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막-
1952년 7월 26일. "알젠틴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에바 페론이 영면하셨습니다." 에바의 장례식은 장대하고 호화로웠다. 수많은 군중이 슬퍼하였다. 체는 그러나 그 비탄속의 군중에 속하지 않는다. "서커스 같아!" (체는 <에비타>에서 때로는 해설자, 때로는 관찰자, 때로는 작자의 대변자가 되어 에바를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1934년으로 돌아간다. 에바의 고향 후닌의 나이트클럽. 에바는 겨우 15세, 그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아구스틴 마갈디란 남자 가수를 만난다. 에바는 마갈디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그는 싫어했지만 마침내 그녀에게 지고 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녀는 머지않아 마갈디를 버리고 사다리를 오르듯 명성과 행운을 위해 한 남자 한 남자를 섭렵한다. 그녀는 모델-성우-영화배우로 점차 성공한다. 후안페론은 혁명에서 성공하며 정적들을 제거하고 군부 내 실력자로 부상한다.
1943년 알젠틴의 대지진으로 많은 희생자가 났을 때 한 자선공연에서 그녀는 후안 페론 대령을 만난다. 둘은 첫눈에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느낀다. 이때부터 에바는 정치적 야심을 품게 된다. 그녀는 페론의 어린 정부를 즉각 내보내고 그 이후 일생 그녀의 적이 된 두 파벌 군대와 귀족들의 원한의 대상이 된다. 정치적 상황이 혼미해지자 페론보다 에바는 더욱 적극적으로 알젠틴의 최상좌를 향해 매진한다. 에바와 후안이 오랫동안 공들여 기반을 닦아온 근로자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제2막-
에바의 야심은 실현되어 후안 페론은 대통령 선거전에서 승리한다. 장미궁전(대통령 관저)의 발코니에서(1946년 7월 4일) 그녀는 남편보다 더 큰 환호를 얻는다. 그녀의 정감어린 멋진 연설은 수천 군중을 사로잡는다. 체는 그녀의 성공에 관해 질문을 펴지만 답변을 못 듣는다. 에바는 유럽에서의 자기 과시를 위해 유럽순방을 생각한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대환영을 받았으나 이태리에서는 망신을 당했고, 불란서 여행도중 건강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귀국한다. 귀국해서 그녀는 국내일에만 전념하려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류층에서는 그녀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녀는 아랑곳 않는다. 「배우는 듣고 싶어 하는 대사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예요」 체는 에바가 주장하듯이 근로자를 위한 정치가 행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에바는 에바 페론 제단을 만든다. 기업가들로부터 큰 돈은 긁어모았지만 실상은 그 만큼을 모두 베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약간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녀를 여신처럼 숭배하게 된다. 에바는 '세상이 원래 악하며 이것이 기본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병들었음을 안다. 에바에 대한 반감이 군부 내에 고조된다. 체는 페론 행정부의 과실과 폐해를 열거한다. 페론은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옹호한다. 페론과 에바는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 대해 토론한다. 그 자신도 정부 내의 통솔력이 약화되고 그녀의 힘도 줄어들고 있다. 에바는 아픈 몸을 이끌고 부통령이 되겠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군부 내의 반대세력은 너무도 컸다. 그녀의 병세도 악화일로-그녀는 자신의 임종을 느끼고 마침내는 부통령직에 취임하지 않겠다고 방송한다. 그녀가 놓친 유일한 도전이었다.
그녀의 나이 33살, 죽음을 앞두고 일생의 여러 가지 영상-사건-인물들이 그녀의 상상을 통해 명멸한다. 알젠틴 국민은 크게 슬퍼하고 그녀를 성녀로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더 행복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아마도 더 오래 살았으리라…
그러나 죽음에 임해서도 그녀는 다시 평범한 것을 거부한다. 그녀가 죽자 그녀의 시신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방부사들이 들어온다. 방부사들은 노래한다.
방부사 - 눈 머리 얼굴 모습을 생생하게 하세 산사람처럼 보이게 그녀의 공로만큼
체 - (마지막 대사) 그녀의 분묘와 탑을 세우기 위해 돈을 모았다. 그러나 기반이 겨우 완성되었을 때, 그녀의 시신은 실종되어 17년 동안이나 우리는 그 행방을 몰랐다.
이 뮤지컬 에비타는 파란만장했던 한 여인의 짧은 인생을 긍정과 부정의 두 각도에서 규명한 작품이다. 1919년 알젠틴의 시골 로스 톨도스에서 에바 두 아르레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가난과 역경 속에서 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진출할 것을 꿈꾼다. 1926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나 첩의 자식인 까닭에 부친 장례식에 참석을 거절당한다. 이것이 에바 일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데 중류계급에 대한 증오심은 후에 그의 여러 행적에 나타나게 된다. 1943년 대망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여 그의 타고난 용모와 재능을 발휘하여 사교계에 두각을 나타내며 성우로서 명성을 얻게 되는데... 이미 그녀는 시골뜨기 댄서에서 야망을 품은 귀부인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1944년 대지진으로 인한 이재민 구제를 위한 자선음악회에서 에바와 페론이 만나는데 이것이 알젠틴의 역사를 바꾸는 두 인물의 상봉으로 기록된다. 페론이 알젠틴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1946년 페론은 노조와 에바의 능수 능란한 유세에 힘입어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사실상 수많은 업적과 공적이 페론 대통령 이상의 에바에게 있었는데 특히 그녀의 서민 대중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배려로서 빈곤과 질병의 축출은 알젠틴 근대사에 크게 기록하고 있다. 알젠틴을 대표하여 유럽 외교여행도 하고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 명실공히 알젠틴의 실력자로 부각된다. 그녀가 암으로 쓰러지는 순간까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인간적이며 활화산 같은 사랑은 유명한 그의 마지막 전국 방송으로 많은 알젠틴 국민의 머리에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1952년 그녀가 죽자 국민들은 애도하며 그를 영원히 보존키 위해 미이라로 만들게된다.
이 드라마는 한 여인의 출세담이나 알젠틴의 현실 비판극이 아니라 한 여인이 열정과 모험이 얼마나 외롭게 방해 받으며 몰락하는가 하는 인간의 상승 의지와 절제에 대한 보다 각별한 균형을 주체로 하여 차원 높은 휴먼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특히 이 뮤지컬은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팀. 라이스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 두 콤비의 두 번째 걸작이며 1978년 런던에서의 초연을 비롯 1979년 뉴욕 공연, 로스앤젤리스 공연 등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성공하고 있는 뮤지컬로 기록되고 있으며 토니상을 비롯한 유수 연극상을 휩쓸어 당시 세계 무대에서 공연 중인 연극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이라는 찬사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후안 페론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에바가 카사 로사다(Casa Rosada)의 발코니에서 승리를 축하하며 몰려든 국민에게 부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가 워낙 유명해서 뮤지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도 몇 번인가 들어봤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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