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신효진 '밤에 먹는 무화과'

clint 2020. 7. 31. 10:36

 

 

칠십대 비혼 여성인 윤숙은 뤽상부르라는 오래된 호텔의 장기 투숙객이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호텔 로비에 앉아 책을 읽거나 유령이 나오는 소설을 쓰며 보낸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자신의 사소한 생에 대해 들려준다.

 

 

 

밤에 먹는 무화과윤숙의 모습은 서사가 갖는 목소리의 월등함을 새삼 환기시킨다. 칠십대 노년의 싱글인 윤숙은 오래 된 호텔에 묵으며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을 즐긴다. 그걸 반기는 사람도 있고,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윤숙은 계속해서 말을 붙인다. 그가 왜 자꾸 사람들에게 관심을 표하고 부러 말을 거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년의 싱글 여성이기에 건넬 수 있는 말들이며, 보여줄 수 있는 장면임은 틀림없다. 작가는 왜 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극 중 윤숙은 자신에게 쿠폰을 주며 말을 건네는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먼저 말을 걸어줘서 고맙다고, 그러나 그에게 무례하게 접근하는 중년남자에게는 먼저 다가와 달라고 한 적이 없지 않으냐고 정색하기도 한다. ‘윤숙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가 쓰는 소설 속 주인공은 무도회에 초대받는 것을 소망한다. 나를 불러달라고, 나를 초대해달라고 말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윤숙의 모습과 닮아 있다. 노년의 여성에게 말을 걸어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딱히 어렵지는 않지만 차마 먼저 손 내민 적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며 아주 희미하게 꺼내 보이는 윤숙의 생은 길고 지난하며 광대하다. 그런 윤숙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어쩌면 그 사소한 이야기란 윤숙만이 알고 있는, 노년의 그만이 읊을 수 있는 작지만 거대한 비밀들이지 않을까. 나는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늙은 여자를 상상한다. 그 이미지만으로도 무궁한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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