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고사하고 고시원 보증금과 월세조차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이 묘지를 찾아와 관을 임차해 산다는 설정이다. 인간의 주거는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그런데 주거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하면 그것은 도구가 아닌 목적이 된다.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들은 사라지고 종국에 도구와 목적이 모두 사라진 허무한 상태가 된다. 이 극에서 그 허무함은 '관'으로 표상된다. 부동산 상승의 여파로 인한 사회 각층의 인간군상이 서로 충돌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준다.
심사평 – 임선옥·평론가, 오경택·연출가
110편 희곡 응모작은 오늘의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어둡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상을 담고 있다. 올해는 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질병, 실업, 집값 폭등으로 인한 주거불안, 빈곤, 노인문제, 폭력, 온라인 여론조작 등 사회문제를 보여주며, 그로 인한 인간관계와 삶의 황폐화, 불안, 탐욕, 위선, 불신이 전반에 스며있어 시대를 걱정하게 한다. 본심에는 ‘가로묘지 주식회사’, ‘엄청나게 사랑하고 마음속 깊이 증오한’, ‘그 남자의 공중부양’이 올랐다. ‘엄청나게~’는 치매 사실을 거부하는 엄마와 그녀를 돌보는 딸 사이에 펼쳐지는 애증의 관계가 생생하지만 상투적인 사건 전개와 신파적 감정이 아쉬웠다. ‘그 남자의~’는 회사 야유회에서 보물찾기를 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매달린 비정규직 직원을 구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팀원들의 모습을 통해 각자의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의 풍경에 주목하게 했지만 전형적인 캐릭터와 피상적인 주제 의식이 아쉬웠다. ‘가로묘지 주식회사’는 가파른 집값 상승이 야기한 문제들과 현실을 비판한 사회풍자극이다. 집값 폭등의 연쇄효과로 임대비용이 올라 무주택 세입자들이 고시원세도 감당하지 못해 관을 임대해 산다는 기발하고 참신한 설정으로 주거문제와 삶의 연계성을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의 독창성과 흥미로운 극 전개방식은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고 애매한 결말은 극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트린다. 이 지점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작가의 많은 장점이 부족한 부분을 상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희곡 당선 소감 - 황수아
연극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가 기억납니다. 스무 살 봄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본 연극은 시종일관 긴장감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몰입되는 경험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뒤 저는 희곡을 쓰고 싶었습니다. 대학로에서 매주 주말마다 연극을 봤습니다. 국내외의 고전극, 현대 창작극, 사회풍자극, 코믹극 등 여러 장르의 연극을 보면서 극적인 사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생활 속에서 연극에 대한 고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돈을 벌 궁리를 하고, 아이를 교육하고 살 집을 옮겨 다니면서 연극이 아닌, 그저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 날 때 커피숍에 앉아 틈틈이 몇 편의 희곡을 썼습니다. 그 과정속에 느낀 것은 진정한 극적 요소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과 힘겹게 헤쳐나가는 생활 속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가로묘지 주식회사’는 최근 몇 년 동안 저와 저의 친구들이 겪은 어려움을 담은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세상은 하나의 무대인 것 같습니다. 극적인 사건은 현실 속에 늘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좋은 희곡은 무엇일까’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겠지만 삶의 기저에서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큰 감사 인사 올리며, 늘 저를 믿고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극작가는 20년 넘게 저의 꿈이었습니다. 이 시작을 씨앗으로 희곡창작에 꽃 피우자는 결심을, 지면을 빌려 스스로에게 약속해봅니다.
- 1980년 서울 출생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동대학원 졸업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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