그겁니다. 아무도 몰라. 아무도 아는 척도 안 해, 아무도 뭐가 어떻게 되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

너무나 오래 방치해 버린 과거의 진실, 이제는 무감각해져 버린 무지의 상태로 인해 이들은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을 상실해 버렸다. 이들에게는 지금 자신들의 왜곡된 시선에 비치는 모습,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 낸 환상만이 진실해 보인다. 그러나 「마음의 거짓말」의 인물들이 직면한 더 큰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현재의 왜곡된 스스로의 모습을 본래적인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문제를 셰퍼드는 '개성'이라는 용어를 들어 설명한다. "개성(personality)은 인간 존재에서 거짓된 모든 것이다. 개성은 인간에게 인위적으로 더해진 모든 것이다. 이 거짓된 감각과 우리가 태어났을 때 함께 있었지만 어디론가 사라진 본질인, 가끔 진정한 것을 느끼는 감각 사이에 항상 다툼이 있는 것 같다. 이 다름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재현하는 것과 그들이 자신으로 알고 있는 믿음 사이에 커다란 모순을 안겨 준다."
위의 인용문을 따르자면, '마음의 거짓말'의 인물들은 자신에 대해 '진정한 것을 느끼는 감각'을 상실한 채 살아간다. 그들은 거짓된 '감각' 으로 현재의 왜곡된 자신의 모습에 일종의 리얼리티를 부여한 채, 그것을 '재현' 하면서 살아간다. 셰퍼드는 이것을 '개성'으로 지칭한다. 폭력적인 제이크, 억센 로레인, 충직한 프랭키, 무뚝뚝한 베일러. 순종적인 멕, 가족에 충실하다는 마이크 등, 이 작품의 인물들이 보이는 강한 개성들이란 사실상 자기 자신에 대한 협소한 편견의 재현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러한 거짓된 '개성' 을 진실이라고 믿는 이유는 그것에 기대어 현재의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다른 이들을 자신의 머릿속 생각대로 바라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마음작용 때문이다. 제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내 머리 속에 있는 것이 나한테 거짓말을 해. 모두가 거짓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이렇듯 제이크의 머릿속에 있는 거짓말, 스스로를 속이는 '마음의 거짓말' 이란 진실을 회피하고 가족들에 대한 무지를 감추려는 마음, 그러한 위장을 위해서 자신과 주변인물에 대해 만들어 낸 거짓된 리얼리티, 그리고 그것을 진실로 믿으려는 마음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거짓말」은 제이크가 베스에게 잔인한 폭행을 가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인물들 사이의 폭력적 관계는 물리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품은 곧 가족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의 뿌리 깊은 오해와 불신,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온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가족들 간의 이러한 폭력적 관계 양상은 「마음의 거짓말」이 그러하듯 앞 세대에서 이어받은 것이며, 인물들 사이에서 증폭되는 것이다. 제이크의 가족이 겪는 가족 간의 이별과 떠남은 제이크의 아버지가 이들을 버리고 떠나 버린 것의 반복이다. 베스에 대한 제이크의 폭행은 그에 대한 마이크의 폭력으로 되풀이된다. 이렇게 「마음의 거짓말」에 드러난 폭력은 역사적 사회적 속성을 지닌다. 3막3장에서 마이크는 제이크를 잡아 성조기로 재갈을 물리고 총으로 위협 하며 제이크를 짐승처럼 다룬다. 그리고 베스에게 사과할 것을 강요한다. 폭력이 낳은 아픔에 대한 폭력으로의 대웅을 보이면서, 셰퍼드는 이 극에서 때리거나, 감추거나, 떠나거나, 잃어버린 과거로 복귀하려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냐고 묻는다. 이렇듯 셰퍼드는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거짓말」에서도 사회비평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스스로 그 힘을 자랑하는 미국의 폭력에게 “무기랑 깃발을 가지고 노는 것 말고 좀 더 나은 일을 할 수 없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서 마이크를 질타하는 베일러 역시 좀 더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베스의 시선에 의하면 베일러에게 모든 것은 죽이기 위해 존재한다. 베일러뿐만 아니라 「마음의 거짓말」의 남자 인물들은 모두 사랑이 죽은 상태로 그려져 있다. 가장 이성적인 면모를 보이는 프랭키 역시 베스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고 베스가 형인 제이크의 아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이와 대비적으로 여자 인물들은 모두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위의 인용문의 베스 역시 자신의 정체성이 전부 달라졌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사랑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서로 정 반대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폭력과 사랑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마음의 거짓말」의 인간관계를 직조하고 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이 두 가지는 끊임없이 충돌하는데, 작품의 말미에서 이러한 갈등이 해소될 가능성이 제시된다.

