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장셴 '만원 버스'

clint 2022. 7. 3. 09:40

 

 

<만원 버스>는 창작 년도와 관련된 정확한 기록이 남지 않다. 장셴의 기억에 의존하여 추정하자면, 1990년대 초반에 창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독일에서 1992년에 번역본이 나왔기 때문에 이보다는 앞설 것이다. 1998년 상하이국제연극제 소극장 페스티벌에서 쉬정 연출로 공연된 바 있으며, 멍징후이가 1999년에 엮은 아방가르드연극파일(先鋒戲劇權案)에 수록되 었고, 2021년 베이징출판사에서 출판된 장셴 희곡집인 집안의 부엉이에도 수록되었다. 또 최근 독일에서도 공연되었다.

<만원 버스>는 만원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2인극으로, 숨 막히는 만원 버스 안에서 권력이 부여되는 의자를 두고 감시와 통제, 억눌린 감정이 표출되며 앉아 있는 승객과 서 있는 승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장셴이 대사 중심의 연극에서 신체 연극을 모색하는 전환기적 특징이 담긴 작품이다. 앉아있는 사람은 말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며, 서 있는 사람은 움직임을 할 뿐이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통제의 논리에 가장 일상적으로 소환되는 근거이다. 너무 상시적으로 듣다보니 때로는 '사람이 많다' 그 자체가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우리를 통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장셴은 작품 속에 반복적이고, 강박적으로 '붐빈다'는 어휘를 제시하며 일상에서 경험한 통제의 빈번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는 팬데믹을 경험한 우리에게도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감각이다. 앉아 있는 사람은 다소 분열적 양상을 보인다. 때로는 통제되어 왔던 기억에 대해 토로하고, 때로는 되려 통제자로서 서있는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마치 루쉰의 'Q'(루쉰이 쓴 소설 <Q정전>의 주인공이다. 루쉰은 패배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승리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중국의 현실과 노예근성을 아Q'정신승리법'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광인'(루쉰이 쓴 소설 <광인일기>의 주인공이다. 루쉰은 '광인'의 눈을 통해 중국의 유교문화를 '식인문화'로 비판한다.)이 섞인 것 같은 그는 정신승리와 자족적 논리를 펼쳐간다.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몸부림이 애잔하고 찌질할수록 더 부각되는 것은 바로 만원 버스라는 공간이다.

끝없는 경쟁과 각자도생만 남은 우리사회는 어쩌면 만원 버스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도처에서 목도되는 극단주의와 분노는 여전히 섬뜩하게 다가오지만, 만원 버스라는 공간이 문제인 것은 아닐까.

작품의 원제는 '옹제'이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숨막히다', '비좁다', '낑겨 있다' 등이 되겠다.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어휘들을 모두 사용하여 번역하였고, 제목은 <만원 버스>로 의역하였음.

 

독일 공연 장면

 

작가 장셴

'중국의 베케트', 또는 '중국의 핀터'로 불리는 실험연극인이다. 1987년 문학잡지 수확의 아방가르드 특집호에 위화, 쑤퉁과 함께 희곡 <집안의 부엉이>를 게재하며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고, 베이징의 머우썬과 더불어 상하이의 첫 번째 '문화난민(국가기관에 적을 두지 않은 독립 신분의 예술가를 뜻하는 말이다.)'으로 기록된다.

중국 8, 90년대에 두각을 나타냈던 다른 실험연극인들이 이제는 대부분 거장의 대우를 받으며 국공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면, 장셴의 30여 년 창작인생은 점점 더 험난한 변방을 향해간다. 그는 80년대 말, <집안의 부엉이><패션스트리트>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올리며 아방가르드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였지만, 90년대가 되면 개혁개방을 맞아 허용된 연극시장 형성에 힘을 보탠다. 당시 국공립단체가 거의 유일한 생태계였던 중국에서 민간단체가 활동할 수 있는 연극 시장은 연극인들에게 새로운 생태계였다. 그는 중국사회에 새롭게 출현한 '독립제작자'와 손잡고 <위층의 마진>, <미국에서 온 아내> 등 실험성보다는 대중성이 강화된 상업연극을 만든다. 이 시기 그는 '시민연극'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관객들의 호평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중단되거나 공연허가가 나지 않는 등 지속적으로 창작에 어려움을 겪는다. 독립자본과 도모했던 새로운 길에 무력감을 느낀 그는 21세기 무렵 독립공간을 모색한다. 1998년 그는 친구 왕징궈(王景國)와 함께 상하이 첫 번째 민영 극장인 전한 카페극장을 운용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두 사람은 '독립 공간' 샤허미창을 개관하고 장셴이 총예술감독을 맡아 다양한 페스티벌과 예술활동을 이어간다. 이 시기 그는 사회 연극을 제창하였다. 동시에 그는 대사 중심의 연극에서 벗어나 신체 언어를 사용하는 연극형식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2005'그룹 냐오'를 창단하고 만든 댄스씨어터 <고향에 대한 혀의 기억>'취리히 국제연극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40년이 지났고, 중국사회는 몰라볼 만큼 변화했다. 이전 시대의 변방은 다음 시대의 주류가 되었다. 장셴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며 과거의 변방이 아닌, 그 시대에 상응하는 변방을 새롭게 개척해왔다.

 

장센 (張獻)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정연 '옥녀동'  (1) 2022.07.11
구레이 '물이 흘러내린다'  (1) 2022.07.08
자오야오민 '붉은 말'  (1) 2022.07.01
샤오스야오, 니산산 작 '심연'  (1) 2022.06.30
셰익스피어 원작 공동번안 '화개장터'  (1) 2022.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