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릴리안 헬만 '아이들의 놀이시간'

clint 2015. 11. 10. 09:49

 

 

 

카렌과 마사가 꾸려가고 있는 라이트-도비 여자 기숙학교. 항상 말썽을 일으키는 메리는 몰타르 부인의 수업시간에 자신이 거짓말한 것을 추궁 당하자 이것을 무마하려 심장이 아프다고 쓰러지는 척을 한다. 카렌은 조를 부르고, 카렌은 마사에게 조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마사는 감정이 격해진다. 그 사이 조가 도착하고, 카렌과 조가 메리를 진찰하는 사이 몰타르 부인이 마사와 언쟁을 하게 된다. 몰타르 부인은 마사가 카렌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에 이르고, 페기와 이블린이 이것을 엿듣다가 들키게 된다. 그 벌로 방을 바꾸게 되고, 이래저래 분에 겨운 메리는 기숙사에서 나가려고 한다. 메리는 결국 기숙사를 도망쳐 나와 틸포드 부인의 집으로 간다. 기숙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틸포드 부인을 설득하기 위해 메리는 순간, 이블린과 페기에게 들은 마사와 몰타르 부인의 대화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메리의 거짓말은 충격을 받은 틸포드 부인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다. 아이들의 부모는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가고, 카렌과 마사는 틸포드 부인에게 찾아와 논쟁을 벌인다. 메리의 거짓말이 탄로날 뻔 했으나, 그 이전에 본의 아니게 팔찌를 훔쳐 메리에게 협박을 받은 로잘린이 메리의 거짓말을 옹호하면서 메리의 거짓말은 사실로 둔갑하고 만다.

카렌과 마사가 틸포드 부인을 고소한 명예훼손 재판은 극장을 빌미로 어디론가 잠시 떠나버린 몰타르 부인 없이 이루어지게 되고, 카렌과 마사는 패소한다. 카렌은 자신의 삶이 이전과 같지 않음을, 조 또한 그렇다는 것을 느끼고 조를 떠나보낸다. 마사는 급기야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카렌에게 고백하고, 자살하고 만다. 그 직후, 모든 것이 메리의 거짓말인 것을 알게 된 틸포드 부인이 그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찾아간다. 카렌은 분노하다가 이내 그녀를 용서하고는 틸포드 부인을 배웅한다.

 

 

 

 

 

릴리안 헬만은 1905년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1840년경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계 후손인 아버지 막스와 앨리바마 태생의 어머니 줄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은 1911년 뉴욕으로 이주했고 이후 뉴올리언스와 뉴욕으로 자주 오가면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를 작가 자신은 뉴욕과 뉴올리언스 사이의 '광적인 테니스 게임' 이었다고 표현하는데. 이런 성장 과정은 그녀로 하여금 이후에도 많은 여행을 하게 했고. 이는 그녀가 받은 양질의 교육과 함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녀는 NYU 대학에서 수학했으나 (1922-24) 학위를 취득하지는 않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 같은 철학자에 심취하며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을 높여갔다. 이후 그녀는 보니 앤드 리버라이트 출판사에서 근무(1924~25).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하면서 필력을 다져 나간다. 1925년 출판사 직원이었던 아서 코버와 결혼하며 헐리웃으로 이사 간 작가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와 MGM사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1929년 남편과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유럽의 사회현상을 인식하면서 단편소설을 쓰며 이듬해에는 유명한, 그러나 베일에 싸여 있던 탐정소설가 햄멋을 만난다. 그들의 만남으로 헬만은 1932년 남편과 이혼하기에 이르고 그들의 관계는 햄멋이 1961년 타계할 때까지 동거로 이어졌다. 그녀는 줄담배를 피는데다가 대단한 술꾼으로 알려져 있는데 술친구로는 헤밍웨이, 포크너, 피츠제럴드. 레너드 번스타인, 엘리아 카잔, 클리포드 오데츠, 월리엄 와일러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많으며 이는 그녀의 작품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1930년대 공황기에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매료 되었던 헬만은 반 나치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높았다. 그녀는 사실적 수법으로 잘 짜여진 극의 영향을 받은 사회극을 썼는데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에 동성애, 근친상간 등 특이한 소재를 택하기도 했다. 그녀의 극은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개성을 대립시킨 단순한 구성을 사용하면서도 플롯을 짜는 기교가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34년 발표된 극작가로서의 데뷔작인 〈아이들의 놀이시간〉은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도 브로드웨이에서 691회 연속공연 되는 기록을 세우며 그녀를 일약 인기작가로 만들었다. 19세기 에딘버그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했지만 1952년의 메카시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점에서 보면 세상에 이런 종류의 일이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실감나게 하는 작품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정당화하는 판단, 이기심, 자신들의 약점에 대한 무지로 인해 세상에, 혹은 다른 인물에게 가하는 손실과 파멸을 다루고 있으며, 유기적으로 구성된 그 보편성은 비극의 요소를 갖춘다. 극은 처음 페기가 암송하는 〈베니스의 상인〉의 포오셔의 대사 중 자비를 간청하는 대사로 시작되는데, 이는 선악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무관 하지 않다.
이 극을 끌어가는 인물은 메리라는 어린 여학생이다. 훌륭한 여자 기숙학교를 세우려 애쓰는 두 여자 선생님의 학교에 있게 된 메리는 독선적이고 고집이 세고 모든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다. 그녀는 온갖 거짓말을 해대며 극의 중심을 이루는데.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두 여자 선생님을 레즈비언으로 몰아 곤경에 빠뜨린다. 극은 메리의 거짓말로 꾸며지지만. 파멸로 이르는 책임은 메리의 거짓말에 반응한 어른들에게로 돌려진다. 즉, 그 학교에 재정적 지원이 많던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딸인 메리의 말을 그대로 믿었으며, 그 개인적인 심증을 공식적으로 모든 학부형에게 알려 학교 문을 닫게 하는 결과에 이르게 한 것이 파멸의 중심이다. 또한 그 책임은 마지막에 의혹을 떨치지 못했던 여선생님의 선량한 약혼자 조에게도 있는 것이다. 아이의 거짓말이 세상에 일단 퍼지자, 메리의 거짓말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세상은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되어 버린다.

