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기림 '떠나가는 풍선(風船)'

clint 2023. 5. 11. 13:22

 

 1931년 1~2월 시인 김기림이 최초로 발표한 戱曲인 떠나가는 풍선(風船)이다. 
이 作品은 난파선인 “고려호” 선원들이 ‘북해의 고도 어느 해안가’에서, 구원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주체에서 해적이자 사공들의 어릴적 故鄕 친구인 정운을 만나 스스로 각성하는 선원들(즉 民衆들)의 변화를 줄거리로 삼고 있다. 떠나가는 풍선(風船) 일반적 맥락에서 敍事的 전개라고 칭할만한 具體的 이야기의 흐름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즉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海賊이 이유 없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 또는 해적의 말 몇 마디에 아귀처럼 서로를 죽이고 죽어가던 선원들이 느닷없이 각성한다던가 하는 것은 敍事的 이유와 맥락없이 갑작스럽게 제시된다. 그러나 이 양상은 다른 側面에서 접근될 必要가 있다. 텍스트의 비서사적인 측면, 즉 인물들이 어떤 行動이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意味’를 보여주기 보다는 대사의 이면 혹은 알레고리적 맥락을 통해 그 ‘意味’가 제시된다는 점은 해석상 중요하게 봐야할 선결조건이다. 이 측면에서 작가의 희곡작품들이 애초부터 상징적이고 관념적으로 ‘구성’되고 알레고리화 되어 있다는 점 자체가 고려될 必要가 있는 것이다.
텍스트의 알레고리적 성격은 作品의 배경으로 설정된 北海의 고도의 어느 바닷가와 그리고 파선된 배가 어떠한 이미지로서 제시되고 있는가의 問題와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 戱曲의 전체적 분위기 속에서 매우 우울하고 불안한 곳으로 이미지화되는 해안가는, 말하자면 구출-대안이 불가능하며 최소한의 ‘희망’이 不在하는 곳이다. 텍스트의 空間이 무거운 침묵이 지배하는 우울한 ‘해안’으로 묘사된다는 것은 當代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側面에서 의미심장하다.

 


따라서 해석상 重要한 부분은 파선된 배로 형상화되는 朝鮮의 현실에 대한 사공 ‘라’의 입장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더 이상 구조선이 오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이 죽게 될 것이라며 절망하는 상황 속에서, 라는 파국적 現實에 순응하지 않는 인물이자 등장인물들과 대립하는 인물로 제시된다. 그 어두운 파국적 現實에서, 오지 않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사공들은 ‘폭풍’과 ‘검은 물결’의 바다 앞에 그저 無力하다. 사공 ‘바’의 언급처럼 이들이 머물고 있는 海岸가는 한차례 暴風이 불어닥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더 이상의 구원이 없으며, “우리보다 먼저 풀 밑에 모습을 파묻은 많은 생령들이 저기 검은 물결 속에서 우리를  부르는" 상황, 즉 자신들이 더 이상 ‘죽음’과 沒落을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린 朝鮮의 객관적 現實을 알레고리화하는 것이다. 또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의 다리고기를 먹고 기절해버린 어린 少年의 처참한 모습을 충격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배고픔, 즉 당시 世界대공황을 상징하는 것처럼, 극한적인 生存에 대한 공포가 바로 ‘破船’의 원인이다. 이 상황을 정리하고, 새로운 方向을 보여주려 하는 인물이 사공 라인 것이다. 텍스트 내에서 라는 죽음의 난장판을 ‘정지’시키며 살육의 무기인 도끼와 몽둥이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모닥불’로 표상되는 ‘未來’에 대한 可能性을 지키고자 하는 存在로서 제시된다. 따라서 사공 라가 ‘불’을 지킨다는 것은 敍事 내적인 맥락 속에서 구조선을 기다리는 行爲로서 기능하면서, 동시에 극한적이고 파국적인 朝鮮의 現實에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하고자 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갑자기 만난 海賊이 ‘우연히’ 자신의 故鄕 친구였다던가, 혹은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가 現實的이지 않고 지나치게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해적이 어렸을 때 친구인 사공 라 - 해적에게서 병삼이라고 불리운 - 를 ‘처음’ 알아보게 되는데, 이는 ‘라’가 이 사공들 중에서도 일종의 ‘선도적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故鄕 친구인 정운이 해적이 되었다는 맥락을 一次的으로 고려해야 한다. 정운이 해적이 되어 陸地에서 추방되었던 根本的 이유는 ‘가진 자’로 표상되는 선주가 그의 아내를 빼앗았고, 이에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해적인 정운과의 사공 라의 對話에서 드러나는 관념성은 이 ‘각성’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텍스트의 전략적 次元이라는 점에서 주목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공 라의 언급처럼 “목숨을 내던지고 바다와 싸우는 우리들의 살림에는 주림과 추위와 뱃주인의 학대만 쌓여갈 뿐”이라는 관념적 대사는 金起林의 政治的이고 美學的인 알레고리이자 時代의 객관적 현실에 대한 政治的 성격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즉 ‘복수’를 행한 해적이란 모든 것을 빼앗는 자들을 처벌하는 역동적 ‘주체’의 형상을 內在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들은 ‘주림과 추위와 뱃주인의 학대’, 그리고 ‘사람의 역사와 시대가 지속하고 있는 잔인한 밤’을 넘어설 수 있는 능동적 行爲로 각성되어야만 하는 주체이다. 이 각성된 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世界이자 金起林이 제시하려는 대안적 층위는 결국 라의 故鄕풍경에 대한 언급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렇기에 作品의 마지막 장면은 사공들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알레고리적 요소로 파악될 必要가 있다. 이들의 대사 속에서 암시적으로 제시되는 ‘강남의 백성들이 애타게 바라는 따뜻한 햇볕’의 맥락은 그러한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이 주체들이 도달해야 하는 새로운 ‘視空間’의 意味를 갖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각성과 인식의 問題가 金起林이 떠나가는 풍선(風船) 에서 알레고리를 통해 의도한 궁극적 주제가 된다. 그 이유는 작품의 敍事인 ‘죽음의 위기에 몰린 사공들이 우연히 해적인 친구를 만나고 대화를 통해 갑자기 대오각성하여 새로운 世界로 출발한다’는 것이 대단히 作爲的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核心은 이를 관념적이라고만 평가하는 것에 있지 않다. 이들을 방해하는 바다를 극복하고 건설하는 ‘해당화 핀 나라’는 말하자면 “새벽”과 “희망”을 가진 “육지”이다. 그 ‘장소’는 民衆들의 주체적 각성과 깨우침이 잠재적으로 存在하는 곳이라는 점이 核心的인 것이다. 떠나가는 풍선(風船)의 核心은 作品의 미숙성과 작위성으로만 파악되지 않는 金起林의 知識人的이고 時代的인 관념성의 층위에 있다. 떠나가는 풍선(風船)은 폭풍과 어둠과 바다로 표상되는 당시의 時代的 비극에 대한 알레고리적 표상들과 더불어, 이를 넘어서는 주체의 각성을 다루는 ‘政治的’이고 ‘美學的’인 텍스트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는 김기림의 初期 批評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던 ‘조선의 향기’나는 文學이 “신민족주의 문화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실험’이기도 한 것이다. (김정현의 김기림 初期 텍스트에 나타난 ‘政治性’과 ‘美學性’의 교차양상 硏究 참조)

 

김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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