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우재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

clint 2023. 7. 23. 13:53

 

 

인간, 비인간, 3구역에서 만나다. 
2060년경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팬데믹사태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로봇(Artificial Intelligence Robot, AIR)을 통해 전적으로 통제되는 
국가(빈부차이에 따라 1구역, 2구역으로 나눔)와 인간의 힘으로만 운영되는 자치커뮤니티네크, 
그리고 국가가 자연재해를 관리할 수 없는 1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2구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나는 어릴때부터 키우던 아프리카회색앵무인 바(BA)가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되어 국가내에서 키울 수 없게 되자, 
국가의 제재로부터 자유롭게 바(BA)를 키우기 위해 네크로 들어온다, 
인공지능로봇이 아닌 인간만의 자치커뮤니티를 꿈꾸는 수나와 
국가의 제재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추구하는 리언도 네크로 들어오고 
이 셋은 인간중심의 공동체를 이루어간다. 
하지만, 리언의 배신으로 국가에 바(BA)를 빼앗긴 이나는 네크의 삶에 염증을 느끼고, 
바(BA)를 좀더 자유롭게 키울 수 있는 3구역으로 도망치듯 이주한다. 
거친 자연 속에서 위험한 밤을 보낸 이나는 집안의 핵원자로 오작동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그때 정글 속에 숨어있던 지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로봇연구소에서 도망쳐나온 S.A.I.R(자의식있는 인공지능 로봇) 지나와 이나는 

첫 만남부터 서로가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음을 느끼고,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절망적인 세계관 속에서 점차 서로만을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국가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큰 갈등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사랑에 대해서도 진중하게 다루고 있다. 어떤 존재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어쩌면 각 개체에 맞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새에게는 넓고 파란 하늘이, 물고기에게는 깊고 푸른 물이 필요한 것처럼 각 개체는 자신만의 삶의 조건, 행복의 조건을 필요로 한다. 이나와 지니의 갈등은, 인간이 비인간이라는 낯선 존재 앞에서 그에 맞는 사랑을 고르고 제공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일 테다. 이는 이나와 바 사이의 사랑에도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나는 바를 가족으로서 진실로 사랑했지만, 그와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지니만큼 그의 욕구를 충족해주지는 못한 듯싶다. 그러나 이나는 새가 먹던 사과를 거리낌 없이 먹는 인물이기도 하다. 비인간과 인간 사이에 그어진 짙은 경계를 자신의 의지로 지울 수 있는 인간이다. 이나의 끝없는 고군분투는 소통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 작은 창구를 통해서나마 애써 소통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드라마터그 - 조만수

<A. I. 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 2060년대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왜 굳이 근미래의 사회를 가정하는 것일까? 사실 미래라는 환상을 시각적, 윤리적으로 제시하여 관객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라면 연극은 적절한 장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미래를 가정해보는 것은 현재에 제기되는 문제의식을 미래의 상황 속에서 소박하게나마 상상적으로 전개시켜 보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AI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 시대는 흔히 인공지능의 발달을 인간과의 경쟁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사회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인 창조성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당론은 만일 자의식'이 있어서 반성적 사유를 하고 감정을 지닌 로봇이 있다면 이 로봇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 장우재는 이와 같은 생각은 인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의식을 지닌 AL 로봇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닮았기 때문에 아니라 장우재에 따르면 인간과 다르기 때문이다. 로봇을 그 자체로 존중해서는 안되는가?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 시대가 지난 능력 중에 하나는 만들어 학습능력이다. 그러니까 지니는 자의식을 지나 있어서 인간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결국 장우재는 지니를 인간과 동물로부터 같은 거리를 지닌 존재로 제시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나와의 대화가 아니라 타자와의 대화이다. 타자의 언어를 읽는 것은 타자의 언어들 나의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마음 즉 타자의 욕망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동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식, 즉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들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법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언어로 번역했을 때, 동물의 언어는 의미의 상당부분을 상실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마치 Lost in translation이란 영화의 제목처럼 동물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할 때는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존재의 언어를 다른 존재의 방식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다른 존재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다. 자의식이라는 단어에는 소리 '()’자가 두 번 들어간다. 하나는 마음 심()과 함께 하고, 또 하나는 말씀 언()과 함께 한다. 즉 의식이란 언어로 치환되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소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우재가 제시하는 미래는 이처럼 ''로부터 '타자' '인간'으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로 확대되는 세계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로부터 인간이 함께 하는 존재들의 세계에서는 기계도, 동물도, 아직 정의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은 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결국 지구의 긴 시간 속에서 극히 일부분의 시간의 주민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른 모든 존재와 동등한 지위로 되돌려보자는 제안을 이 작품은 담고 있는 것이다. 새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은 새의 욕망을 듣는 것, 그리고 새가 욕망하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 새가 먹는 사과를 먹는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새와 소통하는 자세이다. 연극은 이런 생각을, 미래를 꾸며주는 거창한 물질적 구축 없이도, 가시화 시켜 주는 놀이이다. 그런데 이 놀이는 인간사회의 미래는 시뮬레이션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장우재는 이제 연극이라는 장르를 감동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한정하기를 원하지 않는 대신, 인간을 넘어서는 세상을 상상하는 실험 혹은 놀이로 파악한다.

 

 

작가의 글 - 장우재

대전환기입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오히려 악화된 문제들이 산적합니다. 동료들에게 몇 해 전 포스트 휴머니즘에 대한 여기는 했고, 인간 문제도 아직 해결 못했는데 또 '포스트-'라니, 도망가는 거 아니냐, 핀잔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안타깝지만기술은 전신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는 몇 학자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서로 모순되는 여러 개의 '진실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가 됩니다. 하여 그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가리는 일보다 먼저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너머'의 관점에 다가가는 일, 그것이 최근에 하고 있는 일입니다. "어떻게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존재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거야? 초능력이라도 부리는 거야?" 철벽 같은 질문들이 눈앞을 막아 섭니다. 나의 눈은 커졌지만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더 원래 연극적인 것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빼고 또 빼고 있습니다. 함께 하는 배우들과 동료 스텝들이 더 귀해 졌습니다. 구로공단 형성기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어느 날비둘기 똥을 맞고 아 이곳에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었구나느껴 방향을 재설정했다는 어느 연구자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A-I-R가 끝나면 그와 함께 붉은 가재'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귀한 동료들과 함께 그날을 맞이해야겠습니다. 계속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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