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에 '배신' (Betrayal)을 발표한 이후 핀터는 더 이상 자신의 정치적 관심을 부 텍스트에 머물게 하지 않고 텍스트로 끌어올린다. 핀터는 1984년에 '마지막 한잔', 그리고 4년 후에 발표된 '산골사투리'를 통해 이와 같은 방향전환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면모는 1991년 10월 알메이다에서 초연한 '파티타임'에서 그리고 같은 해에 발표된 짧은 스케치 『새로운 세계질서』까지 지속된다. 『파티타임』에서는 사회적 질서라는 명분과 '유능한' 정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들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한 최고 부르주아들을 고발한다. "주변의 포악무도함으로부터 차단된 진공으로 봉인된 최고 부르주아에 대한 강력한 우화”라고 마이클 빌링톤(Michael Billington)은 해석한다. 런던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관객들이 더 이상 핀터 스타일을 재미있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평가들은 그 작품이 과연 관객들에게 문제의식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요컨대 '파티타임'에서 핀터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중 하나인 부르주아의 특권과 국가에서 그들이 누리는 권력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부정과 부패에 대해 흥분하는 것이 멋진 행동이 될 수 없는 나르시서스 적 물질주의에 의해 우리들의 삶이 지배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과연 관객들이 문제의식을 가질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비평가들의 핀터 작품을 보는 이와 같은 시각에 마이클 빌링톤은 절망한다. '파티타임'은 파티 장소를 분명히 명기하지 않는다. 모든 정황으로 비추어 보건대, 파티는 런던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들이 주목할 것은 '파티타임'의 축제적 분위기에 '생일파티', '최후의 한잔'에서처럼, 폭력적 언어와 이미지가 항상 침입해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핀터는 바로 이 두 상반된 분위기를 연극의 시작 장면부터 멀리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를 집어넣음으로써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와 같은 두 상황의 상존이 '파티타임'에서 핀터가 관객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핀터는 개빈(정부고위관리)의 플랫에서 벌어지는 즐거운 파티와 '범인검거'가 잔악하게 이루어지는 외부 상황을 병행시키고 거의 매 장면마다 폭력적 언어와 이미지를 파티 분위기와 공존하게 한다. 첫째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말하자면,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어요.”라는 말로 대화가 시작된다. 주어를 대명사 “그것”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지만 곧,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곳은 유한계층 사람들 이 회원인 헬스클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 대화의 내용은 그 클럽에 있는 설비와 그 클럽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얼마나 멋진가, 이다. 테리(더스티 남편)가 클럽이 제공하는 '환상적' 뜨거운 타월에 대해 이야기하자, 개빈은 적극적으로 그 화제에 끼어든다. 개빈은 클럽이 제공하는 '환상적' 으로 뜨거운 타월 대신에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뜨거운 타월' 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이발소의 뜨거운 타월은 얼굴의 여드름을 태워 없애버리는 용도로 쓰인다. 개빈이 말하는 이발소의 '뜨거운' 타월은 테리가 말하는 정말 안락함을 느끼게 하는 클럽의 '뜨거운 타월' 과는 거리가 멀다. 테리가 말하는 타월이 축제적 즐거움을 나타낸다면, 개빈이 말하는 타월은 고통스럽지만 참아내야만 하는 외부현실이다. 개빈이 사용하는 대사들 중 "모든 여드름들이 없어져 버리지” “그것들을 모두 태워 버렸어” 등의 대사는 우리들의 현실에서 '여드름'과 같은 인간들을 태워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한다. 개빈은 바로 이러한 서비스가 관행인 '서쪽 지방'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개빈을 환상적 헬스클럽에서 대환영할 것이라고 테리가 아첨을 떨고 있는 바로 그 순간 테리의 부인인 더스티가 들어온다. 그녀의 첫마디는 “지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었어요?”이다. 테리는 당황해 하면서 더스티가 그 화제를 더 이상 입에 올리지 못하도록 "지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지. 그리고 당신이 착하게 굴지 않으면 내가 때려줄 거야."라고 위협한다. 그러자 곧 더스티는 자신의 질문을 접어 버리고 남편과 개빈의 이야기에 끼어든다. 클럽의 멋진 조명,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멋진 남녀들, 맛있는 음식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인물인 노부인 멜리사가 등장한다. 