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랑의 헛수고'

clint 2015. 11. 10. 09:03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보이기 위해 쓰여 졌고, 풍자를 구사한 궁정희극으로서 언어의 재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비론이라는 인물의 능변이야말로 스윈번 (A. C. Swinburne) 이래로 많은 평론가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사랑의 헛수고』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즉 나바르 왕인 퍼디넌드는 세 명의 궁신 비론, 롱거빌, 듀메인 등 넷이 앞으로 3년간 일절 속세의 욕망을 끊고 그들에게 여성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철학적인 명상에 잠겨 이 궁정을 학문의 전당으로 창조할 것을 맹세한다. 그런데 프랑스 국왕을 대신하여 프랑스의 공주가 세 시니 로잘라인, 머라이어, 캐더린을 거느리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바르왕은 공에게, 비론은 로잘라인에게 롱거빌은 머라이어에게, 듀메인은 캐더린에게 사로잡혀 철석같은 그들의 언약을 파기하게 되고 상대의 여성에게 가까이 가려하지만 각각의 파약은 다른 자에게 폭로되고 만다. 게다가 그곳에 프랑스 왕의 죽음이 전해지면서 공주 일행은 구혼자들에게 시련으로서 1년 동안 지시된 수련을 쌓게 하여 이 약속이 지켜지면 여인들은 남자들의 청혼을 받아들일 것을 약속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결말은 남녀의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어찌 보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선 주목할 일은 쌍방 간이 약속하여 1년간은 속세로부터 유리된다는 것이다. 공주로부터 1년간 세속적인 생활을 버리고 부와 명예를 지향하지 않는 생활을 하라는 의미로 나바르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 나라를 세계적인 학문의 장으로 만들어 그의 명성을 남기려한 왕에게는 가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또 능변에 달통한 비론에게 1년간 병원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웃기게 할 수 있는지 이것 또한 실현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비론에게 사랑은 놀이도 아니지만 사랑은 이야기도 아닌 행위인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에다가 다른 두 남성들도 그와 버금가는 주문을 받아 그에 상응하는 생활을 하여 그래도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는 조건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사랑이 진실하다면 그 정도의 시련은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정한 기간을 설정해 놓고 그래도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는 여성들의 요구는 그런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여성들이 상중에 있을 동안 남성들도 그와 상응하는 상황에 있어달라는 부탁은 상응한 행위를 상대에게 경험하라는 것이다. 이는 자기중심이라든가 자기본위로 생각하는 남성에게 자기 의사는 길을 수정하여 상대를 생각해 달라는 사랑의 평행선을 주장하는 깊은 의미가 되지 않을까. 남녀가 공생 공조하는 마음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랑의 헛수고』가 1598년 4절판으로 처음 인쇄되었을 때 그 표지에는 아래와 같은 단서가 쓰여 있었다.
...지난해 (1597년) 크리스마스 때 여왕폐하의 어전에서 『사랑의 헛수고』가 공연되었으며 월리엄 셰익스피어가 새롭게 개정 증보하였다. 윗글처럼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극작가로서 인쇄되어 나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며 월슨(John Dover Wilson) 은 이 희극의 창작 년대를 1593-4년으로, 체임버스(E. K. Chambers)는 1594-95년경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문체상으로 보거나 내용상으로 보아 미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극히 초기의 작품이라고 오랫동안 정설로 되어 왔다. 셰익스피어의 대부분의 극에서 소재는 한 곳에서 얻어온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전거를 찾아내게 되는데 『사랑의 헛수고』는 그의 소재연구가 현대까지도 이상하게도 원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보면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가히 드물게 순수한 창작희곡에 속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 극의 주제는 셰익스피어 생존 시 특히 르네상스 궁정에서 매우 인기 있는 테마 중의 하나인 사랑, 즉 참된 애정이 없이는 참된 학문도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원숙하게 평형(平衡)과 균제(均齊)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소위 사랑을 주된 테마로 삼고 있는 이 극이 지금도 명맥을 유지해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유 는 간단하다. 첫째, 이 극 속에 귀족사회에 있어서의 남녀의 윤리의식을 엿볼 수 있고. 둘째, 고유의 이상이 잘 천명되어 있으며, 셋째, 궁정문화의 가치에 대한 진위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셰익스피어 작품들 중에서 이 극은 장구한 세월 과되어 오다가 비교적 최근에 와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 명암의 진폭이 대단히 크다. 말하자면 셰익스피어 비평의 변천을 전형적으로 가리키는 작품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의 배우버베이지(R. Burbage)로부터 이 극이 기지와 환락이 넘쳐있다고 칭찬받았고 17세기 왕정복고 시대 이후 이 작품이 부분적으로는 칭찬 받은 일이 있었지만 전체로서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허즐릿(William Hazlitt)의 "만약 이 작가의 희극 중에서 어떤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될 파국에 부딪힌다면 모름지기 이 극을 택할 것이다." 라는 극단적인 평을 필두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극평가들로부터 졸작 또는 습작으로 취급되어 왔다. 우선 왕성하게 행해진 개작의 시대에도 『사랑의 헛수고』는 단 한번 "서생들" (1762)이라고 하는 작가불명의 개작이 출판되었을 뿐 무대와 연결되지 못했다. 원작부활상연의 물결이 이 작품에 미친 것이 겨우 1830년대에 들어가서였으니까.
