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가르시아 로르카 '예르마'

clint 2015. 11. 10. 11:09

 

 

 

 

 

주인공 예르마는 누구보다도 자식을 갖고 싶어 하는 여자지만, 결혼생활 5년이 지난 후에도 아이를 갖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의미가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남편 후안은 자식을 원하지 않으면서 농사일과 가축 돌보는 일에 전념한다. 이러한 환경에 비관한 예르마는 예전의 사랑이었던 빅토에게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마저 실패하고 그녀는 후안에게 절망감을 느끼고는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만다.

 

 

 

"Yerma" 라는 이름은 그리스 어원인 eremos(황야, 불모지)의 형용사형에서 온 것으로, 이것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경작되지 않는', '거주자가 없는'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예르마라는 이름은 그녀가 지구, 또한 자연과 묶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극이 보여주는 가장 큰 틀은 다산할 수 있는 여성이 자신에게 운명 지워진 자연적 기능을 수행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로 인한 갈등의 표출이다. 극이 시작하면서 봄날아침같이 밝고 상쾌하게 바뀌는 조명으로 그녀의 수태 가능성이 표현되며, 이것은 봄의 경작될 수 있는 비옥한 토지의 이미지로 인식된다. 그녀는 아이만 없을 뿐이지 자신이 묶여 있는 자연의 딸로서는 손색이 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후안은 그녀와 반대 성격을 가진다. 예르마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생명 성을 그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드며, 결국 이것은 이 극의 비극적 결말을 엿보게 한다. 또한 한 가지 이 극을 덮고 있는 관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성의 문제이다. "여성"이라는 말의 전통적 개념은 육체적 문제와 성의 차별에 있어서 두 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 첫째는 "여성에 대한 성적 관심"으로서 (남성)욕망의 객체로서의 존재와 두번째는 "여자다움"으로 정의되는 사회적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의 존재이다. 이러한 두 가지 개념이 근대이후에 문학 속에서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갈등이 또한 극을 지배하고 있는데, 여자에는 단지 의무만 있고 남자에게는 권리만 있는 세상의 법으로 인한 갈등이 이 극에서도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빅코를 만나고 돌아온 예르마는 로르카의 비극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들 중 가장 깨끗하고 죄 없는 인물이면서도 부당한 남편과 마을의 대우(사회적 관습)를 받고 있다. 그들은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에 대한 용납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남편의 육체적·가정적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객체일 뿐이다. 그녀 자신이 그러한 환경에서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숙명적으로 인식하는,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그녀도 모르는 명예관을 가지고 있고 "난 목이 마르지만 자유는 없다"고 외친다. 이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비극의 요소는 최후의 장면의 비극성을 증폭시킨다. 수태하고자 하는 여성 본연의 욕구는 남편의 독선적이고 모욕적인 희롱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여성의 참다운 욕망도 사회의 벽에 무너져 버린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도망갈 수 있는 다른 길, 수태를 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남편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희망인 수태도 포기하고 끝 간 데 없는 자기 부정으로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끌어안고 비극적인 극을 마친다. 이 극을 통해 로르카는 큰 소리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삶을 헤쳐 나갈 힘을 가지라고 외치는 것 같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다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스페인 작가를 든다면 아마 페데리꼬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를 꼽아야 할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그의 극작품과 시가 수도 없이 공연되고 읽히고 있는 것을 보면, 로르카의 이름도 이미 세르반테스와 같은 반열에 올라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눈만 뜨면 세계화 - 미국화라는 말이 훨씬 적절하겠지만 - 를 부르짖는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일반대중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촘스키가 어제 미국에서 발표한 이론을 아무런 검증 없이 오늘 발표하는 우리지만,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 두 구절쯤은 되뇌는 로르카의 시구를 우린 모른다. 그의 작품이 공연되는 극장 앞은 왜 항상 장사진인지 우린 전혀 모른다. 이것이 우리의 세계화다. 스페인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도 스페인하면 떠올리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정열, 투우, 태양…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이다. 안달루시아의 국도를 따라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온 마을이 시에스타(siesta: 낮잠)에 빠져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낮,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이 적막을 더해준다. 이 지방특유의 새하얀 회칠을 한 집 앞에 상중(喪中)인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새카만 옷차림을 한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 있다. 그의 게슴츠레한 시선은 멍하니 허연 담벼락을 주시하고 있다. 적막. 태양, 흰색. 검정색… 그리고 노파, 이미지가 강렬하다. 이 광경을 보기 전까지 안달루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시인이자 극작가인 로르카의 작품에는 평생 한을 품고 살아가는 여인네들이 왜 그리도 자주 등장하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지방만 유독 한 많은 과부들이 많은 것은 아닐 텐데. 상당수의 집시들이 살고 있는 이 지방의 정서를 얘기할 때 흔히 두엔데 안달루스 (Duende Andaluz : '안달루시아 적 恨 정도로 해석됨 수 있다)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끝없는 떠돌이 방랑 생활과 사회적 멸시가 운명이 되어 버린 집시들의 피 속에 흐르는 한의 정서이다. 우리의 창(阳)을 연상케 하는 절규에 가까운 깐떼 혼도(Cante jonde). 그 음악에 맞춰 격렬한 박자로 발을 구르며 플라맹고 (Flamenco)를 추는 여인. 격정을 이기지 못해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 고뇌와 한, 그리고 땀이 뒤범벅이 된 일그러진 양미간 모두 그들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모습들이다.

