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브라이언 프리엘 '심령 치료사'

clint 2015. 11. 10. 09:54

 

 

인간의 삶은 대개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현재는 언제나 찰나적이기 때문이다. 삶의 아주 자그마한 진실이라도 캐내려면 기억이라는 실마리를 붙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기억이라는 것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종종 다른 데 말이다. 기억의 내용은 기억의 주체인 인간 각자의 욕망이나 상황에 따라 자주 달라지고, 그리하여 때때로 사람 사이 갈등과 반목의 원인이 된다. 어쩌면 인간의 고통은 너와 나의 기억이 다름을 확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아일랜드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의 1979년 작품 <간혹,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저마다의 기억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 과연 서로 소통하고 나아가 진실을 포착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원제는 <Faith Healer>, 즉 믿음으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이 작품에선 ‘기적의 치료사’ 하디, 그의 연인 그레이스, 매니저 테디가 같은 시공간,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독백의 형식으로 쏟아낸다. 여러 마을을 다니며 이들 세 사람이 벌인 ‘기적의 치료 순회공연’은 모조리 가짜 약장수 공연 같은 사기극이었을까, 아니면 그 중 진짜 기적도 포함돼 있었을까.

 

 

 

현대 아일랜드 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현존하는 아일랜드 최고의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 (Brian Friel) 의 『심령치료사』 (Faith Healer 1979)는 그의. '번역' (Translations 1981), '의사통보줄' (Comunication Cord 1983)과 함께 '언어극'으로 분류되거나, 또는 그의 『루나사 축제의 (Damwg at Lughnasa 1990), 『몰리 스위니』(1994)와 함께 '기억극'으로도 분류된다. 『심령치료사』는 관습적인 극의 액션 대신에 세 명의 극중 인물 - 심령치료사 프랭크 하디, 그의 아내 그레이스, 그리고 매니저 테디 - 이 각자 고립된 채 일체의 상호간 대화나 교류 없이 차례대로 무대에 따로 등장하여 진술하는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극의 형식이 매우 독특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독백/내러티브는 그들이 과거에 프랭크의 심령치료사 역을 위해 웨일즈와 스코틀랜드를 함께 떠돌아다니면서 공유했던 경험과 사건들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여과하여 재구성된 것으로서 그 내용이 서로 불일치하거나 상충한다는 점에서 분석의 여지를 남긴다. 제 1부는 프랭크, 제 2부는 그레이스, 제 3부는 테디, 그리고 제 4부는 다시 프랭크의 독백으로 된 내러티브가 그것이다. 『심령치료사』에서 이처럼 세 명의 등장인물들 각자의 과거에 대한 파편화된 기억의 상당 부분이 서로 불일치하다는 사실은 그들의 기억이 이른 바 "포스트모던 기억”의 전형임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 어떤 기억의 버전도 진정성이 미심쩍고 따라서 그 어떤 버전에도 중심이나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러 버전의 기억들 가운데 그 어느 것이 진실인지의 진위 여부를 입증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진위에 대한 어떠한 판단의 시도 또한 무의미하다. 바로 이러한 기억의 불일치의 틈새와 간극에 과거 사건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극작가 프리엘은 이 극에서 이러한 포스트모던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욕망, 실제와 허구, 언어와 진실간의 문제를 탐구한다. 그들이 과거에 공유했던 경험과 사건들을 기억을 토대로 재편집한 내러티브의 세부사항들이 서로 다른 이유는 그들 각자의 개인적 욕망, 욕구, 강박관념이 그들의 기억을 억압하거나 전위하기도 하고 또는 강조하거나 과장한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서로 다른 독백/내러티브는 개인의 욕망과 심리 구조가 어떻게 기억을 검열하고 재편집하는가를, 그리고 그 결과 과거의 사건이 어떻게 왜곡되거나 굴절되고 혹은 과장되거나 축소되며, 심지어는 삭제되는가를 명백히 보여준다. 동시에 이 극에서 상충하는 기억의 재구성은 프리엘의 대부분의 극에서 감지되는 탈식민주의 아일랜드라는 맥락을 상기함 때, 단순히 개인의 심리 구조와의 관련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정치적, 문화적 차원의 문제로 확대 연계된다. 프랭크(아일랜드인), 그레이스(앵글로-아일랜드인), 테디(영국인)는 서로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상호의존적인 탈식민지 북아일랜드에서의 아일랜드인, 앵글로-아일랜드인, 영국인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세 인물의 서로 다른 기억의 내러티브는 과거 식민지 역사에 대해 각 민족의 시대적 욕망이 재편집하고 재구성한 허구화된 지배 담론과 그것에 도전하는 신화화된 소서사들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프리엘은 '자화상'(1972)에서 다섯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갔던 낚시 여행에 대한 회상을 통해 기억과 실제 간의 간극에 대한 통렬한 인식을 기술한다. 