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백남 '화가의 처' (단막)

clint 2023. 4. 13. 10:11

 

 

<화가의 처>(『삼천리』 5 4, 1933.5)는 가장의 장애와 아내에 대한 의심이라는 소재는 반복된다. 화가인 유동호는 카페 웨이트리스였던 가경과 결혼하여 페인트화를 그리며 가난한 생활을 꾸려간다. 가경은 병에 걸린 동호를 위해 생활비를 변통해오는 등 헌신적인 간호하지만, 동호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다. 외도를 다그치는 동호에게 가경은 교부(敎婦)사령장을 내보이며 오해를 풀고, 동호는 격렬한 기침과 함께 쓰러진다<화가의 처>에서 동호는가경의 육체와 마음을 모두 가져야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다. 그는 질병을 앓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남성가장을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인물로 설정한 방식은 <암귀>와 유사하다. 치료비와 생계비의 부담을 페인트화 대금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내 가경이 구해온교장이 선뜻 준 돈 백 원'은 동호의 의심을 증폭시킨다.

가경에 대한 동호의 불안은 동시기 희곡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아내의 성적인 매력에서 비롯된다. '본가에서 돈 한푼 안 주게 된상황을 감내한 카페 웨이트리스와의 자유결혼이었지만, 경제적 곤란으로 페인트화와 가경이 변통해온 돈에 의지해야 하는 동호의 상황은 자유결혼 이후의 비극적 현실이다. 동호가 꿈꾸는 완전한 연애, 완전한 사랑은 가경을 모델로 한 그림으로 상징된다. 그러나 국전에 출품할 계획에 있는 가경의 나체화는 아직 디자인만 되어있다. 완전한 사랑을 상징하는 '그림' 오브제는 윤백남의 번역 희곡 <영겁의 처>에서 이미 다루어진 바 있다. <영겁의 처>의 오르가는 '나는 죽더라도 나의 정신은 그림에 쏟아 놓았으니 영원히 그대의 머리맡에 놓아달라'는 유언으로 '영원한 사랑', '연애의 승리'라는 상징성을 그림 오브제에 부여한다. 그러나 <화가의 처>에서 그림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가경의 부정을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동호는 아직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였다는 의심에 시달리는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라는 오브제는 이렇듯 자유결혼 이후에도 현실적인 질곡에 의해 의심에 시달려야 하는 결혼생활, 성취되지 못한 완전한 사랑을 의미하게 된다. 결말에서 동호는 가경이 내민 교부(敎婦)의 사령장을 보고 격렬 한 기침을 터뜨린다. 이 같은 동호의 신체적 행위는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무능력 과 아내에 대한 의심이 오해로 폭로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화가의 처>에 등장하는 가경은 동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내는 인물이며, 한편으로 성적인 매력이 다른 작품의 여성인물에 비해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인물이다. <화가의 처>의 가경이 '전직 웨이트리스'이며 '동호의 누드모델'로 설정된 사실과 무대에 드러난 가경의 누드화 스케치 오브제는 이러한 인물의 성적 매력을 형상화한다. <화가의 처>에서 가경의 형상화를 통해, 작품에서 신여성 비판의 맥락은 소거되고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에 대한 의심과 아내의 성적 매력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요소는 부각된다. 그러나 <화가의 처>에서 가경의 부정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화되는 점진적인 계기가 친구의 '재등빌딩 앞에서 발견한 아내'에 대한 우연한 제보로 이루어지는 극적 사건의 전개는 무리한 구성으로 보인다. 이러한 극적 구조의 한계로 인해 이 작품 역시 당대에 공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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