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13세기 노르웨이의 호콘왕과 스쿨레 백작 사이의 전쟁과 호콘왕에 의해 스쿨레 공작이 살해당한 역사적 사건이 배경이다. 왕의 동생인 스쿨레 백작은 왕이 죽자 6년 동안 섭정을 하게 된다. 왕의 아들 호콘이 성장하자 그의 어머니 잉가는 ‘불의 시련’을 견뎌내어 아들 호콘이 신의 선택을 받은 왕임을 증명해낸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으나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늘 불안하고 초조한 스쿨레백작과 선대왕의 아들로서 늘 자신감과 확신에 찬 호콘왕은 갈등과 대립을 하게 된다. 여기에 스쿨레백작의 욕망과 의심을 부추기며 호콘과 스쿨레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니콜라스 주교가 있다. 세 인물을 축으로 전개되는 권력싸움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 작품이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왕국에서 단일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진보와 혁신의 호콘왕과 이전 질서와 왕권에 집착한 스쿨레 백작, 그리고 권력에 존재하는 반목과 갈등을 상징하는 니콜라스 주교를 통해 수백년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입센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왕위 주장자들>은 입센이 <사랑의 희극>의 수용에서 겪은 좌절에서 벗어남으로써 창작될 수 있었다. 그 계기는 그의 친구이자 선의의 라이벌이었던 뵤른손이 마련해주었다. 1863년 6월 입센은 뵤른손의 배려로 베르겐 음악제에 참석해 노랫말을 쓰는 등 시인으로서 한몫을 했고, 그가 <사랑의 희극>에서 그토록 비판했던 수천의 동포들에게서 큰 오마주를 받았다. 이는 입센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었고 이런 기분 쇄신의 결과로 창작된 드라마가 <왕위 주장자들>로 입센의 첫 걸작으로 평가된다. <왕위 주장자들>의 시대적 배경은 13세기 전반부 군웅이 할거하던 노르웨이이며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왕위 계승자임을 주장하는 두 인물 호콘 호콘쇤과 스쿨레 백작 (나중에 공작), 그리고 젊은 시절 스스로도 왕위에 오르기를 열망했으나 전쟁에 패했을 때의 두려움 때문에 그 소망을 접은, 그러나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쥐기 위해 성직자가 된 오슬로의 주교 니콜라스 마르네손이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 세 인물들이 군주국, 귀족정체 및 교회를 대표함을 알 수 있다. 중세를 여러 면에서 정의할 수 있지만 교권과 왕권의 각축장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세 인물들의 근원적 갈등 관계가 극의 기조임을 곧 알 수 있다. 입센은 이 작품의 소재를 노르웨이의 정사(正史)와 전설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관심은 당연히 역사적 추이에 있지 않다. 역사는 그저 전경일 뿐이다. 정치적 세력들 간의 투쟁보다는 세 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경은 중세이지만 작가의 관점은 매우 현대적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옷을 입었을 뿐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명에 대해 의심하는 자와 그런 것들을 진정으로 확신하는 자를 대비시킨 심리 드라마이다. 이것이 <왕위 주장자들>이 입센의 역사극 중 가장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유이며 이 작품으로부터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그리는 입센의 극작 수법이 본격적으로 발전되기 시작한다. 위의 세 인물 중 왕위에 오를 것을 확신하고 있고 왕위에 따른 소명의식까지가 분명한 인물은 호콘이다. 더구나 각 지역의 제후들이 왕위를 주장할 때 그의 어머니가 '불의 시련'을 견뎌내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아 승리한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진다. 그에게서는 소명의식과 단순함, 그리고 행동성만이 보일 뿐 내적 고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극적 인물로서 인상적이진 않다. 그러나 노르웨이를 하나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 옛것을 과감히 새롭게 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당대 노르웨이의 관객들에겐 나라의 발전을 꾀한 애국적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호콘은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 스쿨레 백작을 필요로 한다. 왜냐면 스쿨레는 승하한 스베레 왕의 동생으로 왕의 서거 이후, 호콘이 왕이 되기 전 6년 동안 섭정했던 인물로서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지략가이기 때문이다. 