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첼로'

clint 2023. 4. 18. 13:13

 

 

40대 중반의 윤희는 남편의 바람기와 성장한 아이들로부터 느끼는 소외감을 병처럼 간직한 주부이다. 

어느 날 집수리를 위해 찾아온 정수가 그에게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삶을 형벌처럼 살아온 정수에게도 윤희는 구원자이다. 

둘은 열렬히 사랑한다. 윤희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혼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 

이들의 밀애는 계속되고 결국 남편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혀경찰서로 넘겨진다. 

윤희는 가족에게 돌아가기를 원하며 주저앉은 정수와, 적당한 타협과 화해를 

제의한 남편을 뒤로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기 위해 처벌을 감수한다.

 



극단 전망의「첼로」(정복근 작, 한태숙 연출)는 '간통'이란 소재로, 중년여성의 새로 찾은 사랑의 아름다움과 불안한 홀로 서기의 선택을 첼로의 매혹적인 연주와 교차시켜 표현한 연극이다. 거칠게 만들어진 연극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이 공연은 모처럼 미학적으로 세련된 이미지와 연극적인 감성을 보여준다. 이 극은 간통죄로 고소 당한 두 중년 남녀의 각각의 진술로부터 시작한다. 불륜을저지른 중년 남녀가 경찰서 조사실에서 수사관에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곧 이 연극의 줄거리이다. 이들이 진술을 하는 사이사이, 혹은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거 시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 사이사이에 첼로의 고혹적이면서도, 때로는 어두운 연주가 끼어 들어 그들의 사랑이나 상황을 표현한다.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남편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었던 윤희는 집을 고치는 공사를 하면서 그 공사를 맡은 정수를 만난다. 정수는 윤희 삶의 생명력 없는 부자연스러움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는 야성, 자연스러움의 남자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사랑은 이전에 윤희가 속해 있었던 문명이나 제도나 중산층의 속물스러움과 대비되는 '자연'. 혹은 본능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규범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단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극은 간통이라는 극히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인간의 삶의 선택을 사회제도적 규범만으로 규제하고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한 가정 내 갈등과 사랑 없는 결혼이 전통적인 도덕관과 가정에 대한 의무감만으로 더 이상 견고하게 지켜지지 않음을, 즉 자신의 자아 찾기가 안정된 가정생활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극은 이 문제를 사회 문제 극적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 극은 이미 결혼한 남녀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혼외정사를 불가항력적인 만남의 신비로, 그러나 종국엔 현실의 덫에 걸려 서로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그리고 여주인공이 사랑 없는 결혼보다는 법정형을 받고 자유를 선택하는 변화 과정을 그린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안정된 조건을 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홀로서기를 선택하는 여성의 '자아 찾기'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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