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

clint 2023. 3. 30. 11:06

 

이전의 두 작품(서편제, 소리의 빛)의 후일담 형식으로 진술되고 있는 <仙鶴洞 나그네>에서 소리꾼 부녀는 30년 전의 모습으로 나와서 소리를 한다. 역시 어느 주막집 주인 사내를 화자로 해서 전달되는 그 과거 장면은, 이 소설에서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특이한 지세와 더불어 관심을 고조시킨다.

산밑 포구의 물에 비치는 관음봉의 모습이 꼭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선학동. 그 그림 같은 정경과 더불어 소리꾼 부녀는 소리를 뽑고, 마을 사람들은 심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마을을 떠난 뒤 20여년 만에 이제는 중년 여인이 된 딸이 아비의 유골을 들고, 선학동에 그것을 묻기 위해 나타났었다. 장님 딸은 어디엔가 아비의 유골을 묻고 떠났는데, 이상하게도 여인이 다녀간 다음부터 선학동엔 다시 학이 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포구가 간척으로 들이 되어 물이 없어짐으로써 더 이상 학이 날을 수 없었던 그곳에 말이다. 그것을 화자인 주막집 주인남자는 '눈이 먼 여자가 누구보다 먼저 선학동의 학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눈먼 여인이 물 없는 포구에서 학이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눈먼 여인이 무엇인들 볼 수 있겠는가. 또한 눈이 멀지 않았다 한들 물 없는 포구에 어떻게 관음봉이 비쳐 학의 나는 모습이 되겠는가. 따라서 문제는 결국 환상을 통해 본다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밀물 때를 잡아서 날마다 소리를 하는 그녀 덕분에 선학동은 옛날의 포구로 변하였고, 그 포구에 다시 산학이 날게 되었던 것이다. 주막집 주인남자의 말대로, 여인은 그 뒤 떠나갔어도 선학동의 학이 되어 항상 그 마을 하늘을 떠돈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여인 자신의 희망이기도 했다.

 

임권택의 영화 천년학의 배경이 된 작품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3편의 연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화자가, 소리꾼 부녀의 의붓아들이자 의붓 오래비인 사내라는 점이다. 사내는 의붓아비에 대한 적의, 살의 때문에 그 곁을 떠나 도망갔으나 꾸준히 그들 부녀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주막에서 주막으로 그들의 자취를 따라다니는 사내가 의붓 동생을 만난 일은 딱 한번 뿐, 그 밖에는 언제나 주막집 사람들을 통해 전문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질없어 보이는 이 같은 그의 행각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내는 그때 그런 몽롱한 마음가짐 속에서 또 한 가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사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보았을 때, 길손의 모습이 사라지고 푸르름만 무심히 비켜 흐르고 있는 고갯마루 위로는 언제부턴가 백학 한 마리가 문득 날개를 펴고 솟아올라 빈 하늘을 하염없이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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