멜리사도 더스티처럼 외부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군인들만이 거리를 지키는 공포감이 도는 죽음' 의 외부의 세계는 파티 분위기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곧 멜리사도 파티 분위기에 휩쓸리게 된다. 그러나 동생인 '지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에 관심을 가진 더스티는 “계속 이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고 있어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계속 외부 현실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자 테리는 더 위협적으로 그녀를 협박한다. 개빈이 멜리사를 다른 손님들에게 인사시키기 위해 데려가자 둘만 남은 테리는 더스티를 노려본다. 첫 장의 마지막 장면인 이 장면은 파티에 외부 현실이 끼어들면서 파티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폭력적 분위기와 폭력적 언어가 끼어들게 됨을 잘 드러낸다. 외부에 관심을 가진 더스티는 남편의 폭력적 언어에 의하여 봉쇄를 당하기 때문에 전혀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첫 장에서처럼 거의 모든 장면의 축제적 분위기에 폭력적 언어 때로는 폭력적 분위기가 끼어든다. 그러나 이것은 파티분위기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관심사인 남녀 문제, 멋진 여름휴가, 그리고 그들이 속한 클럽에 대해 열을 올려 이야기한다. 리즈와 샬로트는 사랑 문제와 '음란 증 계집' 의 욕심 많은 행동들을 화젯거리로 삼으며, 더글러스는 살로트에게 여름 휴양지인 섬과 배에서 갖는 성관계가 주는 활력에 대해 자랑한다. 이와 같은 대화를 두서너 명이 모여서 한다. 두서너 명씩 여기저기 분산되어 서로 대화한다. 그러나 연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하나로 합해진다. 핀터는 두서너 명씩 그룹을 지어 대화하는 상황을 15장까지 보여준다. 그러다 제 16장에 가면 지미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테리와 멜리사가 대표하여 클럽에 관한 긴 대사를 읊는다. 구체제의 생존자인 멜리사 부인은 현재 그들이 속한 클럽이 "도덕심, 도덕적 의식, 도덕적 가치”들을 가졌음을 강조하기 위해 도덕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에 사라져버린 그녀의 젊은 시절의 테니스와 수영클럽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 중요한 결정이 18장에서 내려진다. 그 결정은 오늘 파티의 주최자인 개빈이 그 클럽의 명예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개빈은 파티의 주최자이자 바로 바깥 길거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범인 검거' 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 고위 관리임이 17장과 IS장에서 극적으로 제시된다. 제17장에서 개빈의 부하 직원인 할로우가 전화로 외부 상황을 보고 받고 제 18장에서 개빈은 할로우로부터 외부 상황이 끝났다는 보고를 직접 받는다. '범인검거' 의 마지막 보고를 받은 정부의 고위관리 개빈이 클럽의 회원이 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로써 외부 상황에 대한 책임은 개빈은 물론 그 파티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장되게 된다. 명료하게 개빈은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서만 드러났던 모호했던 외부의 위협적 상황을 설명 한다. '범인검거'를 하기 때문에 교통이 막히는 곳이 있었는데 오늘 밤으로 범인 검거가 끝나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임을 모든 참석자들에게 설명한다. 개빈의 설명은 제1장에서 멜리사가 한 질문인 "도대체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에 대한 답이며 그녀가 묘사했던 길거리의 모습인 "마치 페스트가 유행하는 것 같아요” “동네가 죽은 듯이 고요해요.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한 사람도 눈에 띄질 않아…”를 이해하게 해준다. 마지막 장인 제 19장에서 개빈이 설명한, 그리고 멜리사가 묘사한 위협적 상황이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된다. 바깥에서 벌어진 잔인한 상황을 조명과 지미의 모습을 통해 구현한다. 이 상황을 무대 위에 올리면서 동시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계속 들리게 한다. 파티에 참석한 이들의 웃음, 이들의 무관심은 지미의 상황을 더욱 절망스럽게 만든다. 이미 죽었을 수도 있는 지미가 하는 대사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것이 닫힌 상황은 바로 현대인들이 놓여 있는 정치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 속의 사람들은 지미처럼 어두움을 빨면서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예요. 어두움이 나의 입 속에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것을 빨아들여요.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에요. 그건 내 거예요. 나 자신 만의 것이에요. 나는 그것을 빨아들여요.”

