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하지 못한 작품 중의 하나였다. 이 작품은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불려 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범작도 아니고, 졸작도 아니다. 틸랴드 (E. M. W. Tillyard)가 말한 바대로 「문제작」이라는 명칭이 알맞은 것 같다. 이 작품의 창작연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이런 저런 설이 구구하다. 체임버스(E. K. Chambers)가 주장하는 바 1602~03년 사이라는 추정은 리버사이드 셰익스피어(The Riverside Shakespeare)판에서도 이어졌다. 이 설은 초기문체의 중요한 특질로 꼽히는 압운의 대구 또는 서정시형으로 쓴 대화 등이 본 플롯을 구성하는 이야기에 괄목할 만큼 두드러지게 구사되어 있음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 러셀 프레이저(Russell Frager)는 『뉴 캠브리지 셰익스피어』판의 해설에서 이 작품의 창작 연대를 1605년경이라고 주장하였고. 『옥스퍼드 판 전집』의 별 권으로 간행된 『텍스튜얼 컴패니언』(A Textual Companion. 1987)에서도 1604 년 설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최근에 시도된 문체 분석의 결과뿐만 아니라 이 희곡에는 제임스 시대 (1603〜1625)의 연극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 이 작품의 주제는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선한 의도로 애정을 성취하기 위해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을 이겨낸다는 것인데, 원 소재는 보카치오(Giovanni Boccacio)의 『데카메론』(Decamerone)의 제3일 제9화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직접 소재로 삼은 것은 페인터(William Painter)가 역설한 『쾌락의 궁전』 (The Palace of Pleasure)에 수록된 설화이다.
한 작품의 내용에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하려면 작가의 사상과 밀착되어 나타난 구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작가의 주제의식도, 작가가 묘사하려고 하는 인물도, 작품의 분위기도, 그 이야기의 서술에 맞는 문체도, 희곡구성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만 그 이해가 가능하다. 이 작품의 구성 역시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사건이 단순한 궤도를 따라 진행되고 있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일화를 곁가지 없이 집중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본 줄거리와 부 줄거리로 튼튼한 구성의 틀이 짜여 있으면서도 오히려 복합성이 리듬을 살려놓고 있다. 주인공들은 버트람과 헬레나를 주축으로 한 본 줄거리와 허풍선이이자 비열한 불한당격인 패롤리스를 중심으로 한 부 줄거리가 필연적 관계를 지니면서 은밀히 혹은 어떤 충격적 효과를 준비하여 독자나 관객을 매료케 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제목이 말해 주듯 결말이 해피앤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본 줄거리는 어딘지 모르게 비극적인 색조가 짙은데 비하여, 부 줄거리는 희극적인 색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희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명의인 부친이 세상을 뜨자 헬레나는 그녀의 후견인인 로실리온 백작부인의 집에서 양녀로 동거하게 된다. 그녀는 백작부인의 아들인 버트람을 남몰래 연모해 왔지만 그 청년귀족은 헬레나를 하녀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안중에도 없다. 그 때문에 헬레나는 사랑의 번민에 빠진다. 청년귀족의 어머니는 헬레나의 고민을 이해하고 자기 아들과의 결혼을 허락하여 그녀가 아들 뒤를 쫓아 파리의 왕궁으로 떠나는 데 모든 편의를 제공하여 돌봐준다. 그 무렵 프랑스 국왕은 난치병에 걸려 있는데, 헬레나는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전수 받은 비방으로 국왕의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을 갖고 배알을 간청한다. 헬레나가 국왕의 병을 고치지 못하면 자기의 목숨을 바치고 완치케 하면 신하 중에서 배필이 될 사람을 어명으로 택해 줄 것을 조건으로 그녀가 치료를 착수한 지 불과 이틀 만에 국왕은 건강을 되찾게 된다. 헬레나는 사모하는 버트람과의 결혼을 국왕으로부터 허락받았으나. 버트람은 어명을 거역할 수 없어 결혼서약은 하였지만 헬레나에게 도저히 정이 가지 않아 즉시 플로렌스로 출정하고 만다. 그러나 반지와 동침 등의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아내로 인정하며 사랑하게 된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 작품이 독자들이나 관객들 사이에서 현저하게 공감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찬반의 논의가 잇따르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실 옛날부터 극평가들 간에 인기가 없었으며 차가운 몰이해와 푸대접을 받아왔다. 