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시인 배무룡은 어느 날 갑자기 연속적인 재난을 겪는다.
결혼을 앞둔 딸들은 말도 없이 가출하고, 외아들 장수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다.
아들을 퇴원시켜 빈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자신들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했음을 깨닫는다. 갑작스러운 불행 속에서 부부사이에도 석연 찮은 간격이 생겨서 부부는 차츰 각자 자신만의 세계로 몰입한다. 행복하고 안락했던 그동안의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배무룡은 말 못할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혹시 이 불행은 내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집안의 내부에서 자라고 있던 불행의 씨를 뿌린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닐까? 고민한다. 불안은 차츰 형상을 만들고, 가출한 딸들의 안위를 걱정하던 배무룡은 환상을 보기 시작한다.
사건이 나던 날, 아들 장수의 범행을 눈치 챘으면서도 암묵의 동조를 하고 사건을 은폐하는데 앞장섰던 허씨는 차츰 연옥에 빠진 듯한 괴로움을 겪기 시작한다. 누이들을 죽여서 호수에 가라앉힌 장수가 회복하기를 바라면서도 내심 한구석에서는 사건의 은폐를 위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부부의 회상속에서 장수는 갑작스러운 박탈감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내부에 있던 살의와 만난다. 청순하고 순진한 자매는 완전한 사랑에 굶주려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맹목적인 이기심이 자신들을 어떤 궁지로 몰아가는지 눈치 채지 못한다. 불안과 혹독한 자기성찰 끝에 배무룡은 마침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자신조차 딸들의 살인에 암묵의 동조한 결과가 되었음을 통탄한다. 자신의 내부를 향한 의혹 속에서 희미하게 드나들던 환상은 차츰 실체를 지닌 딸들이 유령으로 변하며 중산층의 안락에 길들어서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맹목적인 이기심. 자기성찰을 모르는 삶이 불러온 파탄을 원망한다.
정복근 작 <배장화 배홍련>은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에서 소재를 취해 만든 일종의 심리극이고 가정비극이다. 〈장화홍련전〉의 이야기 구조는, 계모의 흉계로 인한 장화와 홍련의 죽음. 귀신이 된 장화와 홍련의 복수, 장화와 홍련의 환생과 결혼으로 이어진다. 계모 허씨와 그 아들 장수는 흉악한 악인이고, 장화와 홍련은 죄 없이 고통을 당하는 착한 사람이고, 아버지 배씨는 무능하여 꾐에 잘 속는 인물이다. 반면 <배장화 배홍련>은 <장화홍련전>의 인물유형이나 이야기 구성을 벗어 던지고, 장화와 홍련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관련된 아버지 배씨와 어머니 허씨의 내면심리를 파헤치는데 초점을 맞춘다. 중산층 가정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악화되어가는 균열의 조짐을 극대화시키면서,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내면의 어두운 충동 혹은 위장된 비굴을 자극하고 일깨운다. 이 작품은 중산층의 내면의식을 다루지만 정복근의 다른 작품에 비할 때 대사가 훨씬 짧고 선명하다. 살이 말끔히 발라진 채 뼈대만 선명하다. 무대 위 어딘 가에서 흐르는 첼로와 바이올린 선율이 대사를 따라가며 가족의 울타리를 허문다.
작가의 글 – 정복근
고전은 그 존재자체 만으로도 귀하고 소중하다. 어떤 작품이 당대의 평가야 말로 어떠튼 오랜 세월을 두고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삶의 원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장화홍련전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고전 가정소설이다. 악랄한 계모와 질 나쁜 의붓동생에게 희생되는 가엾은 자매의 귀신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지만, 그 단순한 구성의 껍질을 한겹 벗겨내고 보면 악인과 희생자의 구분은 순식간에 모호해진다. 살인에, 그것도 혈연살해에 타당성이 있을 리 없지만, 범행의 과정을 따라가 보면 결국 모든 범행의 배후에 숨어있는 불행의 조건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 온전하지만, 결국 불균형한 정서가 자라날 수밖에 없는 억지로 봉합된 가족구성원들이 일으킬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비극인 셈이다. 가장 따뜻하고 강한 애정으로 결속되어 있어야 할 가정안에서 벌어진 이런 비극의 씨가 애초에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는 일은 훌륭한 연극적 실험이 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표면적인 안락에 길들여지는 일상의 위험, 자기성찰 없고 배려가 없는 이기적인 삶의 궤적이 길러내는 불행의 씨앗들, 그리고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선악의 양면성들은 무대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가치관이라는 말자체가 진부해진 이즈음 유족함이 이루어 내는 안락함과 안정성, 순간적인 쾌락과 감각적인 즐거움에 우선하는 가장 근본적인 그 무엇을 우리가 잃은 지 오래라는 것을 다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 잘 살아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희생시킨 지난 30년간의 돌진이 결국 오늘 우리에게 장화홍련적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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