 

 

 

로르카는 1898년 6월 알람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그라나다 근교의 작은 마을 푸엔떼 바께로스에서 비교적 부유한 지주의 맏아들로 태어난다. 1909년 가족이 그라나다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교육을 받는 로르카에게 지리적 역사적으로 그리스, 로마, 아랍. 기독교 문화. 집시 문화가 온통 뒤섞여 있는 자기 고향의 모습은 훗날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19년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마드리드로 올라온 로르카는 그후 약 10 년간, 기숙사인 〈레시덴시아 데 에스뚜디안떼스〉에서 지내게 되는데, 이 유명한 기숙사는 20세기 초 유럽 문화계를 주도한 많은 예술인들이 함께 묵으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던 곳으로 모리악, 스트라빈스키, 히메네스(195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페인 시인), 살바도르 달리, 영화감독인 루이스 부뉴엘 등 기라성 같은 거장들이 지내던 곳이었다. 로르카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며 당시 유럽을 풍미한 다다이즘, 울트라 이즘, 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문예운동과 접하게 된다. 이 시기는 그의 일생 중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시기로. 1920년 3월 그의 첫 극작품인 '나비의 저주'가 마드리드에서 공연되며. 이듬해인 1921년 그의 첫 시집인 (Libro depoemas)이 출간된다. 1924년에 두 번째 시집인 '노래집'이 발표되고, 1925년 두 번째 희곡 「마리아나 삐네다」가 완성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여러 작품 중에서도 1928년에 발표된 시집인 『집시 민요집」은 그의 대표작으로, 고독과 죽음의 그림자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집시들의 비극적 감정이 고도의 상징성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 뻬드로 살리나스나 당대의 모든 평론가들의 격찬을 받은 이 작품 이후로 로르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시”는 고독, 피, 죽음 따위의 상징이 되어간다. 갑작스레 얻은 명성으로 인한 부담과 살바도르 달리와의 동성연애 소문 등에 쫓긴 로르카는 1929년 뉴욕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을 하게 되지만, 새로운 환경과 언어장벽은 그 에게 또 다른 좌절감만을 가져다준다. 고국으로부터 안고 온 부담 감과 새로운 환경 속에서의 좌절감은 로르카로 하여금 또 하나의 명작을 낳게 하는데. 그 시집이 '뉴욕의 시인'이다. 아름다운 고향 그라나다를 그리워하는 이방인에게 뉴욕은 철근과 콘크리트의 잿빛 도시, 집시 같은 처지의 흑인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도시로 그려진다.
1930년 봄. 쿠바를 찾은 로르카는 카리브의 태양과 정열 속에 예전의 원기를 회복하게 되며, 곧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시기 스페인은 쁘리모 데 리베라외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공화정이 시작된 해로, 1936년 스페인내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문화예술이 만개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기간 동안 로르카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라 바라까〉(La Barraca)라는 극단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며 스페인 고전극들을 공연하는 한편, 자신의 불후의 명작들을 공연하게 된다. 1933년 '돈 뻬를림뿔린의 사랑'과 '피의 결혼'(Bodas de sangre), 1934년 '예르마'. 1935년 '독신녀 도냐 로시따' 등의 성공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공연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의 창작활동은 희곡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왕성하게 이루어져, 1931년 10년 만에 탈고한 '집시의 노래'가 출간되고, 투우장에서 피를 뿌리며 숨져간 투우사 친구에게 바치는 '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야스를 향한 절규'가 1934년에 발표되며, 아랍시의 영향을 받은 '따마릿의 소파'가 1936년에 완성된다. 그리고 같은 해. 그 외 3대 비극 중 마지막 작품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탈고한지 정확히 두 달 후인 8월 19일. 고향에 내려와 쉬고 있던 로르카는 프랑코가 이끄는 반란군에게 장소도 모르는 그라나다의 한 숲속에서 어처구니없이 총살당하고 만다. 한 천재 작가의 기막힌 종말이었다.