극평가들로부터 비판적 공세를 받은 원인은 주로 이 극의 구성상의 결함에 있었다. 줄거리다운 줄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도 되지 않는 부 줄거리가 있을 뿐이라는 것 또한 극의 구성력이 허약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극은 플롯에 관한 한 긴밀하게 하나의 유기적 유대를 갖춘 플롯으로서 일관성이 없다. 집중과 심화의 극의 극형식이 아니다. 말하자면 극의 구성은 삽화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골격 적 플롯에다 막간극인 부 플롯이 끼어들고 있다.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그 당시 유행했던 프랑스 희극이나 또는 이탈리아 희극에 곧잘 등장하는 허풍선이, 시골의 신부, 어릿광대, 우직한 순경 따위가 활개를 치는 풍자극이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비판을 받는 또 다른 원인은 언어가 현학적이며 절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줄거리나 인물이나 언어가 빗나간다. 그리고 인물의 성격을 보아도 햄릿이라든가 폴스타프에 버금가는 강한 주체성이 없다. 채터턴 (H. B. Chatterton)이 작품을 말해 이 극은 셰익스피어의 초기의 습작이며 후의 희극들과는 이질의 예외적 작품이라 했다. 그랜빌-바커 (Harley Granville-Barker)는 이 작품을 가면극으로 봄 직하다고 했고, 1919년에는 뮤지컬로 상연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1932년 3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서양인 학교가 『사랑의 헛수고』를 모리스 홀에서 뮤지컬로 상연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사랑의 헛수고』가 세익스피어 희극의 주류를 점유하게 된다. 적어도 그 원류를 구성하고 있어 지류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지적할 수 있는 특색의 하나는 『베로나의 두 신사』에서 『사랑의 헛수고』의 극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 로맨틱한 분위기가 완연히 변해서 명랑하고 현란하며 기지에 넙치는 축제적 희극이 되어 우리는 삽시간에 얼마나 많은 이미지가 존재하는가를 알게 된다. 즉 우리에게 잊혀 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기며 바버(C. L.Barber)가 지적하듯 축제적 희극의 전형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극 속에는 축제적인 명랑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객을 즐겁게 하는 요인의 하나로서 기지가 박혀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물과 기름 같은 이율배반적인 관념을 교묘히 융합시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그러한 기지가 『사랑의 헛수고』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극보다도 유별나게 많이 극 도처에 드러나고 있음을 감득하게 된다. 기지야말로 이 극에 있어 정수 이자 정형에 해당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우리가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사랑의 헛수고』의 가치는 어디 있는가이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요약해서 이 극의 가치는 어느 모로 보나 연극적인 요소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시문학적인 가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에서 소네트를 위시하여 여러 가지 시형에 대한 집요한 천착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 극의 말미를 심도 있고 인상적으로 장식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봄과 겨울의 노래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유명해 관객들의 마음을 정서에 젖게 하고 긴 여운을 남겨주는 것이다.
어쨌든 이 극의 재미는 플롯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 아한 분위기와 축제적인 즐거움과 사랑과 학식과 웃음 에 대한 풍자적 기지가 연극적 효과를 충분히 발휘했다고 이해된다. 이런 점에 있어 이 『사랑의 헛수고』를 말의 유희로서 이루어진 셰익스피어 극중 인물 모두로 하여금 이야기하는 "말의 향연"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견해는 이 극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집약적 표현이라고도 하겠다.
또 하나 이 극에서 셰익스피어 적 인물의 유형이 될 수 있는 새싹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 귀족 중의 한 사람인 비론이 그렇다. 나바르 왕과 세 명의 귀족들은 무려 1년간 여성과의 교제와 감각의 즐거움을 끊고 고독과 금욕 속에서 오로지 학문에 매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관객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관객들의 의식과 서로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비론의 회의적인 태도와 맹세의 허위성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그의 비판의식에 관객들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는지 모른다.