프리엘의 기억 속에서 소년 프리엘은 어깨에 낚싯대를 메고 호수에서 도네걸 주의 경계마을인 글렌티스의 중심기에 이를 때까지 행복하게 노래하며 빗속을 걸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생생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 진흙탕 길에는 호수가 없다. 프리엘이 기억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억 속에 내내 간직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억이 허구 속에서 실제를 재창조해 낸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프리엘에게 진실이란 주관적인 것이며,개인의 인지와 기억의 문제라는 것이다. 진실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에 관해 기억이 재편집한 내러티브에 있는 것이다.
『심령치료사』에서 프랭크, 그레이스, 테디가 과거에 공유했던 동일한 주요 사건을 차례대로 반복적으로 매번 소개함으로써 기억이 중첩될 때마다, 새로운 내러티브의 버전은 앞선 내러티브의 버전과 상충되기도 하고 또는 그 의미가 수정되거나 새로 밝혀지기도 한다. 이것은 각 등장인물의 감추어진 욕망이나 강박관념이 서로 다른 초점과 관점을 형성하여, 각자의 기억을 독창적으로 재편집하고 사건을 재구성한 결과이다. 기억과 욕망 간의 상호관련성이 극적으로 노출되는 부분이다. 이 극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기억의 억압/ 굴절/ 왜곡/ 삭제를 보여주는 예는 무수히 많다. 그들은 과거의 경험 가운데 특정한 상황들에 대해, 그리고 심지어 그레이스의 이름과 주요 지명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일 사건에 대한 각자의 서로 다른 기억의 버전과 내러티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세 가지 꼽을 수 있다. 첫째, 스코틀랜드의 외딴 마을 킨로크버비에서 생긴 일, 둘째, 프랭크가 웨일즈 마을 랜블레시인에서 열 명의 불구자 모두를 치유한 날 방에 생긴 일, 그리고 셋째, 아일랜드의 밸리백으로 귀향한 날 다음날 새벽 프랭크가 마지막 시연에 실패하고 아일랜드 청년들에게 살해당한 일 등이 그것이다. 프리엘은 세 인물의 내러티브에서 매번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그들의 상충되는 기억을 통해 그들의 숨겨진 욕망과 강박관념이 각자의 기억을 왜곡시켜 일종의 서로 다른 허구를 재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째, 킨로크버비에서 생긴 일에 대한 제 1부 프랭크의 기억에서 그곳은 그가 어머니의 심장마비 소식을 전해들은 곳이며, 그레이스의 헌신적인 충성심을 다시 확인한 곳이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프랭크는 제 2, 3 부의 그레이스와 테디의 기억에서는 그렇게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그레이스의 사산아에 관한 기억을 여기서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이에 삭제해 버린다. 이것은 오직 심령치료의 성공에만 몰두해 있는 프랭크의 자기중심적 강박관념을 반영한다. 그의 기억에서는 신유치료 능력이나 행위와 무관한 것이거나 또는 심령치료에서 실패한 것들은 모두 여과되고 은폐된다. 따라서 그레이스가 그토록 원하는 두 사람의 낭만적 관계는 그의 기억에서 모두 삭제되어 있다. 반면 제 2부의 그레이스의 기억에서 킨로크버비는 그녀가 사산아를 유산하여 매장했던 마을로서, 치유되지 않은 그녀의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서려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사신아가 프랭크의 아이였다는 점과, 그 분만 현장에 프랭크가 함께 있었다는 점, 그리고 프랭크가 그 사산아의 무덤과 나무십자가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은 제3부의 테디의 독백의 내용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테디의 기억에 따르면 그레이스의 사산아가 분만 현장에 프랭크는 아예 없었다. 따라서 그 자신이 남편과 산파의 역할을 모두 도맡아서 했다는 것이다. 그레이스에 대한 삼각관계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테디의 버전에서는 그가 프랭크를 대신할 수 있었다는 만족감과 그레이스에 대한 욕망 충족의 환희가 그곳의 날씨를 햇살이 흠뻑 내리쬐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서 묻어난다. 테디는 프랭크가 그레이스의 분만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 일부러 자리를 피해 언덕으로 향했던 일, 그리고 산고를 겪던 그레이스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소리치고 비명을 지르며 프랭크를 찾던 일 등을 상세하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오직 프랭크와의 관계만을 중요시하고 오직 프랭크에게만 모든 욕망이 향해 있는 그레이스의 제 2부의 독백에서 그녀는 노골적으로 그녀의 기억에서 테디를 완전히 삭제한다.
