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리보 '노예들의 섬'

clint 2015. 11. 10. 11:36

 

 

 

<노예들의 섬><1725>은 유토피아를 다룬 마리보의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이상적인 세계를 소재로 삼은<이성의 섬>(1727)과<식민지>(1750)를 발표하기 전에 마리보는<호감이 주는 놀라운 효과>(1713)를 통해 이국 취향을 작품에 반영한 바 있다. 작품의 공간으로 동시대의 프랑스가 아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식민지나 가상의 무대가 등장하는 것은 당국으로부터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 계급의 청년과 하인들이 쌍으로 등장한다. 아테네 출신의 청년 이피크라트에게는 하인 아를르캥이 있고, 양갓집 규수인 외프로진에게는 클레앙티스라는 하녀가 있다. 결혼을 앞둔 청춘 남녀가 상대방의 사람됨을 탐색하고자 자신들과 하인의 역할을 바꾸는 것이 마리보 극작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라면<노예들의 섬>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불의의 사고로 낯선 섬에 도착해 신분의 역전을 경험한다. 난파한 배에서 생존한 두 명의 주인과 두 명의 하인들이 파도에 떠밀려 도착한 섬은 100년 전에 그리스 노예들이 주인들에게 반기를 들고 자유를 획득해 세운 노예들의 공화국이다. 이곳에 잘못 들어온 타지의 주인들은 노예로 신분이 전락하고, 노예 출신의 난민은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일종의 노예들의 천국이자 주인들의 지옥이다. 노예들의 섬에서 지켜야 히는 규범과 질서를 전달하고 집행하는 트리블랭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노예 출신이었던 조상들은 자신들을 핍박한 주인들에 대한 앙갚음으로 우연히 이 섬에 오는 모든 주인들을 죽이고 하인들을 해방시키는 복수극을 자행했다. 20년이 지나 분별력과 여유를 되찾은 주민들은 자신들의 법규를 좀 더 온건하게 만들어 지배 충의 오만함을 교정하는 데 치중해 3년이라는 치유의 시간을 부여해서,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진전이 없으면 계속 붙잡아두는 법을 집행하고 있다. 트리블랭은 노예들의 섬에 도착한 난민들에게 각자 신분에 맞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아테네에서 지배층으로 행세했던 이피크라트와 외프로진은 노예로 전락한 자신들의 처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졸지에 자유와 권력을 얻게 된 하인들의 주인 놀이는 마리보 특유의 '극중극'을 만들어낸다. 이피크라트 역할을 맡은 아를르캥과 외프로진이 된 클레앙티스는 주인들의 흉내를 내며 상대에게 서로 수작을 걸어보는 장난을 시도한다. 이들은 우쭐한 기분에 상대방의 하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또 하나의 유희를 즐겨보지만 과거 주인들의 벽을 쉽게 넘지 못한다. 이탈리아 희극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 아를르캥이 주로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에 그치며 주인 계급에 대한 반항심을 계층의식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에 비해, 외프로진에 대한 클레앙티스의 반발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비장하기에 상대방은 물론 관객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경박한 황금만능주의와 허영심으로 가득 찬 지배 계층의 권위의식을 낱낱이 고발하는 클레앙티스의 웅변은, 이 작품에 역할 바꾸기를 통한 유희 이상의 사회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온갖 천대와 핍박을 경험한 일개 하녀의 웅변에 감동한 외프로진은 과거의 오만을 뉘우치고 본국으로 돌아가 자 신의 재산을 똑같이 나눌 것을 약속한다. 사회적 평등 이전 에 물질적 평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주인 계급과 하인 계층을 쌍으로 등장시키는 마리보 특유의 인물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기 위하여 서로를 희롱하는 마리보다주기의 차원을 넘어 사회 계층 간의 괴리를 부각시킨 점에서, 젊은이들의 연애와 감정의 미묘한 뉘앙스를 주로 다루는 그의 희극에서 매우 예외적인 위상을 확보한다.

 

 

 

 

 

 

보마르셰와 함께 I8세기 희극작가를 대표하는 마리보(Marivaux)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그가 남긴 작품에 비해 훨씬 적다. 1688년 2월 4일 파리에서 태어난 마리보는 11세가 되는 해에 화폐 주조국의 책임자로 발령이 난 부친을 따라 오베르뉴 지방의 리옴을 거쳐 리모주에 정착해 소년기를 보낸다. 오라토리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고 고대 작7!들을 비롯해서 르네상스 시대와 17세기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접한다. 청년기에 접어든 마리보는 1710년에 파리에 복귀해 법학 공부를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문학에 입문할 것을 결정한다. 24세가 되는 1712년에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막극<신중하고 공정한 아버지>를 리모주에서 공연하지만, 정작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극작이 아닌 소설 장르를 통해서다. 1713년에 발표한 《호감이 주는 놀라운 효과》는 사교계의 취향을 반영하는 이른바 '프레시오지테' 경향의 장편 연애소설이다. 이후 마리보는<진창에 빠진 마차>(1714),<변장한 일리아드>(1717)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사교계의 살롱을 출입하기 시작한다. 파리에서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마리보는 《메르퀴르 드 프랑스》 같은 신문에 자신의 기사를 올리면서 기자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마리보는 1716년 피에르 카를레드 상블랭(Pierre Carlet de Chamhhiin)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집근처에 있는 길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마리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이듬해 마리보는 파리 외곽에 있는 고도(都) 상스의 부유한 부르주아지 출신으로 막대한 지참금을 가져온 콜 롱브 볼로뉴 (Columbe Bollogne)와 결혼하지만, 당시 프랑스 경제를 뒤흔든 스코틀랜드 출신의 투자가 존 로(John Law)가 야기한 파산 사태의 희생자가 되어 대부분의 재산을 날리고 만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마리보에게 닥친 또 하나의 불행은 그의 부인이 결혼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네 살에 불과한 딸을 혼자서 양육하게 된 마리보는 이제 작가적 명성이 아니라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마리보의 극작 활동은 1720년에 본격화되어<한니발의 죽음>,<사랑 과 진실>,<사랑으로 순화된 르캥>등 무려 세 편의 작품이 같은 해에 발표된다. 루이 14세 치세 말기 멩트농 부인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추방 되었던 이탈리아 극단의 배우들은 오를레앙 공에 의한 섭정의 시작과 더불어 1716년, 파리 무대로 복귀해 예전에 거두었던 성공을 재현하고 있었다. 마리보가 1720년대에 완성한 15편의 극작 가운데 무려 11편을 이탈리아 극단에서 공연한 것으로 보아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보는 극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히는 중에도 《프랑스 관객》이라는 신문을 창간하는가 하면<마리안의 삶>(1731~1741),<출세한 농부>(1735) 같은 작품을 발표해 소설의 형식과 미학을 혁신했다. 마리보는 1742년, 당대 최고 지식인이자 문필가로 평가되는 볼테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한림원 회원이 된 이후 마리보의 작품 활동은 현저하게 감소해서 1763년 파리에서 사망할 당시 그는 동시대 문단에서 거의 잊힌 존재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연극계와 평론계의 인사들은 마리보의 연극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18세기의 몰리에르로 추앙받던 보마르셰를 제치고 마리보는 이제 몰리에르와 비교되는 작가로 평가가 역전되었다. 두 작가 모두 이탈리아 희극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연애 감정의 세밀한 묘사에서 마리보가 몰리에르를 능가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