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 희극 또는 문제극으로 불리는 '말은 말로 되는 되로'는 중요한 시적 성취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틸랴드의 지적처럼 대체로 품롯 전반부와 후반부의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듯한 인상과 극의 주제와 등장인물에 대한 엇갈린 평가 때문에 극단의 공연의욕을 떨어뜨림으로 써 이류 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다른 명작들에서 느낄 수 있는 시적 서정미가 넘쳐흐르기 때문에 그의 전아(典雅)한 언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를 느끼는 독자들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제목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극의 이해에 다소 도움이 될 것 같다. 셰익스피어 연구 학자들은 이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내놓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5막에서 공작이 말한 "죽음에는 죽음으로……급한 것에는 급한 것으로……말은 말로 되는 되로 갚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라는 대사 중에서 택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 나는 〈누가복음〉6 : 37~ 42절에 있는 '비판하지 말 것'에서 따왔다고 주장하는 아서 커쉬의 말처럼 성서 인용 설이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定罪)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중략)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혀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누가복음 6 : 37~42절)

"가증스런 작품”이라는 콜리지의 악의에 찬 비평은 "그 다지 잘 되지 않은 극”이라는 존 드라이든의 평가와 “중심 주제가 아닌 이야기는 매우 자연스럽고 즐겁지만 본 줄거리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우아함보다도 답답함이 눈에 띈다.”고 우호적인 견해를 밝힌 존슨과 반대 입장에 섰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작품은 한충 더 통찰력 있는 평론가들의 연구에 힘입어 그 진가를 평가받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 인물이 존 메이스필드로, 그는 '말은 말로 되는 되로'를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셰익스피어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이며, 안젤로는 그가 창조한 인물 중에서 가장 잘 그려낸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초기에는 부정적인 측면만이 부각되어 혹평을 받아오던 이 작품이 평론가들의 주목을 끌고 각광을 받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 작품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현실의 문제성, 즉 현재란 시간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즉, 셰익스피어가 이미 현실적인 시각, 태도로서 인생을 관조했다는 증거들을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처럼 우리에게 작품의 허구 세계를 고안물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게 해준 작가는 아직 아무도 없다. 그의 마법은 파헤칠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다.”고 한 하우프트만의 단언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 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거의 그렇듯이 '말은 말로 되는 되로'도 창작 연대가 확실치 않다. 다만 학자들 간에 몇 가지 타당성 있는 이유를 들어 1603년부터 1604년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추론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첫째는 1막 2장 첫머리에 나타난 루치오와 신사 1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제임스 1세의 즉위 무렵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즉, 루치오가 말하는 비엔나 공작과 헝가리 국왕의 화평교섭이 1604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진행된 제임스 영국 왕과 스페인 국왕의 정상회담을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둘째는 같은 장면에서 매춘 굴의 포주 오베르도네가 쏟아 놓은 불경기에 대한 넋두리가 실제로 1603년부터 1604년에 걸쳐 있었던 영국의 경제공황과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극이 1604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제임스 1세 궁전에서 공연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작품 밑바닥에 깔려 있는 암울한 정서가 '햄릿'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햄릿'(해리슨 설 : 1601년, 키트리지 설 : 1601년)과 '오셀로'의 창작 연대와 비슷한 시기로 보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줄거리의 기둥을 이루는 안젤로의 패덕에 관한 일화가 셰익스피어 시대 이전의 유럽문학에서 종종 다룬 소재라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말은 말로 되는 되로'는 1578년 영국의 극작가 조지 웨트스톤이 발표한 '프로모스와 카산드라' 에서 소재를 따왔 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 웨트스톤의 이야기도 이탈리아의 자연철학 교수이자 소설가 인 지랄디 친디오의 '작은 이야기 百篇'에서 따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소재의 경로를 따져 보면 친디오를 원천으로 웨트스톤으로 연결되고, 다시 셰익스피어에 이르러 '말은 말로 되는 되로'라는 보배로운 꽃을 피운 셈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두 개의 소재 