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팔로마 페드레로 '다른 방에서'

clint 2021. 8. 28. 16:51

 

 

엄마와 딸의 애증관계를 제한된 시공간에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성공한 작가 파울라는 어느 날 딸의 다락방으로 한 남자를 초대한다. 남자는 마리오라는 인물로 파울라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다. 이를 알게 된 딸 아만다는 엄마의 계획을 어그러뜨리기 위해 파리로 가려던 일정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리오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폭풍우가 몰아 치는 바깥 날씨처럼 이들의 대화도 점점 격렬해지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아름답기까지 한 엄마에 대한 열등감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엄마의 관심과 사명이 간절했던 아만다는 처음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파울라에게 털어놓는다. 항상 일 때문에 바빠 맛있는 음식 한번 해준 적 없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애정결핍으로 거식중에 걸리게 된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토로하면서 마리오와의 약속을 취소하라고 파울라를 협박한다. 딱 하루만이라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봐달라는 부탁이다. 반면, 파울라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떤 희생을 해왔는지, 남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면 살았는지 아만다에게 이야기하면서 마리오와의 약속을 취소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아만다는 엄마가 마리오를 위해 만든 스파게티를 입에 우겨넣으며 히스테리를 부리고 엄마는 이런 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망연 자실한다. 서문에서 작가는 자기 어머니 시대의 여성들이 가정에서 희생하는 인고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현대의 어머니들은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사회생활을 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룬 어머니들은 가정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으며 이중고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현대의 많은 여성들을 고민에 빠트리는 중요한 문제이며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성이 임신과 출산, 양육에서 생물학적으로 자유로운 반면 여성은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끌어안고 고군분투하며 사회로 나아간다. 사회생활에 결격사유가 없도록 하기 위해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을 장애로 여기고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하루 종일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만큼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자녀와 자기 자신을 한시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여자로서의 태생적인 특성 때문일 것이다. <다른 방에서>어머니와 딸이라는 강력한 관계에서 벌어진 분쟁을 통해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사회에서 어머니이자 사회 활동하는 여성으로서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온 작가 자신의 고백록처럼 읽힌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모녀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부분의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가족을 위해 참고 희생했다. 출산과 육아를 도맡느라 사회 활동에도 제약이 있었다. 딸들은 자라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됐고, 어머니들은 딸들이 그렇게 자립하는 걸 지켜보며 알 수 없는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딸들은 이제 어머니아내로 자기 역할을 한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편견,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어렵게 교수가 된 파울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에게 딸 아만다가 내가 필요할 때 엄마는 언제나 내 옆에 없었어, 엄마는 자기밖에 몰라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파울라 역시,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딸에게 존경받는 자랑스러운 어머니 되기에는 실패한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모녀 갈등이 여성 앞에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작가의 글

<다른 방에서는 심오한 여성적 정신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극의 주인공은 재능과 엄청난 노력 덕택에 남성적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회적 성공을 이뤄낸 여성입니다. 시초부터 육체적 힘의 주인들 즉,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폭력과 투쟁으로 설계된 세상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자도 무장을 해야 하지요. 주인공 파울라는 무장을 했지만 남성화되지 않은 채, 무쇠가 되지 않은 채 자신의 여성적인 부분도 내려놓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온 힘을 다해 한 가족을 지킵니다. 여전히 많은 여성이 지닌 그 무시무시한 희생정신 없이 말이죠. 그녀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직업적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열정을 지닌 사람입니다. 준비되지도 않았으며 지지해주지도 않는 사회에서 성실하며, 중요하고, 어머니인, 여자의 이런 현실은 우리 여자들에게 힘든 결과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과거의 어머니들은 교육 받을 기회가 없었고, 우리 곁에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가정을 일구는데 헌신하는 희생적인 어머니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인 우리는 자라면서 그런 자유를 박탈당한 여자의 모델을 인내하기 어려웠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자신들이 성장할 수 없음을 우리에게 투사했고, 우리가 학구적이고 자유롭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들은 우리가 그녀들의 치맛자락을 놓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버려진 듯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녀들은 자신의 삶이 부재했기 때문에 우리와 갈등했습니다. 우리가 자립하는 탓으로요. 직업적 성취를 이룬 오늘날의 어머니들은 사춘기 딸들과 다른 문제를 겪습니다. 이것은 물론 세대 갈등입니다.

그들은 반대되는 감정으로 반항심을 느낄 겁니다.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엄마는 없었어, 엄마는 자기가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엄마는 엄마를 위해서만 살아, 내가 성장하는 것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다른 방에서는 한 가지 질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와 내 딸 같은 여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어떤 직관에서 시작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싸움은 아주 험난하며 격렬할 것입니다. 과오는 클로즈업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딸들은, 틀림없이, 두 성별 사이의 사회적 평등으로 인한 싸움에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날 것입니다. 그 뒷걸음질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 단계이길 희망하며 욕망합니다, 우리에겐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아있으며 투쟁하는 여자 세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연극은 문학이고 분쟁이며 현재를 비추는 거울 혹은 미래에 대한 직관입니다. 우리의 두 주인공은 가장 격렬한 오후를 보내게 될 겁니다. 딸과 엄마, 가장 강력한 존재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