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전국연극제 희곡상 수상작
짙푸른 어둠 속, 심문하는 자의 앙칼진 목소리와 신분 당하는 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뒤섞여 흐른다. 모반이 발각되어 제조된 허균, 지형을 받는 마지막 심문이다. 그의 재능을 아꼈던 광해군과 허균의 가시돋힌 설전이 시작된다. 허균에게는 두 여인이 있었다. 임진왜란 중 신고를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되는 아내와 기생이지만 전쟁의 고통과 당신의 절망 속에서 큰 실의에 빠져 보내는 허균에게 새로운 삶에 힘이 되어준 낙빈이 있다. 글 쓰고 앉아 있는 허균, 호민론이다. 한편으로는 조정의 대신들이 모여 시국 걱정이 끊이질 않고, 그 안에는 허균의 비뚤어진 사상과 행각을 비난하는 내용도 있다. 글을 쓰고 있는 허균의 관아에 도적들이 침입하고 그 괴수가 잡힌다. 그 도둑이 홍지재이다. 허균은 지재가 담을 넘게 된 사유를 듣고 이의 마음에 동조한 허균은 지재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고민하던 허균은 지재에게 자기의 단도를 던져줌으로써 그의 탈출을 조장한다. 도둑 괴수의 탈출은 허균에게 질책으로 다가오고...
이 작품은 홍길동의 저자로 알려져있는 허균의 삶과 그의 개혁적 의지를 통해 사람을 위하는 진정한 정치와 예술의 관계를 시대적 고민 안에 담아낸다. 허균은 이 땅의 중세를 살면서 근대적 의식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또한 그 괴리 안에서 괴로워했고, 그로 인해 평탄하지 않은 자신의 길을 걸었다. 흔히 그를 천재로 평가한다. 그것도 불우한 천재, 경박한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천재가 지닌 도덕적 가벼움까지도 지니고 있던 인물이다. 과거 급제 후 여섯 번에 걸친 파직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 그가 얼마나 벗어나 있나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임용되는 인생역정은 버릴 수 없는 그의 재능과 함께 그가 갖고 있었던 정치지향적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허균의 일대기가 아니다. 홍길동전은 더더욱 아니다. 한 시대를 끌어내는 정치와 또 그 시대의 산물인 예술, 이 둘 간의 관계는 언제 어느 시기이건 중요한 화두를 제공한다. 이 질적인 두 단어는 그사이에 사람, 혹은 당대의 민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통을 갖는다. 실패한 혁명가 허균, 그가 남긴 홍길동전 사이는 정치라는 현실적 그림과 예술이라는 이상적 그림만큼의 거리감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은 혁명을 꿈꾼다. 어느 시기에나 젊은이들은 그 중심이 되어왔다. 그들이 꿈꾸는 혁명은 다분히 감성적인 예술이며, 그들의 예술은 다분히 혁명적 의지의 또 다른 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혁명과 예술. 이 각기 다른 색깔의 두 날개는 이렇게 상호보완 적 한 쌍을 이루는 것이다.
이 작품 제목의 ‘땅'은 우리가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이며, '새'는 꿈꾸는 한 사람, 혹은 그의 이상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현실, 신념과 타협, 비상과 안주는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열된 자아의 갈등이기도 하다. "땅과 새“는 그래서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있는 한 현대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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