그런데 부정적인 시각에서 이 작품을 폄하하는 측의 이유는 남자 주인공 버트람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절하이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은 이 인물은 아무래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버트람에게 동정을 표하는 극평가들도 있다. 헬레나의 성격에 대한 비판도 양분되어 있다. 존 메이스필드(John Masefield)는 "남자를 감내할 수 없는 굴욕 속에 빠트리고 그러하고도 또 다른 여성과 공모 여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비난한 바 있다. 버트람은 평범하고 야비한 졸부의 심덕과 성실치 못하고 경박하며 비겁자로 묘사되어 있어 눈에 거슬리는데 남편을 소유하기 위해 체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주인공 헬레나의 소행에도 불쾌감을 돋게 된다는 것이다. 해리슨(G. B. Harrison)이나 하딘 크레이그(Hardin Craig) 등은 이와는 달리 새로우면서도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시각 아래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도덕적 문제는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의 관객들에게는 조금의 혐오감도 안겨 주지 않았고, 더구나 목적 달성을 위해 갖은 고초를 극복해 나가는 헬레나의 행위와 윤리의식이야말로 여성적인 미덕이며. 동경과 선망과 경탄의 대상이었다 한다. 그러나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신분이 낮은 여자가 지체가 높고 가문이 훌륭한 배필을 얻게 되는 이야기는 곧잘 흥분과 감동으로 당시의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또 헬레나를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사랑스런 여성"이라고 격찬했고 허즐릿은 "매우 가련하면서 매우 우아한 성격"이라고 탄성을 올릴 정도로 온화하고 여자다운 여자며 겸손하고 총명하지만 결코 소극적이며 사고가 부족하지 않고 정도 많지만 의지도 강인하고 모험도 불사하는 매우 용감한 여자이고 지(智) 정(情) 의(意)가 잘 균형 잡힌 원만한 여자이며, 헬레나는 중세의 민화 속에 나오는 여성이 아니라 건강하며 강인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쇼(Shaw)나 입센 (Ibsen)의 작품 중의 인물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콜리지(S. T. Coleridge)는 헬레나를 "셰익스피어가 창조 한 여성 중에서 가장 사랑스런 여인”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허즐릿은 이 극을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 가장 즐거운 작품 중의 하나라 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의 분위기는 어둡고 로맨틱 한 코미디가 지닌 아름다운 서정성과 풍부한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표현의 세부를 꼼꼼히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흥미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극적 효과의 극대화가 헬레나가 동인(動因)이 되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헬레나를 통해 극적 울림에 대한 느낌을 좀처럼 지우기 어렵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공감의 터전을 확보해 주는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는 보카치오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굼뜨고 주변머리 없는 소극성을 버리고 남에게 녹록하게 당하지 않는 용기와 그리고 당차고 속 찬 대담성을 헬레나에게 안겨주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헬레나의 이러한 성격적 요소가 이 극의 비극적이며 어두운 색조를 일종의 풍자로 변혁시킨 작용을 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서 셰익스피어가 헬레나라는 한 여성을 소위 중세의 전통 속에서 추출하여 격조 높은 희극적 효과에 초점을 맞춰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는가.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의 포오셔, 『뜻대로 하세요.』 의 로잘린드와 같은 기지에 넘친 현명한 여성의 성격을 재현시키곤 했다. 헬레나는 선량하고 현명한 여성이다. 셰익스피어의 목적은 로렌스(W. W. Lawrence) 가 말하기를 훌륭한 여성이 몇 가지 시련을 겪어 행복을 얻는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에 올리느냐 하는 것이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의 상연사의 족적을 추적하여 보겠다. 그러나 이 작품의 초연은 묘연하다. 다만 최초의 상연기록은 1741년 3월 7일이다. 지파드 부인 (Mrs. Giffard)이라는 여배우가 헬레나로 분했었고, 또 그녀의 남편이 버트람으로, 패롤리스 역에는 조셉 페터슨 (Joseph Peterson)이 분했었다. 이 공연은 신선하다며 평이 좋았다. 그 다음은 1742년 1월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올려 지지만 웬지 사건이 잇달아 일어난다. 