둘째, 프랭크가 웨일즈의 시골 마을 랜블레시인에서 열 명의 불구자 모두를 기적적으로 치유한 날 방에 생긴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세 명의 등장인물 각자의 버전은 서로 다른 욕망과 관점을 투영한다. 제 1부 프랭크의 버전은 치료 재능에 대한 그의 강박관념에 의해서 또다시 재편집된다. 그는 치료받은 사람들 중에 절름발이 늙은 농부가 되돌아와서 자신에게 감사 인사를 했던 그 일만을 언급한다. 따라서 제 2부의 그레이스의 독백에서는 그렇게도 중점적으로 언급되어지는 일, 즉 그날 감사의 표시로 시골 농부가 통째로 선물한 지갑과 그 덕분에 환희에 넘쳐 그녀가 프랭크와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났던 일, 그리고 카디프의 호화로운 호텔에서 지냈던 일 등에 대한 언급 등이 프랭크의 독백에서는 아예 삭제되어 있다. 이 부분은 그레이스에게는 그녀가 프랭크와 함께 했던 삶의 단편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반면 프랭크에게는 그것이 심령치료자로서의 그의 본질적인 정체성과 무관하기 때문에 그가 이 부분을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죽은 프랭크가 진술하는 제 4부에서도 오로지 강조되는 부분은 그날 밤의 그의 기적적인 치료 능력, 치료사로서 그의 정체성을 재확인 시켜준 신문 기사, 그 이후에도 줄곧 그가 그 오려낸 기사를 수년 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던 일 등이다. 그런가 하면 제 3부 테디의 독백은 그날 밤 프랭크와 그레이스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다가 자신만을 홀로 남겨 놓은 채 훌쩍 떠났던 일,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카디프의 호화로운 호텔에서 지갑이 바닥날 때까지 사치스럽게 생활했던 일을 기억해 낸다. 테디는 두 사림에게서 완전히 배제된 채 홀로 남겨졌던 그날 방 자신이 실제로 느꼈던 고통의 감정을 기억 속에서 애써 지우려고 하면서 그저 프랭크와 그레이스가 약간 경솔했을 뿐이라는 말로 자신의 욕망의 좌절을 은폐하려 한다.
셋째, 그들이 프랭크의 고향인 아일랜드 도네걸의 밸리백으로 귀향하던 날 밤 들렀던 선술집에서 프랭크가 마지막 시연에 실패한 운명적인 날에 관한 세 인물의 기억 또한 각자의 숨겨졌던 욕망과 강박관념에 의해 굴절된다. 제 2부 그레이스의 기억의 초점은 그날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프랭크에게 역시 맞추어져 있다. 또한 그레이스는 휠체어에 앉아 있던 마비된 불구자 맥가비를 치유하지 못하도록 프랭크를 만류했지만, 그날 역시 프랭크의 치유 사역에 대한 강박은 그녀를 마치 그곳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배척했음을, 그리하여 그녀가 느꼈던 질투어린 분개와 원망을 기억한다. 한편 제 3 부 테디의 기억에서 특이할 만 한 점은 프랭크의 시연에 관한 언급이 이에 삭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신에 테디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뒤로 다 넘긴 채로 노래를 부르던 그레이스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녀를 지켜보던 자신의 열렬한 욕망을 감출 수 없었던 아찔했던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테디가 평소 그토록 강조하던 사적인 영역과 직업적인 영역간의 경계가 와해된 순간이다. 그가 친구는 친구이고 일은 일이다, 라는 전문 직업인의 법칙과 사업적인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그가 그레이스에 대한 자신의 사적인 열정을 직업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자신의 욕망의 진실을 애써 굴절시키고 은폐하려는 것을 반증한다. 반면 제 4부 프랭크의 독백에서는 치료 재능이 소진된 프랭크가 선술집에서 만난 불구 맥가비를 보는 순간 그를 치료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직감하였음이 드러난다. 프랭크 는 치료에 실패할 경우 그에 대한 보복으로 술에 취한 네 명의 젊은 아일랜드 조국 청년들에게 살해당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서도 야릇한 위안을 얻는다. 그는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고, 처음으로 평생 동안 그를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괴롭혀 왔던 공포와 미칠 듯한 의문들에서 해방되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그가 그동안 자신의 강박관념인 치료 재능과의 분투로 인해 얼마나 괴로워했는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Brian Friel)
20세기 초에 예이츠(W. B. Yeats)와 존 밀링턴 싱(J. M. Synge), 그리고 그레고리 여사(Lady Gregory)를 주축으로 한 아일랜드 문예부흥이 켈트 족의 언어와 신화의 재창조에 주력함으로써 식민지 경험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주의적 아일랜드의 재건을 목표로 했다면, 20세기 말 프리엘과 필드 데이 극단(Field Day Theater Company)이 선봉이 된 새로운 아일랜드 문예 운동은 동시대의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아일랜드의 민족 간, 종파 간 화합을 실현할 수 있는 상상의 제 5영역의 창조와 공동의 목소리를 추구하였다. 북부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로서 프리엘은 자신의 고향 얼스터의 일부 지역이 분단된 아일랜드에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에 소속됨으로써 지신의 조국 아일랜드에 살면서도 고향을 떠난 유랑자로 살아간다. 조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가 느끼는 문화적, 정치적, 언어적 고립감은 그의 대부분의 극에서 탈식민주의 아일랜드에서의 위기의 문제로 표출된다. 