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상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주인 모를 집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든다.
남자1, 2, 3과 여자는 그 집을 뒤져 훔쳐 갈 것을 찾으며
집주인 행세를 하고 술에 취해 떠들기까지 한다.
나만 이들의 불만 섞인 푸념과 무의미해 보이는
대화 뒤에는 언제나 한결같은 침묵만이 맴돌 뿐이다.
심사평 - 선욱현 / “연극적 재미 가득…허무한 마지막에 더 현실감 느껴져”
‘연극이니까 이렇지. 이런 상황이 말이 돼?’ 라고 비현실성을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연극이고 그래서 영화, TV드라마와는 다른 연극만의 재미가 생겨난다. 비현실적이지만 공연을 보는 동안은 타당하고 생생하여 몰입되는 그 지점이 바로 ‘연극성’일 것이다. 10편의 본심에 오른 희곡들을 만나며 그 지점에서 엇갈렸다. 비현실적인 부분이 허무하게 언어의 유희로만 끝나거나 다소 진부한 전개로 사실적인 것 같지만 도리어 사실성을 획득하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 생생함이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들을 움직이는 어떤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모두 결정해버린 상황, 정해버린 주제를 전달하는 식의 극 전개 보다는 ‘이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려고 이러나?’ 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당선작으로 추천하는 ‘집주인’은 누구의 집인지 모를 집에 숨어든 도둑들의 수다와 연극하는 아이1, 2의 여러 작품 연습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하는데 연극적인 재미가 가득하고 대사도 통통 살아있다. 다소 허무한 끝내기를 작품 안에서도 예고했지만 지금 우리 주변의 삶과 세계는 정말 ‘허무’해서 그런지 더 현실성있게 다가온다. 실제 공연으로 올라간다면 연습과정 속에서 작품의 재미가 더욱 배가될 거라는 기대도 생긴다. 신인 극작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덧붙여 왕따 여고생 세 사람이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며 풀어놓는 이야기가 꽤 생생하게 다가왔던 ‘총’과 세대를 이어가며 가족부양에 세월을 보내야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쓸쓸한 그림을 보여준 ‘이미 냉동된 바 있으니 해동 후 재냉동 하지 마시오’가 최종 후보에 올랐음도 공개한다. 응모자 모든 분들의 정진과 건필을 염원한다.
당선소감 - 이예찬 / “지면만 주어진다면 닥치는 대로 쓸것”
지면이 주어졌다. 지면이 주어졌으니, 써야 한다. 우선 팬데믹으로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특히 공연 연극계를 비롯한 대면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상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실 테다.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하나 싶지만, 그래도 기왕 주어진 지면이지 않은가. 팬데믹을 포함해 지난 몇 년간 세상이 급격하게 변한 것 같다.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AI와 로봇공학의 발달은 인간을 무용한 존재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줄 것인가. 기후 위기는 임계점을 넘었는가, 넘지 않았는가. 우주여행에 돈을 써야 하는가, 빈곤 해결에 돈을 써야 하는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 질소 자살 캡슐로 존엄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가, 아니면 유전자 가위 기술을 발전시켜 불치병을 정복할 수 있는가. 예술은 쓸모 있는가, 없는가. 등등. 개인이 다루기엔 너무 큰 주제들 같지만, 그래도 기왕 주어진 지면이지 않은가. 이렇게 지면이 주어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앞으로 지면만 주어진다면, 닥치는 대로 써 볼 생각이다. 이번 지면을 마련해 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님. 펜에 잉크를 채워주신 오정국, 이만교, 유진월 교수님.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 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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