 

 

 

 


아더 밀러의 〈크루서블〉과 흡사한 이 극은 50년대의 메카시즘이 대두되었을 때 재공연 될 정도로 사회와 인간 본성에 있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 극은 1936년 영화로 만들어지며. 같은 해 〈다가오는 나날〉이 쓰여 진다. 이어 헬만은 〈데드엔드>(시나리오:1937)와 허버드 가의 탐욕을 그린 그녀의 대표작 〈작은 여우들>(1939)을 내놓는다. 1941년에는 반파시스트의 선동적인 메시지를 담은 〈라인 강의 감시〉를 쓰고 〈작은 여우들〉을 영화화했으며 1943년 에는 〈북극성〉, 그리고 〈라인 강의 감시〉가 영화화되었다. 이듬해 〈스며드는 바람〉에선 파시즘이 대두한 유럽에 주둔했던 기회주의적 직업외교관인 전 미국대사의 가족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교대로 반복하면서 전개된다. 1946년, 〈스며드는 바람〉이 영화화되고 〈작은 여우들〉외 하버드의 젊은 시절을 그린 〈숲의 저편>이 발표되었다. 이때까지의 극들은 커밋 블룸가든이 제작하고 헬만 자신이 직접 연출했던 점이 특별하다. 〈숲의 저편〉이 영화화된 1948년. 유고슬라비아와 파리를 방문한 헬만은 파리에서 엠마뉴엘 로블레의 극 〈몽세라〉를 보고 감명 받아, 이를 미국에서 각색하고 연출한다. 〈작은 여우들〉은 1949년 〈레지나〉라는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1952년 헬만은 반미활동을 했다는 풍문뿐인 죄목으로 미국주의를 지킨다는 의회청문회에 소환 당했다. 당시는 조셉 메카시 상원 의원이 재선된 후 그의 권력이 정점에 이르고, 전국이 온통 메카시즘으로 들끓고 있을 때였다. 청문회에서 중언한 후 그녀는 그들이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단지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가능한 한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것에 흥분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1952년 의회에 증언한 후 작가는 〈아이들의 놀이시간〉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에릭 벤틀리 는 1952-3년 이 극이 공산주의자를 옹호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나중에 벤틀리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한다. 1955년 장 아 누이의 작품을 개작하여 〈종달새〉를 공연하고 이듬해 볼테르의 작품 〈캔디드〉에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곡을 붙여 공연한다. 이후 소설가들로 하여금 극을 쓰게 하는 재단을 운영하여 솔벨로우의<마지막 분석〉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다락방의 장난감〉이 미국 비평가상을 수상하는 등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이었던 60~61년이 헬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던 해였다. 50년대 말부터 암을 앓아왔던 햄멋이 그녀의 아파트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1966년. 시나리오 〈드 체이스〉에 이어 69년〈미완성의 여자〉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자전적인 것으로 뉴올리언스와 뉴욕을 왕래하던 소녀 시절에서 결혼, 이혼. 햄멋과 뉴욕으로 나와 작가수업을 하던 일 등 그와의 추억담, 그리고 자신의 정치관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1972년 전집 선에 이어. 73년 또 다른 자전적 성격의 〈펜티멘토〉를 발표한다. '펜티멘토'는 미술 용어로서 덧칠한 페인트가 세월이 흐른 후 그 밑의 형태, 선이 보이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화가가 처음 품고 있던 생각이 변했다 해도 그 과정을 뒤에 다시 볼 수 있다는 의미로, 그녀에게 영향을 준 친척, 유모. 친구, 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76년 발표한 〈잠 못 이루던 시절〉역시 자전적 회고록으로 반미활동위원회에 소환되기 전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삶에는 2막이 없다"는 치열한 생각으로 사회 현상을 담은 사회 저항 극을 썼는데, 버너드 쇼나 마르크스보다는 현대 가톨릭 작가들의 사고와 같은 범주에서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사회나 현실의 부조리보다는 인간의 본성. 모순적 행태. 원죄를 현대적 컨텍스트에서 아이러닉한 대사와 관점 하에 다양한 인식 방법으로 보여준 것은 현대인의 실존이라는 과제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좌익적 성향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진보적이며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가졌던 것이며 극의 실제 주제는 돈뿐 아니라 사랑, 배반, 중상, 증오, 질투, 오해. 환멸 등이며 이런 갖가지 처벌을 통해서 헬만과 극중 인물들이 안고 있는 진실 중 하나는 자기를 배반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인식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책임 수행과 자기각성이라는 덕목을 내보인다. 이 점에서 보면 그녀는 도덕적이며 도덕성을 강조하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