표면적으로 『심령치료가』는 정치적인 것과 무관한 극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극 역시 개인의 기억의 문제가 국가와 민족의 기억 혹은 역사의 문제로까지 확대 해석될 수 있는 저류가 흐른다. 이 극에서 무대 위의 상호 고립된 배우들은 그들 상호간의 관계의 결핍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한다. 특히 이 극에서 세 인물과 그들의 출신간의 관계는 이들 인물들과 국가 정체성과 의 관계를 암시하며, 세 인물간의 갈등과 복잡한 관계는 동시대 탈식민주의 의 영국,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간 국가/민족 간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 또는 은유로 작용한다. 이 극을 국가 정체성에 관한 극 혹은 영국- 아일랜드 간 관계에 대한 은밀한 알레고리로 보는 비평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이 극에서 세 인물의 기억의 사적인 공간은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을 너머서 민족 또는 국가의 정치적, 역사적 상황 혹은 정체성의 차원으로도 확대된다.
『심령치료사』에서 서로 갈등하며 상처를 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얽혀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세 명의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탈식민지 시대에도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아일랜드인과 앵글로-아일랜드인 간의 지속되는 미묘한 갈등과 상호의존 관계에 다름 아니다. 아일랜드인 프랭크는 그레이스의 영국인 아버지에 대한 양가적 심리를 통해 신기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프랭크는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영국인 및 앵글로-아일랜드인과 맺고 있는 관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또한 그런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랭크가 자신의 재능과 자립적인 자율성을 욕망하면서도 앵글로-아일랜드인인 그레이스와 영국인 테디가 그러한 자율성을 지지해 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길 원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마찬가지로 그레이스는 아일랜드인인 프랭크가 그녀에게 헌신하고 그녀를 인정해주기를 갈구하지만 그런 욕망에서 언제나 좌절 하도록 운명 지어진 앵글로-아일랜드 인이다. 그레이스는 그녀의 독백의 마지막 부분에서, 프랭크가 생전에 그녀에 대해 만들었던 허구가 그녀의 실존을 규정짓던 원천임을 그가 죽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하는데, 이는 바로 그들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말해준다. 또한 세 인물의 서로 다른 독백은 각자의 욕망이 형성해 낸 허구화되고 신화화된 지배 담론과 소서사간의 관계로 조망할 수 있다. 각자의 욕망에 의해 재편집된 서로 다른 기억이 만들어 낸 허구는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각 민족이 시대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 낸 서로 상충되는 허구화된 담론/ 역사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기억을 통해 재구성할 때 자신들에게 불리한 과거의 사건들은 부정하는 반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신에게 유리한 버전을 재창조한다. 따라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상충되는 세 인물의 기억의 버전/내러티브는 각 개인/민족/국가의 욕망을 반영하면서 그들 각자에게 유리한 허구의 버전, 즉 제국주의 영국이 만들어 낸 지배 서사와 피식민지인 아일랜드 인들의 소서사간의 불가피한 불일치를 의미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세 명의 인물의 기억이 만들어낸 양립할 수 없는 상충된 허구들은 아일랜드, 북아일랜드가 영국이 식민주의 과거에 대해 각각 구축해 온 주관적인 허구의 담론들을 암시한다. 편견으로 허구화된 식민주의자의 지배 역사와, 그것과 불일치하는 신화로 치장된 피 식민자의 다수의 소문자 역사만 존재할 뿐 공동의 버전으로서의 절대적 객관성을 지닌 단일의 대문자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영국은 임의대로 피식민지인 아일랜드의 역사를 왜곡하고 그 가치를 손상시킨 반면 탈식민주의 아일랜드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 역시 제국주의에 의해 잃어버렸던 그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신화화 하였다. 일례로 1930년대와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아일랜드의 제1, 제2 수정주의자들의 과거 역사 해체를 통한 객관적 역사의 정립 역시 주관적 역사의 버전을 벗어날 수 없었던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이 이를 말해준다. 프리엘은 세 인물이 함께 겪었던 과거 사건에 대한 진실이 그들의 서로 다른 내러티브들 간의 틈새와 간극에 있음을 보여주었듯이, 마찬가지로 과거 식민지 역사의 진실은 서로 다른 다수의 소문자 역사들의 틈새를 채을 수 있는 역사 다시 쓰기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