 

 

 

『사랑의 헛수고』의 상연 사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이 희극은 본래 장면의 대부분이 야외로 설정되어 있기도 해서 원래 귀족의 정원에서 상연되지 않았나 하는 견해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후원자였던 서잠프턴 백작(Earl of Southampton)의 별장에서라는 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화이트홀의 궁정에서 크리스마스 때 여왕 앞에서 상연되었다는 것과 1604년 서잠프턴 백작의 저택에서 재연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제2, 4절 판의 책표지에 블랙프라이어스(Blackfriars)와 글로브(Globe)극장에서 상연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적당한 신작이 없어 어전용 공연의 극으로서 이 작품이 재연되었다고 상상되나 대중에게 사랑받는 레퍼터리이다. 기지와 유쾌한 즐거움 때문에 여왕폐하를 크게 즐겁게 했다는 평이 뒷받침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이후로는 거의 3세기 간에 걸쳐 『사랑의 헛수고』의 상연기록은 전무하다. 전술했지만 1762년 이 작품을 개작한 "서생들(The Students)이 출간되었는데 무대에서 상연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1839년 9월 30일에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의 지배인인 엘리자베스 베스트리스(Elizabeth Vestrice) 부인이 로잘라인 역을 맡아 이 극을 부활시켜 극평가로부터 호평 받기는 했으나 관객들에게 별 인기가 없었고. 겨우 9회 공연만 하고 중단하게 되었다.
1857년 새들러스 웰즈(Saddlers Wells)극장에서 사무엘 펠프스(Samuel Phelps)가 아마도로 분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후 1885년과 1907년에는 스트라트포드에서 셰익스피어 탄생 기념공연으로 『사랑의 헛수고』가 올려 지기도 했는데 1907년 공연에서는 벤슨 (F.R. Benson)이 비론으로 분했었다. 1906년 4월 24일 이 작품이 실제로 무대에 올려 지고 극으로서 충분한 재미를 관객에게 준 것은 20세기에 와서 영국 드라마 협회가 블룸스베리 홀(Bloomsburry Hall) 공연으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1918년과 1923년에는 올드 빅에서 공연했고. 1924년 6월 21일에는 옥스퍼드 대학극회가 와드햄 대학 가든 (Wadham College Garden)에서 잇달아 무대에 올렸다. 1932년에는 타이론 거슬리(Sir Tyron Guthrie) 연출의 공연이 있었지만 기대에 못 미쳤고. 1938년에는 리전트 파크의 야외극장에서, 그리고 연이어 1939년과 1943 년에 계속 상연했었다. 1946년과 1947년에 이 희극은 기념비적인 무대를 창출한다. 피터 브루크(Peter Brook)연출에 의한 스트라트포드 공연이다. 폴스코필드 (Paul Scofield)의 아마도 역의 성공에 힘입어 달콤하고 애처러운 이 극의 분위기 탓으로 관객들에게서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49년에는 올드 빅 극단이 뉴 디어터에서 마이켈 레드그레이브(Michael Redgrave)가 비론역이고 휴 헌트(Hugh Hunt)가 연출하여 성공적인 공연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잘 이 희극은 스트라트포드와 런던, 그리고 기타 지역에서 재연된다. 무대장치가 간단해서 야외극으로 적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50년대에서는 대표적인 무대는 1954-55년 올드 빅 공연이나 피터 홀(Sir Peter Hall) 연출의 스트라트포드 공연(1956)을 들 수 있다. 상기한 공연 이외에 스트라트포드 공연에서만 보아도 연출가들로는 존 바튼(John Barton)의 1965년, 데이빗 존스(David Jones) 연출(1973. 1975). 다시 올리는 버튼 연출(1978그리고 피터 브루크 (Peter Brook). 휴 헌트(Hugh Hunt)의 명 무대를 인상적이고 기념비적 공연으로 꼽을 수 있다.
이색적이며 특징 있는 명무대를 꼽으라고 하면 1978 년에 제작된 BBC 텔레비전 드라마라 하겠다. 연출 일 라이자 머신스키(Elijah Moshinsky)의 시대배경을 18세기로 가져간 발상부터가 파격적이다. 그는 프랑스의 화가 와트의 그림에 그려진 18세기와 그 분위기에 극을 가져다 놓았다. 전체를 부드럽게 덮는 석양 같은 색조를 말이다. 격한 정동을 부드러운 정취로 컴프라치한 감이 있는 와트의 회화세계와 생의 희로애락이나 욕망을 언어의 가면으로 화려하게 덮은 『사랑의 헛수고』의 양자 간에는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여 같은 피가 흐르고 있음에 연출의 대담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