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하>(78)는 구한말인 1920년대, 독립군 대장으로 만주에서 활약한 산포수 출신의 홍범도의 이야기로. 1978년 국립극단 공연되었고 그해 제4회 「반공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921년 6월 28일 - 이날, 시베리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우리 독립군들은 우군으로만 믿었던 러시아군에게 뜻하지 않은 무장해제를 당했다. 피압박 약소국의 해방운동을 적극 돕겠다는 러시아의 허울 좋은 선전에, 무기와 군수품이 아쉬웠던 독립군들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자유의 이익을 위해서 신의 따위는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일제와 야합하려던 강대국의 처사에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우리의 힘이 너무도 모자랐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悲劇의 한순간이다. 『흑하』는 이 가슴 아픈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의 글
〈黑河〉는 흑룡강의 다른 이름이다. 러시아에서는 아무르江이라고 부르는데, 저 몽고高原의 동부에서 발원하여 만주와 시베리아의 경계를 동쪽으로 흘러서 타타르海俠으로 들어가는 장장 萬里가 넘는 큰 강이다. 이 大河의 지류인 Dzeya 江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한 작은 고을 〈자유시>(지금의 스바보드느이)에서는 금세기 초엽 결코 놓칠 수 없는 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때는 1921년 6월. 만주와 연해주, 시베리아 방면에서 日帝에 맞서 항쟁하던 우리 한국의 무장독립군 부대가 공산러시아의 선전과 감언에 속아서 총합 2천여 명이 이곳으로 집결하게 되었는데, 그만 붉은군대의 무차별 사격으로 어이없게도 처참하고 슬픈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 그 민족적 수난의 이 한 가지 사건이 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일본으로부터의 8. 15 해방을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부산물이라고 산술적 단순논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이따금씩 만나본다. 심지어는 〈아메리카의 구호물자〉라는 표현조차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식자들을 만나게도 된다. 한다하는 사람이 공식석상에서 내노라 하고 유머까지 곁들여가면서 이런 말을 재미있게 자랑스럽게들 난 좀 다른 생각이다 그 속에는 우리의 자존과 긍지는 간데없고 자학과 비굴만 출렁대는 것 같아 여간 섭섭하고 불쾌하지가 않다. 여기서 나도 욕을 좀 하자면, 머릿속의 그 알량한 지적자만과 뱃속의 똥 가운데는 오직 「엽전근성」만 범람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뿐이다. 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이란 것이 그렇게 손쉽게 어느 하루 아침나절에 손바닥 뒤집듯이, 간밤 꿈에 떡 얻어먹듯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여기서 나는, 다만 그 당시의 국제열강의 힘의 역학이나 약소민족의 나라 없는 설움과 한을 얘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런 비슷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여실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껴오고 있는 실정이니까. 나의 하찮고 조심스런 생각은 우리의 독립과 자유가 어느 날 하늘에서 금방망이 뚝 떨어지듯이 그렇게 찾아온 것은 도무지 아닐 거라는 데 있다. 얼마나 기다리고 애쓰며, 어떻게 찾아 헤매고, 어떻게 얻어낸 우리들의 자유와 독립인가?
이건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느 누구의 독점물도 아니다. 돼서는 아니 된다. 이역 시베리아 하늘에 뿌려진 피 한 방울, 흑룡강 물구덩이에 흘러 보낸 한 소년의 꽃다운 젊음, 그 낯설고 거친 산과 들에 묻어버린 귀한 살과 뼈- 이것들 하나하나가 천년의 동토와 침엽수림 속에 버려진 채 썩고 썩어서 고이 잠들었다가, 어느 시기에 불끈 한 송이 붉은 꽃으로 찬란히 피어오르게 된 그것, 그것이 바로 고귀한 독립과 우리네의 자유인 것이다. 이 작품의 첫 기고는 3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오랫동안 주무른 셈이다. 처음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워낙 생소하고 힘이 부치고 불충분한 자료가 돼서인지, 잘 여물지 않고 마무리가 안 되어 꽤나 터덕거린 셈이다. 그대로 포기해버리고 휴지통에 넣고 말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아무래도 그릇이 안 될 것만 같았다. 두번 다시 이런 소재는 잡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초고로부터 두 번 손질하고, 또 정작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두 번을 다시 쓰다시피 읽었다 작품 성과란 그렇다고 노력에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만도 아닐 테니 미리부터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앞설 뿐이다.
