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지세를 따라 산과 물길의 형상을 짚어내고 방향을 가늠하는 눈썰미가 뛰어난 아이였던 김정호가 지도를 그리는 것에 전 생애를 바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당시 토산현 병방으로 있던 아버지 김해준(金海俊)의 죽음이었다. 관아에서 내준 지도를 유일한 길잡이 삼아, 홍경래의 난을 진압할 지원대를 이끌고 길을 떠난 김해준은 난을 일으킨 홍경래 일파가 모두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지원대 전원은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관아의 엉터리 지도였음이 밝혀진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임 현감은 파직되고,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반역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소문에 캄캄한 한밤중 봇짐 하나 달랑 메고 고향을 등진 열 살배기 김정호는 목수 일을 하며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다시는 그러한 원통한 죽음이 없기를, 모든 백성이 땅을 알아 이롭게 가꾸고 넉넉히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정호가 반백년 가까이 공들여 만든 「대동여지도」. 이는 김정호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 실학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젊은 선비들,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지도를 그리고 그것을 동행자와 기꺼이 나눌 줄 알았던 보부상들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호는 그가 이룩해낸 이 위대한 성과를 가로채려는 불순한 세력의 음모에 빠지게 되는데……
작가의 말 – 박범신
나는 늘 궁금했다. 고산자 김정호는 누구일까.
그는 소문대로 백두산을 아홉 번 열 번 오르고, 너무도 상세히 지도를 그린 나머지 첩자로 몰려 끝내 옥사했다는 게 사실일까. 그에게도 처자식이 있었을까. 한 인간으로서 사랑을 혹시 해본 일은 있었을까. 지도에 미친 그는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그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고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을까. 혹시 천주학쟁이로 핍박받거나 문둥병 환자는 아니었을까. 그는 도대체 왜,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그려 넣지 않아 오늘날 독도를 제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말거리를 만들었을까. 중국과 아라사가 각각 제것이라고 우기는 압록강 하구의 신도나 두만강 하구의 녹도는 대동여지도에 당당히 그려 넣었으면서, 왜 간도일대는 모두 빠뜨렸을까. 대마도는? 오키나와는? 대체 그는 어떻게 백수십 년 전에 그처럼 오차가 거의 없는 과학적인 축척지도를 그렸을까. 대동여지도 목판은 지금 모두 어디 있을까. 그리고, 불과 백수십 년 전의 사람일 뿐만 아니라, 아울러 그가 그려낸 '대동여 지도'는 조선조에서 생산된 이른바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셈인데, 왜 역사는 그것의 작가였던 그에 대해 고향은 물론, 출생과 죽음, 심지어 본관조차 기록해 놓지 않았을까. 무슨 연유로 그에 대해 완강하게 침묵해 왔을까.
이 소설은 그런저런 오랜 궁금증에 대한 나만의 대답이다. 예컨대 '독도'의 경우, 술에 취한 난고 김병연, 일명 김삿갓이 삿대질하며 그를 다잡는 장면에서 역사의 끊어진 다리가 비로소 봉합된다. 기록이 빠뜨린 걸 작가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통찰력을 통합시켜 극복하고자 애쓴 결과물인 셈인데, 좋은 '물건'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소설을 쓰면서,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했고, 그래서 세상과 계속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뼈저리게 지켜온 강토에서, 나와 우리가 지금 계속 이어 살고 있다는 큰 위로와 자긍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어 행복했었다는 사실은 밝혀두고 싶다.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누구보다 먼저 나를 깊어지도록 만들었다. 드높고 외롭고 옛산에 의 꿈을 잃지 않았던 그에게 독자 여러분보다 앞서 감사드리는 걸 이해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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