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이청준 '새와 나무'

clint 2023. 3. 31. 15:56

 

<새와 나무>는 이청준 '남도사람' 연작소설 중의 하나이지만, 장님 오누이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일찍 집을 나간 형을 빗새로 그리면서, 시골에 내려와 땅 한 곳을 그의 영원한 집으로 정해 놓고도 종내 그것을 실현하지 못한 시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작품 역시, 인간의 한과 그 긍정적 승화의 통로로서 자연을 제시한다. 물론 이청준의 소리 연작소설이 과연 한과 소리의 관계를 통해 억압과 예술과의 관계를 가장 바람직스러운 명제로 세워놓았고, 그것이 올바른 예술인식의 태도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치게 수동적이며 때로는 체념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과 같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혐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나 이청준의 이러한 작업이 소중하게 평가되어야 할 보다 큰 문제를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그것은 원한- - 자연- 초월로 이어지는 현실구조. 생명구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tv문학관 손님 역에 박근형, 주인 역에 이순재

 

 과수원 주인이 지나가는 낯선 사내를 초청함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때 이 길손이 오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아마 남도사람 처음부터 읽은 사람들은 그러리라 믿을 것 같다)

그의 이야기는 없고 과수원 주인이 주로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주인이 한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어머니와 집나간 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비가 내리면 구슬프게 우는 빗새를 애달아했고, 마침내 집근처에 동백나무를 심어 빗새가 비를 피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빗새를 집나간 큰아들로 생각했는지 아침마다 씨좁살 말린 것을 새모이로 주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정성이 통했는지 마침내 큰아들은 삼십 년 만에 빈털털이로 돌아오고, 어머니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큰아들은 과수원에 무질서하게 나무를 심으면서 일간 정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방랑벽을 끝내 버릴 수 없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유랑을 떠나고 만다. 여기서 과수원 주인은 지나가던 길손이었던 사내를 초대한 이유를 밝힌다. 바로 자신의 형처럼 그 또한 보자마자 빗새처럼 보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초대를 했다는 것이다.

과수원 주인과 지나가던 길손의 술자리는 계속되고, 주인은 마침내 두 번째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에는 시장이(시인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 생활에 찌든 시장이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과수원 주인에게 조그마한 땅을 구입하도록 부탁하고 주인은 쾌히 승낙 한다. 하지만 시장이는 쉽게 돈을 마련하지 못하여 여러 번 약속을 어긴다. 그 동안에도 주인은 귀향할 시장이를 위해서 땅 대금을 치루기도 전에 땅주인의 허락을 받고 자신의 과수원에 있는 좋은 묘목들을 옮겨 심는다. 빗새처럼 시골을 찾아오는 시장이를 위해서 좋은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시장이는 끝내 돈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죽어 유골이 되어 강에 뿌려진다. 과수원 주인의 형에게 그 쉼터란 바로 어머니의 품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영원히 정착하기를 바랐지만, 아들은 곧 떠나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시장이에게는 바로 도시를 탈출하는 것 자체, 그런 상상만으로 그의 정신을 여유롭게 하고 시상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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