극의 시작점에서 스스로 상상해 낸 베스의 부정을 사실로 믿어버리고 베스에게 폭행을 가한 제이크는 작품의 말미에서 비음의 거짓말이 자신을 속여 왔다고 고백한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는 이제 베스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베스를 '여기' 존재하는 대로의 ‘진실' 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전의 격심한 질투에도 불구하고 동생인 프랭키와의 관계를 인정한다. 여기에서 폭력과 사랑이라는 인물들의 관계 양상 밑에서 작용하는 것이 사실상 '리얼리티의 발견'의 문제임이 드러난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한 왜곡된 이미지가 폭력을 낳는다면, 새로이 진실을 발견해 내는 시선은 사랑의 가능성을 잉태한다. 이렇듯 「마음의 거짓말」은 거짓된 이미지를 진실로 보려는 시선과 진실한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시선의 차이, 거짓된 감각과 '진정한 것을 느끼는 감각’ 사이의 다툼, 폭력으로 대물림되는 역사와 사랑에 대한 현재의 갈구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마음의 거짓말 이 조장한 이러한 대립 항들은 작품의 진행에 따라 대체로 폭력이 사랑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통해 해소되는 양상을 보인다. 작품 전반에 걸쳐 과거는 무대에서 진행되는 현재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셰퍼드는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규정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악순환의 끝. 곧 '마음의 거짓말'이라는 악순환의 끝은 어떻게 가능한가가 이 작품의 핵심적인 관심사라 할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을 가능성은 이 극의 등장인물 중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이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는 베스에게서 시작된다. 베스는 제이크에게 폭행을 당해 '두뇌 손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정신적, 신체적 정체성에 타격을 입었지만, 아집과 집착, 고통과 폭력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건강하며 자율적인 정체성을 보인다. 흡사 어린아이와도 같은 천진한 베스의 시선을 통해 병원은 무덤으로, 제이크는 어린아이, 마이크는 전쟁과 적. 베일러는 죽음, 그리고 멕은 사랑으로 지칭된다. 이렇듯 베스의 시 선은 과거의 사건, 편견, 도피와 기만, 선입견 등에서 자유로우며, 사물과 상황 이 현재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느끼는 감각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정체성, 상황의 본질을 감지하는 감각. 연기의 핵심사항 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베스는 '척하기' 놀이를 벌인다. 그녀가 벌이는 '척하기' 놀이의 지향점은 사랑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삶을 만든다. 프랭키와 벌이는 사랑놀이에서 베스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정체성 역시 바꿔 버린다. 사랑을 낳는 놀이 속에서는 뭐든 가능하며 누구든 바뀔 수 있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인물들은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서로 정반대의 동물 두 마리”인 멕과 베일러는 함께 성조기를 접은 후 키스한다. 프랭키는 베스의 사랑을 거절하지 않고, 샐리와 로레인은 과거를 불태운다. 폭력을 행사하던 제이크는 베스에게 키스한 후 말없이 사라진다. 자신들의 완고한 정체성. 그 오랜 거짓과 결별할 때, 그들은 거짓된 마음이 회피해 왔던 진실을 보게 되며, 이전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재발견이 20년이 되었다 해도, 베일러의 말처럼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이제 인물들은 과거에서 미래로 변신한다. 그리고 제이크가 베스를 새롭게 바라보았듯 '진실'을 새로이 알아가야 하는 출발선에 서게 된다.