헬레나로 분한 펙 워휭턴 (Peg Woffington) 병에 걸려 무대에서 혼절하여 1주일 동안 공연을 중지하였고 다시 막을 열자 헨리 8세로 분한 밀워드(Milward)가 독감에 걸려 수 주후에 사망했다. 그때 패롤리스 역을 놓고 사이버 (Theophilus Cibber)와 맥린(Charles Macklin)간에 험악한 쟁탈전이 벌어져 또 다시 공연이 중지되었다., 다음은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명목으로 공연을 했는데 그 공연은 성공을 거두었고. 패롤리스 역이 관객의 인기를 독점했다. 하여튼 불행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하여 「불행한 희극」이란 별명이 붙게 되니 이는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의 저주라고나 할까? 이 희극을 관극한 찰스 1세가 이 극의 제목 옆에 「무슈 패롤리스」라고 썼던 걸 위시하여 17~18세기의 관객은 패롤리스에 가장 매료되었다. 그 후 1746년 코벤트 가든에서 『끝이 좋으면 다 좋아』가 공연된 지 1개월 후쯤에 버트람분의 배우가, 1년 후에는 라밧취분의 배우가 사망한다. 그러나 이때 셰익스피어 극의 광대로서 널리 알려진 채프만 (Chapman)이 광대 역을 맡았고, 해리 우드워드(Harry Woodward)가 패롤리스로 분해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었다. 헬레나 역은 프리 차드 부인(Mrs. Prichard)이 연기했다. 우드워드는 패롤리스 역을 30년이나 도맡았다고 한다. 패롤리스로 해서 인기가 폭등한 『끝이 좋으면 다 좋아』를 17~18 세기의 런던 관객이 좋아했으니 자연히 패롤리스 중심으로 개작된 극이 무대에 올랐다. 그러니까 이전에 헬레나와 버트람을 중심으로 한 로맨틱 주제는 그림자가 엷어져 갔고, 이 시대는 코믹한 부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시대로 각인되었다. 1793년. 이때의 주연배우는 존 필립 캠블(John Philiip Kemble)인데, 그는 셰익스피어 작에 약간의 개작을 가해 드루리 극장에서 흥행했다. 인내심이 강한 미덕이 넘치는 헬레나를 주인공으로 한 감상희극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새로운 전통은 19세기까지 계속된다. 버트람에 캠블, 패롤리스에 킹(King), 헬레나에 조단 부인(Mrs. Jordan) 이었다. 1794년에는 필립 캠블의 아들 찰스 캠블이 연출하였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아닌 개정판을 사용했다. 당시의 관객의 윤리관에 맞지 않는 부분이나 코믹한 부분을 제거하여 인내심이 강하고 미덕이 넘치는 헬레나를 주인공으로 한 감상희극으로 만든 것이다. 그가 세운 이 새로운 전통은 19세기까지 계속된다. 또 이 희극은 1832년 코벤트 가든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상연되었다. 자연스럽게 셰익스피어의 다른 극의 대사에 멜로디를 붙인 노래를 삽입했고. 「한 여름 밤의 꿈」에서 힌트를 얻은 가면극도 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로맨틱한 동화로 짜 맞추었다 해도 이 극의 이야기는 19세기의 당시의 고상한 도덕기준에 맞춘 것은 아니었다. 1852년 9월 1일과 1895년에는 정통 극으로서 이 희극을 상연했다. 이 상연은 당대의 관객의 취향에 맞춰 대사를 가위질한 것이었으며 제대로 셰익스피어의 원작으로 돌아간 것은 20세기에 들어가서였다. 17, 18세기에는 코미디, 19세기에는 로맨스가 중심이었지만 20세기의 연출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회복했으니 1927년 버밍검 레퍼터리 극장 배리 잭슨(Barry Jackson)의 연출에서 의상은 현대복을 사용했다. 그때 패롤리스로 분한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의 명연기가 버나드 쇼오(Bernard Shaw)를 즐겁게 했다한다. 쇼오는 "패롤리스(올리비에 분)를 사랑스럽고 너무도 멋진 골칫덩이 청년이다"라는 찬사까지 보냈었다. 현대 복 차림의 또 한 번의 공연은 1957년 온타리오의 스트라트포드와 1959년 스트라트포드의 셰익스피어 기념극장에서 공연되는데 그 때의 연출은 타이론 거슬리 (Tyron Guthrie)가 맡았으며 가장 찬란하고 균형 잡힌 연출이 큰 화제를 야기 시켰다. 이때 셰익스피어의 대본에서 광대의 대사는 삭제되었다. 거슬리는 이 작품의 색조를 파란색과 은색으로 고상하게 보여주며 당당한 모험과 로맨스에 가득 차며 전체의 인상으로서 과장되지 않게 은근히 작품으로 만들었다. 1981-82년에 와서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트레버 넌(Trevor Nunn)의 연출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를 연상케 하는 미묘한 음영을 보여주었다. 이때 백작부인에 폐기 아쉬크로프트(Pegy Ashcroft). 라후 경에 로버트 에디슨(Robert Eddison) 열연했다.

1980년에 BBC가 제작한 일라이자 모신스키(Eliza Moshinsky)가 감독한 렘브란트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예술적 화상(盡像)을 보여 주었으니 이는 조용하며 통일된 극 세계는 텔레비전만 이 갖는 "모든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인식된다.
이 극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도덕적 내용이나 주인공역에 변화를 주며 공연되어 왔으나 작품의 근원은 계속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위대성과 희곡의 오묘한 맛에 관해 공연자와 관객이 이를 즐겨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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