호콘이 자신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호콘의 장인이 되며 공작으로 승격이 되었고, 왕국 영토의 절반을 봉토로 받았지만 선왕의 동생으로서 왕위를 위한 정통성이 자신에게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스쿨레의 내면에는 야심이 이글거리고 있다. 그는 여전히 옥쇄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실질적으로 왕국을 다스린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왕위에서 늘 한 발자국씩 모자랐고, 모자란 것이다. 그의 갈등과 고뇌는 바로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또 하나의 원인은 그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더구나 그는 호콘이 만들겠다는 하나의 국가란 것이 노르웨이의 전설과 역사에 없던 것이므로 불가능하다고 강변하는 옛 세력과 옛 사고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옛 세력과 옛 사고의 대변자인 스쿨레는 어떤 의미에서 현대적일까? 그가 외롭고 의심하는, 복잡한 내면을 지닌 '철학적'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왕국 영토의 반을 다스리는 왕임을 스스로 선포한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왕권은 관례대로 성 올라프 교회에서 대관식도 치르지 못한 비합법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으로서의 확신이 있는 듯 연회를 베풀며 군중 앞에서 가장을, 연극을 한다. 그러나 연회가 끝나고 텅 빈 왕궁의 홀에서 그는 절망에 빠진다. 왕으로서 승리와 성공을 확신하고 있는 듯 보이려는 자신의 연극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의 비극은 가져서는 안 되는 욕망을 갖는 것이고, 이에 더해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과정과 결과에서 그것이 과연 적법한 것인지, 법적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적법한 것인지 늘 의심하는 데에 있다. 4막에서 그는 궁정시인 야트가이르에게 왕위를 계승할 자신의 아들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한다. 시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 시인의 말에서 스쿨레는 권력욕의 허망함을, 자신이 그 헛된 욕망의
노예임을 인식하는 쪽으로 한발 다가간다. 입센이 권력 투쟁의 와중에 스쿨레와 시인의 대화를 굳이 삽입한 것은 인간을 감화시켜 인식으로 다가가게 할 수 있는 시인의 순수함, 시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고자 함이다.
스쿨레의 욕망과 의심을 더욱 부추기는 인물이 니콜라스 주교다. 그는 사랑의 성직자가 아니라 증오의 성직자이다. 노르웨이의 훌륭한 남성들을 증오해왔고 사랑스런 여인들을 열정은 있었으나 품을 수 없었던 태생적 무능력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얻지 못하는 것을 호콘이든 스쿨레든 누군가가 얻게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두 사람이 서로 대치하다가 파멸에 이르도록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이다. 죽음의 침상에서도 그는 현세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세를 떠난 후에도 그는 죽음의 세계에서 수사(修士)의 모습으로 죽어가는 스쿨레 앞에 나타나 스쿨레의 의심을 부추긴다. 브라네스는 입센이 니콜라스 주교를 이런 인물로 설정한 이유를 고대로 부터 전래되어 노르웨이에 상존하는 반목, 밝음에 대한 증오, 불화와 분리를 상징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니콜라스 주교야말로 입센의 이후 작가로서의 행보에 큰 의미를 갖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왕위 주장자들>에서 여성 인물들은 입센이 그간 묘사한 여성상들과 매우 다르다. 그들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나, 입센의 여성상들을 연구한 템플 턴(Joan Templeton, Ibsen's Women, Cambridge Univ. Press, 1997, 1999, 2000)에 의하면 폭력과 전쟁에 몰두하는 남성들의 세계에 반대되는 "사랑과 안정"의 세계를 구현한다. 호콘은 어머니와 아내를 통해 사랑에 눈을 뜨며 인간성을 가장 먼저 회복한다. 죽음 직전 스쿨레는 비로소 아내를 자신의 곁을 지켜준 한 인간으로 발견하며 수녀가 된 여동생을 통해 신을 맞이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면서도 호콘이 과연 적법한 왕으로 태어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멈추지 못하나 한 가지, 호콘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인물인 것은 확신한다. 스쿨레의 시신 앞에서 호콘은 "스쿨레 보르드쇤은 이 지상에 보내진 신의 의붓아들이었네. 그게 신비로운 점" 이라고 말한다. 호콘의 이 말은 우리의 삶에는 각자의 길이 정해져 있으며 그것에 거역할 때는 비극이 온다는 점을 독자/관객에게 작가가 알리는 전언이다.
