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폭발이 발생한지 수십 년 후, 폭발지가 관광지로 조성될 만큼 시간이 흐른 어느 때 사고 중심지로부터 수십km 떨어진 마을, 소수의 사람들이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이곳에 어느 날 재난로봇 노스체가 들어온다. 오랫동안 방치된 피폭된 땅을 점검하러 왔다는 노스체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관광으로 폭발지 중심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은 사진작가 필과, 오랜 기간 마을을 떠났던 '연'이 마을에 들어온다. 낯선 외부인들의 등장으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작은 파동이 생긴다. 인간에 의해서 개발됐지만, 마지막 임무를 마치면 곧 폐기될 운명에 처한 재난로봇 '노스체'는 남겨진 구역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해결사로 등장한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안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재난로봇을 정했나 보다. 여하튼, '노스체'를 사이에 두고 재난을 마주하는 다섯 명이 벌이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재난 현장에 투입되어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대신 처리하는 로봇은 세상의 모든 문제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극중에서도 "재난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여러분의 아픔을 노스체가 압니다"를 외치면서 등장하지만, 정작 최후의 순간에는 "전 이제 무엇을 하면 되죠?"라고 되물을 만큼 인간에 의해 조정되는 피동적인 처지에 놓인 노스체가 궁금하다.
어떠한 사고는 평화로운 시간들을 순식간에 '죽은' 무엇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이 무엇을 길러내는지 바라보게 된다. <노스체(NOSCE)>는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 놓여진 재난이 만들어낸 '산물'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산물은 한 순간에 죽은 땅이 된 이 마을이기도 구역 안의 사람이기도, 구역에 파견된 노스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있기에 죽은 땅에서도 생명은 피어난다. 구역 안이든, 구역 밖이든, 사람이 있는 곳에 삶이 있으며 그 삶이 어떤 삶이든 발을 디딘 곳에 각자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재난 속에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것일지 모른다.
원전 폭발 후 25년 만에 토지와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재난로봇 '노스체'가 들어온다. 노스체는 마을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느낀다. 사람과 동물, 숲과 물이 오염되면서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공식적으론 아무도 살지 않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몇몇은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세상과 단절된 채 내부에는 자신들만의 삶을 선택했던 세 명의 내부인들이 있다. 원전 폭발 후유증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현', 몸이 약한 '희'. 갑상선 수술을 했던 '옥'이 그들이다. 원전으로 인한 유해 물질 때문에 그들은 피폭당해서 건강과는 거리가 있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게 설정하지 않았으며, 25년간 천천히 영향이 끼쳤겠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처럼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내부인의 아픔을 표현했지만,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마을에는 멧돼지가 침범할 만큼 야생동물이 늘어났다. 여기에 무화과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메말라 죽어보이는 땅에도 생명이 샘솟는 설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작가 '필'은 폭발지를 관광하는 다크투어에서 길을 잃고 마을에 들어온다. '현'은 어머니 '연'에게 왜 왔냐며 원망을 숨기지 않는다. '희'는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옥'은 오염되고 망가진 그 마을에도 생명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필'은 그 마을과 '연'에 대한 연민으로 마을에 잠시 머물고, 이들은 묵은 감정과 두려움, 희망 등이 뒤섞인다. 외부에서는 관광을 목적으로 마을에 호텔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외부에 대한 원망과 경계심을 보이던 '현'은 오히려 외부로 나가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던 '희'는 남기로 결정했다. 마을 사람들은 집을 팔고 외부로 나가든가, 더 깊숙한 곳으로 이주한다. 그곳에 홀로 남겨진 노스체는 마을의 유해 물질로 기능이 망가져 더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며 수명을 다한다.
작가의 글 - 황정은
언젠가 강의를 통해 2015년 미국에서 열린 '다르파 로봇 챌린지'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재난구조 로봇을 가리는 대회였는데, 당시에 대한민국 카이스트 팀의 휴보(HUBO)가 우승을 했어요. 휴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눈길이 간 것은 중간에 넘어지면서 탈락한 로봇이었어요. 인간을 대신해 험지로 향할 로봇들이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대에 올라, 인간을 대신해 얼마나 인간답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시험받고 있는 것 같았죠. 그 모습을 보면 어쩌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대신해 희생될 누군가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요?
원전사고가 발생하고 25년 후의 모습을 그린 <노스체(NOSCE)>는 재난에 휩싸인 인간을 위해 개발된 로봇과 인류에게 불어닥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대재앙의 현장)에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입니다. 특히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놓인 산물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기 때문에 성격을 굳이 설명한다면, 암울한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재난 이후의 세계를 고민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재난의 산물이 때로는 한순간에 죽은 마을로, 구역 안에 사람으로, 이곳에 파견된 로봇으로 대상이 옮겨가기도 하고, 이처럼 재난이 낳은 상흔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대신해 희생될 누군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재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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