 

 

 

로르카의 작품 속에는 예외 없이 한과 열정, 죽음의 기운이 물씬물씬 묻어나는데 그 중에서도 생애 마지막 부분에 나온 세 편의 희곡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 그의 이러한 비장한 이미지는 절정을 이룬다. 이 세 작품은 주로 전통적 윤리관과 인간의 본능적인 열정 사이의 갈등이 죽음으로 불살라지는. 보는 바에 따라 다소 진부한 테마라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테마에 한 마디, 한 마디 정련된 시어를 통해 주어지는 고도의 상징성과 그로 인한 깊이는 이 작품들이 왜 명작이며 동서를 불문하고 계속 무대 위에 올려지고 있는가를 짐작케 해준다. 특히 다분히 초 현실 적이고 실험적이었던 로르카 초기의 작품들과는 달리 남녀 간의 삼각관계가 빚어내는 비극성을 다룬 「피의 결혼」은 그라나다의 한 지방신문에 실린 짤막한 기사를 극화한 작품으로, 극작가로서의 그의 재능을 새삼 실감할 수 있게 해 준다. 테마 자체가 무척 사실적이고 통속적임에도 불구하고 "집시 민요집" 등 그의 많은 시작품에 나타나는 다의적이고 상징적인 시구들과 고도의 소리 상징 (sound symbolism)을 염두에 둔 대사 등을 사용함으로써, 또한 '달', "죽음” 따위를 의인화시킴으로써. 모든 것이 설명적일 수만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에 신비함과 심오함을 더해 주고 있다. 여기에 안달루시아 토양에 흐르는 한의 정서와 스페인 황금세기(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중반에 걸친 스페인 문학의 황금기)연극 이후 내려오는 죽음과 명예라는 스페인의 전통적 테마가 뒤섞여 로뻬 데 베가(1562-1635.셰익스피어에 견줄만한 스페인의 극작가)가 이루지 못한, 스페인 적이면서도 인류 보편적인 테마를 성공적으로 작품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에 나오는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데, 간절히 아들을 갖고 싶어 하는 한 여인의 본능이 벽에 부딪히며 여기서 기인된 강박관념이 남편을 살해하게 된다는 내용의 「예르마」나, 남편의 장례식 이후 다섯 명의 딸 에게 여자로서의 엄격한 도덕률을 강요하는 어머니와, 여자로서의 본능을 이기지 못한 절망과 고뇌 속에 자살을 하고 마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등이 그것이다.
열정... 좌절… 그리고 죽음 로르카의 모든 작품에 흐르고 있는 선홍빛 테마이다. 로르카의 점철된 죽음에 대한 집착과 탐닉 때문에 그의 작품엔 어디를 보더라도 붉은 피와 음침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더 이상 끝 갈 데 없는 죽음의 끝에서 그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력을 본 것일까? 시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듯, 1936년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 영문도 모른 채 총살을 당한 로르카. 이러한 그의 운명이 그로 하여금 줄곧 죽음의 글을 쓰게 한 것일까? 지금도 그의 주검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