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의 아나>(2004)는 2004년 3월 11일 아침 스페인 총선을 3일 앞두고 마드리드 중심가 아토차 역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을 스페인이 적극 지원하는데 대한 반발로 알카에다를 추종하는 이슬람 무장 세력이 저지른 테러였다. 팔로마 페드레로는 이 사건을 세 명의 ‘아나’ 관점에서 다룬다. 지하철에 탄 것으로 추정되는 앙헬의 부인 아나, 앙헬의 애인 아나, 앙헬의 어머니 아나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앙헬이 살아 돌아오길 기다리며 앙헬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앙헬의 부인 아나는 앙헬이 최근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샤워하는 데서 그가 외도한 낌새를 알아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아침, 진실을 말하라고 그를 추궁한다. 그 바람에 앙헬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섰고, 아나는 자신이 그를 불잡지 않았다면 그 열차에 타지 않았을 거라며 자책한다. 앙헬의 애인 아나는 지하철에서 그를 우연히 만나 그와 사랑에 빠졌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앙헬과 크게 다투었는데, 사고가 난 날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자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애인 아나는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그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처지다. 앙헬의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기면서도 부인 아나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한다. 어머니 아나는 치매에 걸린 노인으로 병원에서 아들을 처음 뱄던 순간을 회상하며 아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한다. 비록 치매에 걸리긴 했지만, 모성애가 지극한 인물이다. 작가는 이 끔찍힌 사건을 정치척으로 오도하지 않기 위해 희생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앙헬의 죽음으로 애인 아나와 부인 아나는 처음으로 통화하게 되는 등, 세 명의 아나가 처한 각기 다른 상황은 앙헬이란 인물을 소실점으로 하여 겹쳐진다. 이 작품은 테러라는 사회적 문제를 희생자와 연루된 인물들의 독백을 통해 기술함으로써 ‘반테러리즘’이라는 진부한 주제로 빠지는 것과 거리를 둔 독창적인 작품이다.
작가의 글
<3월 11일의 아나〉는 전화 한통에서 탄생했습니다. 무대 감독 아돌포 시몬이 제게 전화를 해서 마드리드 통근열차에서 일어난 끔찍한 테러행위에 대한 원고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주요 극작가 11명의 간결한 작품으로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전 알겠다고, 한번 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화를 끊었는데 공포감이 엄습하더군요. 그렇게 엄청난 잔혹 행위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현 정치인들이 그 사건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지 못하게 하며 다룰 수 있을까? 어떤 관점에서 그 이야기를 말할건가? 그러다가 곧바로 생각난 것이 희생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의 관점에서요. 항상 세상의 폭력에서 여자들은 첫 번째 희생양이었습니다. 권력과 영토를 위해 투쟁하는 남자들에 의해 설계된 세상에서 말이죠. 항상 여자들은 남자들의 전쟁, 남자들의 폭력, 그들의 비정하고 급진적인 문화로 인해 정면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마드리드의 기차에 가방을 놓고 내린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그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죽었나요,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상처를 입었고, 얼마나 많은 여자가 자신의 딸과 자신의 아버지, 자신의 동반자를 잃었나요? 우리가 여기서 매일 겪고 있는 폭력은 남성 우월주의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TA와 같은 다른 폭력의 희생자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 가지 폭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한 가지 상황을 선택했습니다. 한 남자가 그 기차에 타고, 그의 애인인 한 여자가 그와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나입니다, 자기 남자를 찾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전화에 매달려 있죠. 아나는 불법체류자입니다, 서류도 없고, 병원이니 경찰서에 가서 그에 대한 정보를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아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의 전화 한 통을 기다리는 밀입국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전화하지 않습니다. 아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끔찍한 테러 행위를 무력하게 보며 기다립니다. 결국 전화벨이 울립니다, 연인의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죠. 그게 첫 결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끝이라고 쓰고 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부인은, 그녀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이 극적인 시간에 어디에 있었을까, 남편에게 애인이 있다는 건 알았을까? 이런 질문들로 두 번째 파트를 쓰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찾고 있는 루마니아 이민자와 함께 있는 부인의 이야기죠, 애인의 상황이 전개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시간에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두 번째 결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끝내려는데 여전히 무대에 다른 여자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입니다. 기차에 타기로 되어있는 남자의 어머니, 애인의 어머니, 부인의 어머니죠.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어떤” 치매에 걸린 나이 든 여자로 두려움 없이 느끼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은폐하는 것 없이 말입니다. 어머니는 공포의 희비극을 표현합니다.
세 여자 모두 이름은 아나입니다. 똑같은 이름을 그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세 명의 행위는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일어납니다. 이 세 아나의 세 가지 이야기는 다른 희생자들에 대해 우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곳에 남겨진 이들, 영혼이 파괴된 이들이죠. 아나들, 마리아들, 하리라들, 혹은 이리나들. 가장 무고한 희생자들이죠. 세상의 모든 여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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