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사르트르 '무덤없는 주검'

clint 2015. 11. 10. 11:16

 

 

 

 

 

 

제 2차 세계 대전 말기,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전면적 반격이 개시된다. 이때 프랑스의 항독(抗獨) 지하운동 단체인 '마끼'의 단원들은 독일군 점령 하에 있는 한 마을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다.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초래하고 싸움은 실패로 끝난다. 〈마끼〉 단원들은 체포된다. 체포된 단원 중 앙리는 다른 동료와 함께 잡혀 들어왔고, 그들의 우두머리도 농부로 위장한 채 잡혀 들어온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가 잡힌 줄 모르는 적군 동조세력들은 이 지도자의 소재를 대라고 한사람씩 데려다가 고문을 한다. 이때 자백을 할 것인지, 또는 자백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순전히 자신이 정해야 한다. 이때까지는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자기가 정해야 한다. 이 놀라운 자유 앞에서 앙리는 자기의 삶이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는 것으로, 그저 한 조각의 잉여물인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인데 결정이란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가치 평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고문을 받다가 자백을 거부한 쏘르비에는 창문으로 뛰어 자살한다. 우연찮게 이곳에 온 '장'은 그의 동지들에게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음을 느껴 절망하고, 자신의 역할 때문에 자신의 시체라고 속일 수 있는 정보를 주고 그곳을 나간다. 그리고 소년 프랑스와가 실토할 것을 걱정한 단원들은 결국 그를 죽이게 된다. 이들에게 지도자의 출처를 대면 살려주겠다고 하는 고문자의 리더... 남은 단원들은 고민을 하고 결국 그 위치를 넘기는 것을 동의하고 실토한다. 그러나 모두 총살당하고 만다.

 

 

 

 

「악시옹」지와의 회견에서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만일 지금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면, 그리고 자기를 만들면서 동시에 온 인류의 책임을 떠맡게 된다면, 만일 선험적으로 주어진 가치나 도덕이 없이, 받침점이나 길잡이도 없이 혼자서, 그러면서도 모두를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 어떻게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토록 완전한 책임 앞에서 어떻게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겠는가?" (Action, 1944, 12.27)

 

 

 

≪무덤 없는 주검≫은 체포된 저항세력에 대하여 대독일 협력자가 가한 고문의 잔인성과 고문을 받는 저항 운동자들의 인간적인 고민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대독협력자들의 야수와 같은 행위에 항거하고,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인간들은 끝까지 참다운 인간으로 살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표현한 작품이다. 정신적인 자유, 참다운 인간애로써 갖은 고초를 이겨내려는 여러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 인간은 도덕적, 심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그려져 있다. '더러운 손', '무덤 없는 주검' 두 희곡은 사르트르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던 시기에 집필된 작품들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으며, 진보적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던 작가 자신의 체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전쟁과 혁명, 그 변혁기의 혼란과 격정의 시대에 사르트르는 인간의 해방과 역사의 전진을 위하여 매진하는 군중들 속에서 작품을 통하여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상을 제시하고, 실재하거나 실재 가능한 조직들의 활동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해내고 있다.

 

 

 

'더러운 손'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이 패배해 갈 무렵 독일과 인접한 동유럽의 한 가상 국 '일리리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와 국내정치를 배경으로 하여 공산주의 정당인 노동당내에서 노선투쟁과 노동당의 정책변화 과정에 얽힌 정치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념과 현실, 원칙과 방법, 조직과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워나가는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진실을 규명하려는 작가정신이 치밀한 심리묘사와 함께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무덤 없는 주검' 역시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프랑스의 대 독일 저항단체인 레지스탕스 조직을 소재로 하여 민족과 이념, 조직과 개인,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리얼하게 그려내며, 그 극한 상황 속에서 발현되는 휴머니즘과 생명체의 본성을 추적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이 작품 속에서 쌍 범주인 이념과 현실, 원칙과 방법, 조직과 개인, 삶과 죽음, 사랑과 휴머니즘의 문제를 존재의 극한까지 몰아붙임으로써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 규명을 시도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본질문제를 생명체의 극한으로 몰고 가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제시하며, 그 한계점을 통하여 좀 더 고양된 세계관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사르트르가 이 작품을 통해서 해부하려고 했던 역사, 사회, 정치, 조직과 인간, 휴머니즘의 문제는 시대의 간격을 뛰어넘어 통시적으로 관통되는 우리들 삶의 본질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읽을 때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반추하게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