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각 장 별로 구분한 주제는 희(喜), 노(怒), 애(哀), 락(樂)이다.
제1장의 주인공인 희숙은 40대 후반이다. 조금 눈치가 없는 편이지만 단순한 만큼 솔직한 그녀는 동네 부녀회장 이기도 하며 최근 장기간의 실업을 극복하고 목욕탕 때밀이로 취직한 남편 때문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여자다.
제2장의 주인공인 노자 역시 40대 후반으로 고만고만한 형편의 희숙과 티격태격하지만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인물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녀의 꿈은 유치원교사로 여유가 된다면 놀이방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누구보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편의 외도 앞에 분노의 장을 열게 된다. 고향친구 누님과 사랑에 빠진 남편을 두들겨 팰 만큼 와일드하면서도 그만큼 이해하는 폭도 넓어 결국 가정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 희숙에게 남편의 불륜은 성별로 구분되는 반쪽의 배우자가 피해와 가해의 차원으로 나누어진 애증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와 이해가 가능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3장. 그리고 가장 이지적이며 이성적인 인물인 애선은 30대 초반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암환자가 되어버린(오로지 사탄의 박스 안에서 난무하는 수다로 인해) 처지에 충격을 가누지 못하나 결국 회충약을 먹는 것으로 비애의 해프닝을 접는다. 그녀의 꿈은 과거에는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형편상 애견센터를 차리는 편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4장. 주인공인 락녀는 20대 초반이며 직업은 호스티스다. 등장인물 중 유일한 미혼인 그녀는 술집종업원이라는 현직이 천형의 신분이 아닌 언제든지 전환할 수 있는 직업일 뿐이라 여기는 신세대인 만큼 가정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될 법도 한 핸디캡을 낙천적으로 극복하고 후일 애선의 도움으로 애견 미용사로 거듭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지만 초경을 치른 여성들의 꿈은 날개 달린 생리대다. 초경에서부터 폐경까지...오늘도 사탄의 박스에서는 그들만의 일상이 시작되고 끝난다.
작가의 글 - 정경진
‘사사로운 탄식의 박스’라는 부제처럼 목욕탕을 무대로 한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들이다. 허심탄회하면서도 속물적인 대화가 남발하지만 결코 천박하거나 추하지 않은 이 여성전용 공간에는 질투는 있지만 증오는 없으며 초감각적인 희열은 없는 반면 살만큼 산 사람들의 현실적인 희망은 존재한다. 일견 한심하고 유치해보이는 여성들의 못 말리는 수다가 단지 비생산적이고 피곤한 습관이 아닌 그들만의 카타르시스이자 공감대를 구축하는, 일종의 사회적인 도구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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