연극이 벌어지는 장소는 어디일까? 파리, 베를린, 워싱턴, 이스탄불,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티아고 등 어디여도 괜찮다. 핀터가 이 작품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파시즘의 선 조건들 - 근시안적으로 자기 세계에만 관심이 있는 부유한 엘리트들, 그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결정들의 실상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한 부유한 엘리트들 - 이 영국에 위험스러울 정도로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우아한 거실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에는 외부현실의 야수성이 들어 있고 그들이 선정하여 사용하는 어휘는 정치적으로 타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젠다' 라는 단어가 그러한 면을 잘 드러낸다. 더스티가 반복적으로 그녀의 남동생에 대해 물을 때, 테리는 지미에 대한 문제를 “어떤 누구도 협의 사항(agenda)으로 삼지 않을 거라고” 윽박지른다. 더스티가 두 번이나 그것을 "협의할 것”이라고 말하자, 테리는 거칠게 답한다. "아니야. 아니야. 당신은 그 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어. 그 점에 대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어. 그 부분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이. 당신은 어떤 계획(agenda)도 가지고 있지 않아. 알아듣겠어? 당신은 어떤 계획 (agenda)도 없어”라고 답한다. 여기서 우리는 'agenda' 라는 단어의 뜻이 이중으로 사용됨에 주목하게 된다. 더스티는 agenda' 라는 단어를 회의에서 생각될 업무의 항목들처럼 사람들 간에 이야기되어야 할 항목으로 이야기하는 데 반해 테리는 'agenda' 를 정치적 행동에 대한 완곡한 처방으로 변화시켜 사용한다. 샬로트가 그녀의 옛 애인 프레드와의 대화에서 사용하는 단어 'regime 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그들의 대화에는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서술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은 순간적으로 살로트의 남편이 국가가 자행한 고문(state torture)의 희생물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짧은 대화에서 추론할 수 있다. 프레드는 샬로트에게 “길거리는 우리들에게 맡겨”라고 경고한다. 샬로트는 우리들이 누구냐고 따진다. 이에 프레드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린다. 그녀는 그를 노려본다. 그런 후에 복합적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regime'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를 간접적으로 공격한다. 샬로트는 프레드를 납작하게 하기 위해 'regime' 을 '섭생방법' 이라는 뜻과 '체제' 라는 정치적 의미 두 가지로 사용한다. 마이클 빌링톤은 샬로트와 프레드의 대화를 핀터가 근래에 쓴 최고의 대화라고 극찬한다. 그들의 대화는 "형식적이고, 짤막짤막하고, 노엘 카워드(Noel Coward) 스타일의 대화로 숨겨진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샬로트가 사용한 체제의 의미로서 regime'은 프레드의 "나는 깨끗하게 살아” 라는 답과 어우러져 외부의 잔악한 정치현실과 공명의 효과를 낸다.
핀터가 연출했던 '최후의 한잔'의 빅터와 '파티타임'에 위협적 프레드 역을 맡았던 로저 로이드 팩(Roger Lloyd Pack)에 의하면 ‘파티타임'이 '최후의 한잔'보다 더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다. '최후의 한잔'의 경우는 그 연극이 어느 장소에서 사건이 벌어지는가에 대해 묻지 않는다. 반면에 '파티타임'의 경우 관객들은 이 작품이 영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작품에서 언급되는 클럽은 웨스트 런던의 수영장과 체육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영국이라는 것은 파멜라의 대사에 나오는 "옥스퍼드”와 에밀리와 수키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지방 말 시합으로도 알 수 있다. '파티타임'의 부유한 상류 계층의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한 사치스러운 소비와 건강 파시즘에만 열중해 있을 뿐, 무엇이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이 작품은 자신만의 밀폐된 공간에 갇혀 사회에 무관심한 상류 계층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력하게 제시한다. 그러면서 한편 '파티타임'에서 이미 핀터는 '달빛'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파티 참석자들은 대화를 하면서 자신들이 폭력적(terrorist) 전체주의 체제하에 있음을 관례적인 농담을 통해 드러낸다. 요컨대, 핀터는 파티 참석자들의 대화의 셉 텍스트를 통해 폭력적 상황을 폭로한다. 그뿐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더스티의 “지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의 대사를 제1장에서부터 제12장까지 중간 중간 넣음으로써 폭력적 공포의 상황이 현실감 있게 파티 분위기와 함께 공존하게 한다. 그녀의 “지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대사는 한편 잘난 체하는 상류충의 자족적 조화의 분위기를 깨는 효과를 낸다. 섭 텍스트에 의해 암시되는 외부의 공포 상황과 더스티의 계속되는 질문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바뀐 조명하에 공포와 잔악함의 희생자들 중의 하나인 지미가 답이 되어 나타난다. 그는 짧고, 감동적인, 그러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서술식의 독백을 통해 우리들이 처한 현대의 정치적 현실을 집약한다. 핀터는 시민들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실제적으로는 폭력을 휘두르는 정부 고위 관리, 폭력이 산재해 있는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관심한 상류충과 지배계층 사람들에게 절망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완곡법의 정치적 담론과 야수적 현실 사이의 깊어지는 심연에 대해 절망 한다. 바로 이러한 주제를 핀터는 『파티타임』에 이어 『정확하게』에서 다룬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짧은 작품인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도 다룬다.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는 좀 더 범위를 넓혀 표면으로는 신성한 시민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폭력을 휘두르는 민주주의를 고발한다. 이 작품들은 매우 짧음에도 불구하고 핀터 작품의 지평선을 확장시켰다. 핀터의 이러한 작품들의 가치는 단지 정치적 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는 데에 있지 않다. 고문, 처벌, 마음을 혼란시키는 충격적 죽음 의 이미지와 진실에 연막을 치는 언어를 대위법적으로 놓음으로써 작 품의 연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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