<왕위 주장자들>은 입센의 위대한 서사(대하) 드라마들로 평가되는 <브란>, <페르귄트>, <황제와 갈릴리사람>을 선취하면서 <사랑의 희극>의 부정적 평가를 회복시킨 드라마이다. 특히 의심과 갈등, 자기 확신, 악마성을 대변하는 세 인물인 스쿨레, 호콘, 니콜라스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다층적 속성들의 메타포로도 읽힌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입센이 창조한 어떤 인물들보다 강력하게 그려져 있고 깊은 인상을 준다.
<왕위 주장자들>이 갖는 현대성은 이미 언급했지만, 문체면에서도 이 작품은 입센의 극작에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카틸리나>, <사랑의 희극>은 운문으로 쓰였고, <헬겔란의 영웅들>, <솔하우그에서의 잔치>는 운문과 산문이 섞여 쓰였으나 <왕위 주장자들>은 주요 인물들이 의례적 연설을 할 때나 특별한 극적 효과가 의도될 때를 제외하고는 산문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입센은 역사극의 언어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구어체여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이런 확신을 이 역사극에서 실천하고 있다.
<왕위 주장자들>은 1863년 1,750부가 출판되었고, 1870년 11월에 출판된 2판은 다음 해 1월에 매진되었으며 19세기 말까지 모두 9판을 찍었다. 세계 초연은 1864년 1월 크리스티아니아 극장에서 이루어졌는데 입센의 마지막 자작 연출이었다. 5시간의 긴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8회 공연되었으며 관객의 호응은 좋았다. 당시 크리스티아니아처럼 작은 도시에서 진지하고 긴 극의 성공은 특기할 일이었고, 이 작품을 끝으로 입센은 더는 자작 연출을 하지 않았다. 이후 이 역사 드라마는 노르웨이의 극장들뿐 아니라 덴마크 왕립 극장의 프로덕션(1871)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극장들의 정규레퍼토리가 되었으며 노르웨이 민족의 고전 역사극이 되었다.
스칸디나비아 이외의 초기 수용을 보면, 게오르크 II세가 이끈 마이닝엔 극단의 베를린 초청공연(1871), 베를린 실러 테아터의 프로덕션(1901), 막스 라인하르트가 그의 베를린 노이에스 테아터에서 연출한 공연(1904) 등이 있다. <왕위 주장자들>은 분명 노르웨이인들의 애국심을 북돋으려는 의도를 지닌 드라마였지만 입센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민족적 낭만주의에 입각해 노르웨이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차용했던 노르웨이의 역사를 더 이상 소재로 삼지 않는다. 그 이유를 그는 자신의 당대인들이 강력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싶은 진정한 필요와 내면의 필연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7년 3월 <왕위 주장자들>은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으로 한국 관객을 만났다. 창작된 지 154년 만에 한국 초연된 것이었고, 입센 드라마 중 12번째로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었다. 각색은 고연옥 작가가, 연출은 김광보 시극단 단장이 맡았다. 김광보는 "19세기 극작가인 입센이 던지는 메시지와 그의 통찰력에 감탄했다"고 하며 호콘을 신으로 대변되는 인물로, 스쿨레를 인간을 대변하는 인물로 해석하며 연출했다. “의심과 확신이란 키워드로 전개되는 점”이 좋았다는 각색자 고연옥은 "의심하지 않는 자는 승리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승리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의심을 통해 존재에 대한 사유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왕위 주장자들>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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