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행임 '아버지의 바다'

clint 2021. 7. 10. 07:20

 

 

울산의 대형조선소와 거기서 30년을 근무한 가장이 가동중단으로 면직을 당하게 되고, 차마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고,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오지만, 갈 곳이 없으니 한적한 거리의 벤치에 자리를 잡게 되고, 같은 처지의 실직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나 조선소의 현재 상황처럼, 두 실직자에게도 앞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에 치매증세가 자주 나타나는 할머니가 등장해 가족을 안타깝게 만들고, 다른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딸들까지 귀가해 아버지를 평소처럼 대한다. 남편의 실직을 모르는 어머니와 딸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여기에 할머니의 치매증세가 점차 심해지면서 아버지의 심적 고통은 깊어만 간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해서 의식적으로 치매를 앓고 있다고 꾸미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속에서 아버지의 실직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족이 충격을 받고 이와 곁들여 할머니까지 실종된다. 아버지와 가족이 할머니를 찾아다니게 되고, 할머니는 바닷가 방파제 둑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으로 설정된다. 결국,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죽음을 염두에 두는 듯 절망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가족은 절망 속에서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대단원에서 남편과 아내는 방파제 위에서 백색 중절 모에 정장을 한 할아버지와 양장 차림의 할머니가 너울너울 춤사위를 벌이며 파도 물결과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부부도 함께 파도소리를 들으며 춤사위를 벌이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난다.

 

 

 

 

영준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자신의 꿈만을 좇는 방관자였다. 영준의 의식 속, 아버지는 가해자이다. 자신의 좌절 끝에는 책임 질 줄 모르는 아버지의 뒷모습만이 차갑게 남아 있다. 그러나 늘 아버지를 배척하는 그의 무의식 속에는 그리움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의 의식 속에서, 아버지는 늘 방관자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밤낮없이 바닷물을 길어 나른다.

이러한 어머니의 기이한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울고 있는 자아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의식의 발로이다. 상처받을 아들에게 조차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묻었던 아픔은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과 애달픈 사랑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들에게 바다는 상처의 공간이고 치유의 공간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의 경제 활동은 자신의 권위를 만든다. 영준의 권위가 지켜 질 수 있었던 것은 미혜의 인내이다. 그러나 그러한 권위는 영원히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준이 겪게 되는 고난을 통해 상처도 드러나게 되는데.

 

 

 

 

한 가족이 겪게 되는 현실적 아픔과 가족 간의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가족들에게 닥친 고난을 통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이웃과 사회와의 따뜻한 관계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그리고 이 작품은 명예퇴직한 아버지의 힘든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긍지를 그려 내고자 쓴 작품이다. 아버지는 어느 시대이든 영원한 화두이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사내다움이라는 갓을 쓰고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시간들! 세상이 새롭게 단장될수록 강한 아버지는 이것저것 하나씩 내려놓을 게 많다. 치열했던 아버지들의 삶! 그들 방식대로 살아왔던 아버지에게 늘 명예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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