이 작품의 공간 역시 사실적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곳이 아닌, 마음이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 내는 장소이다. 제이크는 자신의 마음속에 비친 베스를 볼 수 있으며, 항공재킷을 걸치고 밑에는 팬티만 입은 채 몬태나까지 갈 수 있다. 아픈 프랭키는 제이크와 흡사한 모습이 될 수 있으며, 베스는 프랭키에게서 제이크의 흔적을 느낀다. 좌우대칭을 이용, 캘리포니아와 몬태나의 지리적 위치를 반영하고, 중앙은 어둠으로 채우고 있는 이 작품의 무대설정은 미 국민들 간의 단절을 암시한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 몬태나에 있는 맥이 캘리포니아에서 로레인이 피운 불을 봄으로서 이러한 단절은 무너진다. 이렇게 셰퍼드는 미 국민의 삶의 공간 역시 미국의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무대설정과 더불어, 되풀이되는 재현적 리얼리티에 대한 거부와 새롭게 발견해가는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라는 기본 메시지는 이 작품의 양식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셰퍼드는 인물이 '재현'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주의 적 양식에 균열을 내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마음의 작용을 드러내기 위해 언어와 무대 운용에 있어서 상징적, 부조리 적 수법을 동원한다.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부조리극적 양상은 3막2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요란하게 차리고 내려온 베스, 제이크를 잡은 마이크, 결혼식만을 떠올리는 멕, 결혼을 거부하는 프랭키, 아들에게서 경쟁심을 느끼는 베일러 등 이들은 자신의 관심사만 이야기할 뿐 상대방에 대해서는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3막2장이 끝날 때까지 이러한 상황은 지속된다. 이렇듯 등장인물간의 우스꽝스러운 의사 소통의 단절은 셰퍼드가 베케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점은 3막3장, 마이크가 제이크를 짐승처럼 다루며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확연하다. 그들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포조와 럭키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비사실적인 방식의 형상화가 비단 의사소통의 부재만을 부각시키는 데에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마음의 거짓말」이 지닌 형식적 매력이 있다. 3막3장 인물들은 여전히 각자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다. 성조기에 정신이 팔린 멕과 베일러는 남자가 있다는 베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프랭키는 홀로 소파에 앉아 있다. 마이크는 어둠 속으로 떠나고 제이크는 키스를 하기 위해 베스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이러한 고립은 오히려 의사소통의 부재보다는 서로간의 재발견이라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이크의 키스는 성공한다. 베일러는 멕과 성조기를 접고는 기뻐한다. 프랭키는 베스 옆에 함께 서 있다. 무대 한견에서 양동이 속불꽃은 계속 타오른다. 멕이 이 불꽃을 발견한다. 셰퍼드는 이 장면에서 폭력의 치유, 역사의 발견, 과거의 청산, 사랑의 가능성 등을 의미하는 극적 기호들을 병치시켜 각각의 상징성을 부각시킨다. 이렇듯 「마음의 거짓말」에는 그의 초기 글쓰기의 방법론이 여전히 깊은 영향을 드리우고 있다. 이와 같이 자신만의 극적 전략을 통해 셰퍼드는 「마음의 거짓말」을, 폭력을 조금씩 치유해갈 사랑의 가능성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주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셰퍼드가 제시하는 변화 가능성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크와 제이크는 어둠 속으로 떠나가 버려, 이탈과 유랑, 가족의 붕괴라는 셰퍼드 작품의 기본 주제가 되풀이되는 양상을 보인다. 베스와 프랭키는 진정한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보이지만 여전히 가능성으로 그쳐 있다. 베일러와 멕의 화해 역시 베일러의 가부장적인 환희에 힘입은 바 크다. 이렇게 작품 첫머리에 붙어 있는 두 개의 인용문에 드러난 셰퍼드의 시선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에게 미 국민들은 아직 끊임없이 유랑하고 있으며, 그들이 맺는 남녀 사이의 관계는 결합과 결별을 되풀이하는 영원한 아이러니로 보인다. 그러나 그 끝이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록 눈 속일지라도 불꽃은 여전히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불꽃으로 셰퍼드는 베스의 '척하기' 를 통해 정체성의 변신을 주장한다. 그러한 변신은 폭력과의 단절, 진실의 회복, 사랑의 성취, 진실한 리얼리티의 발견을 위한 것이다. 삶에 있어서 연극적인 변신. 이것이야말로 셰퍼드가 「마음의 거짓말」을 통해 제시하는 연극적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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