줄거리
1921년 1월. 한국 무장 독립군들이 각각 도착하면 이들을 환영하는 러시아 병사들-, 오흘나는 독립군들에게 항일전선의 동맹군으로 출범할 것을 밝힌다. 또한 독립군들은 일본이 만주에서 개시한 보복작전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와서, 러시아로부터 물자의 지원을 받아 재무장하려는 것이다. 독립군 대장들은 이곳의 정세엔 개의치 말고, 다시 만주로 나아가 독립운동을 하는 데만 힘써줄 것을 독립군들께 부탁한다. 홍범도는 이곳에 온지 어언 6개월이 지나도록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은 홍범도뿐만 아니라 각 부대 대장들도 안타깝기만 하다. 이 때 오하묵이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임시사령관이 되어 도착한다. 오하묵은 독립군들은 물론, 사할린 부대들 까지도 자유시로 이동하여 군대통합을 해야. 만주로 출병할 수 있다고 하낟. 이들은 박일리야를 설득하기 위해 설유위원을 선정한다. 박일리야는 설유위원들을 체포한다. 그러나 뒤늦게 오하묵이 군정의회 임시사령관이 딘 것을 알고 박일리야는 불안해 지지만 대신에 오하묵과 대결하기 위해 홍범도를 비롯한 독립군들이 이동하지 못하게 수를 쓴다. 한편, 최진동이 감금된 것을 알고 이를 항의하러 온 홍범도는 박일리야의 우호적인 태도에 다시금 마음이 움직인다. 홍범도는 야간탈출을 하여 자유시로 옮겨 살 것을 단행한다. 한편, 최진동과 안무는 홍범도가 혼자 떠나는 것을 반대하지만, 홍범도는 오하묵이나 박일리야는 다 믿을 수가 없다고, 자기가 먼저 시험삼아 떠나서 양쪽 형세 돌아가는 것을 보고 유리한 편을 따르면 된다고 강경히 맞선다. 결국, 만주로 출병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기에, 이들은 홍범도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할 것을 바란다. (6월 7일 오후) 러시아 병사들이 총사령관을 영접한다. 홍범도도 환영의 인사를 받게 된다. 총사령관은 홍범도에겐 호의적으로 한국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며,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최진동과 안무가 도착하지 않음을 추궁하는데, 이때 안무가 도착했음이 알려진다. 모두들 회심의 미소 속에 홍범도는 안무를 맞이하러 나간다. 총사령관과 오흘나는 한국민족의 우수성을 인정하며, 빠른 시일내에 군대통합을 하여, 독립군들을 자기들의 계급투쟁에 이용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홍범도와 안무는 그간의 얘기들을 나누며, 최진동장군만 합쳐지면 곧 만주로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즐겁게 담소한다. 한편 총사령관은 군대통합이 더 이상 지연되면 강제력을 발동하여 무장해제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잠시 후, 최진동과 허욱재가 등장하여, 그간의 사정을 밝히면서 자칫 군대통합이 러시아의 딴 속셈이 아닌지 알아보자고 한다. 총사령관은 무장해제를 결심하고, 이에 다른 명령을 사할린 부대에 내린다. 홍범도는 무장해제란 약속과는 틀린다는 항변을 하는 데 이때 박일리야의 복명서가 전달된다. 이로써 군대통합은 순조롭게 실현되고, 홍범도는 즉시 만주로 출병하자고 하면서 모두들 즐거움에 들뜬다. 모든 부대들이 군대 이동을 완료했으므로 오늘로 고려혁명군정의회는 신생의 날을 맞이한다. 총사령관은 지나간 잘못은 모두 불문에 붙이고 군대개편에 따라 앞으로의 투쟁활동에 협력하자고 하면, 모두 이에 동의하는 병사들-. 홍범도는 만주로 쳐들어가자고 외친다. (6월 27일 오후) 군대개편의 발표를 기다리며, 박일리야는 개편이 불리할 경우 불복하자고 홍범도를 설득하지만, 홍범도는 만주출동을 앞두고, 좌우간 결과를 기다리자고 한다. 잠시 후, 각 부대가 분리되어 개편된 내용에 박일리야는 떳떳이 맞서서 청원을 하지만, 총사령관으 명령에 따라 무장해제를 결정한다. 홍범도는 만주로 나가야한다고 뛰쳐 나간다. (6월 28일 상오 1시) 무장을 해제하라고 외치는 러시아 병사들, 그러나 박일리야는 좀 더 시간을 끌어 보자고 하지만, 이미 포위망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홍범도, 결국 독립군들은 어처구니 없는 종말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드디어 공격개시의 무참한 총격 속에 이들 독립군들은 흑룡강가에서 개처럼 도살되고 만다. 광막한 벌판에 처절한 단말마의 울부짖음이 새벽하늘에 머리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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