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전쟁터에 가족을 보내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여인들. 오로지 편지로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다. 세월이 흘러도 전쟁은 끝날 줄 모르고 무의미한 집단거주지의 삶은 계속되는데, 어느 날 전쟁이 곧 끝난다는 중대장의 편지가 와 모두 기뻐하며 가족이 돌아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한다.
얼마 후 한 병사가 거주지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소식은 거주지 내 여인들의 가족이 얼마 전의 전투에서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실의에 젖어 지내던 며칠 후 결혼 한 지 얼마 안 돼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여인이 자살을 한다. 분노한 여인들은 전쟁터로 나가 싸우기로 결심하고 입대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작가 note : 후루카와 다이스케(古川大輔) / 극단 기죠 후케이(机上風景) 대표
「마르지 않는 것 ~乾かせないもの~」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희들은 표현자로서, 전쟁을 실제로 체험할 수는 없었지만, 그 고통을 상상할 순 있습니다. 실제로 서로 죽이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 광기(狂氣)를 상상할 순 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무사 귀환한 병사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가족이 될 순 없지만 그 행복감을 상상할 순 있습니다. 다양한 감정을 상상하고, 연기자가 자신의 감각을 통해 무대에 오르게 되면 관객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전쟁에 대해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저희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전쟁에 나간 병사의 귀환을 기다리는 여성들입니다. 그 감정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시대라도 변하지 않는 동일한 것이라 생각되며, 이름도 세계도처의 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기리야- 우크라이나,, 아부르- 프랑스, 모스탈-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유치카-아메리카, 가즈나-나이지리아, 유에- 베트남, 테토-베트남, 가즈니-아프가니스탄, 빈-베트남 의 지명을 사용했습니다. 연극 중에서는 등장인물 이외에도 다른 지명으로부터 유래된 여러 가지 고유명사가 등장합니다. 처음으로 이 작품을 공연했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6년.‘ 가족의 귀환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해외에서 공연하고 싶다’라는 그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서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극단 예전 김태석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반전 연극의 관심은 대부분 전장의 긴박함이나 폭력성에서 벗어나 있다. 전쟁의 위악과 부조리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마르지 않는 것>도 화약 냄새와 총성이 없는 후방에 남겨진 가족들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사건의 주변을 더듬으면서 문제의 핵심이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데 능한 작가는 병사들의 가족이 겪는 일상에서 전쟁의 본질을 걸러내고 평화의 의미를 묻는다.<마르지 않는 것>은 이기심과 폭력성을 근본으로 하는 전쟁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우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화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한 경우에 확대 적용할 수 있는 우연성에 있다.<마르지 않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보를 최소화함으로써 메시지의 보편성을 확보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라고 설정된 배경은 분쟁이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유치카의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상처 입은 토끼’이야기는‘우화 속의 우화’로 그 풍자성으로 메시지를 부각시킨다. 출정한 남편의 생환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내가 숲 속에서 만난 상처 입은 토끼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그 토끼를 삶아먹는다는 아이러니한 사건은 위정자들이 내세우는‘전쟁 논리’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우리 안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유치카를 토끼 살해자라고 놀리던 사람들이 도리어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고 입대를 모의하는 행동이나, 가즈나의 남편 가즈니가 살아 돌아온 데 대한 원망어린 시선 또한 내면에 자리한 이기적 폭력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입대하려는 아부르에게 총을 겨누면서까지 말리는 기리야도“친구를 위해 싸우는 건 전쟁이 아니라, 살인일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공적 폭력으로서의 전쟁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인물임이 밝혀진다. 이들이 부르는 환희의 노래는 다른 이의 패배이며,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기에 기쁘지 않다. 작가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곧 평화라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별 것 아닌 일에까지 스며들어 좀체 사라지지 않는 폭력성은 끊임없이 쌓이는 빨랫감에 비유되고, 평화를 바라는 여인들의 쉼 없는 빨래는 두 개뿐인 세탁기 중 하나가 고장 나자 세탁기를 차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들의 다툼은‘전쟁터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렇듯<마르지 않는 것>의 주된 모티브는 빨래를 말리는 과정이다. 여인들이 빨래를 손질하고 건조하는 과정은 의식처럼 경건하다. 더 정성스럽게 말려야 남편이 무사 생환하는 것처럼. 그러나 여인들의 소망은 유에의 자살사건으로 무참히 꺾인다. 모스탈의 재단가위는 유에의 자살을 돕고, 베갯잇을 만들던 천은 유혈을 닦아내는 붕대로 변하면서 비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죽었다던 유에의 남편 빙 중사는 생환하고, 이렇듯 잘못된 통신 이 낳은 비극은 알베르 카뮈의<오해>처럼 삶의 근원적 부조리 성을 시사한다. 기리야와 아부르가 함께 빨래를 펴서 말리는 9장에서 이들은 함께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곧 헬리콥터 굉음이 노래를 삼켜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전쟁의 위세가 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대한 작가의 해법은 이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잘 손질해서 바짝 말리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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