원천 중에서 어느 것을 주로 반영했는가 하는 점을 흥미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 역시 비평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요컨대 여주인공을 아내가 아닌 누이동생으로 설정했다든지 오빠의 죄가 살인이 아닌 단순 부녀 유혹으로 되어있는 점 등은 친디오의 이야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고, 부 줄거리가 있고 부녀의 유혹이 끝내는 연애로 발전되어 부도덕한 관리가 종국에 가서는 결혼을 하게 되는 모습은 뭬트스톤의 작품에 가깝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고전에서 얻은 소재를 불후의 명작 으로 제련하는 천재성을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공작이 수도사로 변장하여 안젤로의 치정을 암행 감찰하는 장면이라든가 이사벨라가 안젤로의 약혼녀 마리아나와 바꿔치기하는 침실의 술수 등은 셰익스피어가 개작한 장면인 동시에 관객을 극 속에 빠져들게 하는 주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말은 말로 되는 되로'는 5막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줄거리는 두 개의 에피소드가 주요한 뼈대를 이루며 작품의 의도를 드러내 보여준다. 그 하나는 공작의 부재중 행정 대행을 맡은 안젤로가 이사벨라의 미모와 순결에 뇌쇄되어 그의 엄격한 도덕에 허물어진 나머지 그녀 오빠의 목숨과 이사벨라의 정조를 맞바꾸자고 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열병으로 죽은 죄수의 머리를 이사벨라 오빠의 머리라고 속여 공작이 안젤로에게 보내는 이야기인데, 이 두 개의 줄거리가 이 작품의 기조가 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갖는 주인공은 두말할 것 없이 이사벨라이다. 그녀는 정열과 지성뿐만 아니라 정의감, 그리고 순수한 종교적 성실함을 지니고 있는 멋진 여성이지만 절대적 순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혈육인 오빠에게 빨리 죽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한 면도 있다. 순결한 종교적 삶을 살기 위해 수녀원에 간 그녀를 세파에 휘말리게 한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그 해답은 매우 간단하다. 수녀원에 파묻힌 은둔적 수도보다는 탁한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참다운 종교적 생활일 수도 있다는 적극론을 펴고 싶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제를 법정신에 대한 자비심, 본성에 대한 은총, 죽음에 대한 구원이라고 규정 짓는다면, 공작이야말로 중심사상의 핵심에 해당되는 자비, 은총, 그리고 구원과 친밀하게 맞닿아 있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작은 안젤로보다도 우리에게 극적 실재감을 더욱 강도 있게 안겨 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한마디로 말해서 사건을 진전시키는 동력일 뿐만 아니라 이사벨라와 마리아나를 구제하기 위한 침실의 술수와 함께 이 극을 희극으로 밀도 있게 밀고 나가는 기능적 역할까지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작과 대결선상에 있는 안젤로가 언뜻 보면 이 작품에서 공작보다도 주역의 역할을 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안젤로를 두 얼굴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위선자로서의 얼굴이고, 또 하나는 비엔나의 부패상을 진심으로 증오하는 이상주의자, 즉 야누스적인 얼굴이다. 도덕률에 유달리 엄격한 그가 이사벨라의 뛰어난 아름다움과 순결미로 인해서 저지르는 순간적인 과오는 일말의 동정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안젤로의 사악함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이사벨라의 말에 대해서, 자신의 명성과 권위로 보아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며 이를 빌미로 무고죄를 씌우겠다고 협박하는 그의 사악함, 그리고 이사벨라의 순결을 빼앗고도 법은 법대로 집행시켜 차후 공인으로서의 자신의 이력에는 한 점의 티도 남기지 않겠다는 간교함에는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다. 이런 점을 들어 로렌스는 안젤로를 '천성적인 악한'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말은 말로 되는 되로'는 평가 절하된 비평들이 있었음에도 1930년 이래 그 비평의 분량이 어쨌든 '햄릿' 정도에 이르렀으며, 오늘날에는 마침내 셰익스피어의 우수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가 하면, 리비스 같은 평론가는 "가장 위대한 연극 중의 하나이며, 셰익스피어의 성취 중 가장 완전하고 설득력 있는 작품”이라고까지 극찬하였다.
인간 본성 속에 내재한 도덕적 결함의 일례를 '말은 말로 되는 되로'를 통해서 보여준 셰익스피어는 그 해결책도 함께 제시함으로써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즉, '공정의 화신'이라는 안젤로의 탈선과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하는 클라우디오(그는 이 극에서 정말로 무구하고 악의 없는 인물이다)의 허점투성이의 모습,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삶에 대한 영적인 각성이 전혀 없는 바르나르디네, 그리고 누구보다도 비난받아야 할 성문란의 조장자인 포주의 하인 폼피조차도 인간적인 이해로서 너그러이 용서하고 속죄와 재생의 길로 인도하며 마지막에서 루치오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에게 용서를 베푸는 공작의 품성이 셰익스피어 자신의 의도였다고 보는 클리포드 리치의 견해가 가장 설득력을 지닌다.
“죄는 처벌하되 사람은 처벌하지 마라.”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베스 헨리 '불꽃아가씨 선발대회' (1) | 2015.11.10 |
|---|---|
| 윌리엄 셰익스피어 '끝이 좋으면 다 좋아' (1) | 2015.11.10 |
|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사막으로의 귀환' (1) | 2015.11.10 |
| 사라 케인 '정화된 자들' (1) | 2015.11.10 |
|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랑의 헛수고' (1) | 201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