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오진 '개인의 책임'

clint 2020. 7. 30. 13:48

 

 

대학 때 만난 진영과 기장은 7년째 연애 중이다.

우연히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진영은 기창이 일하는 카페로 찾아간다.

결혼 생각이 없던 두 사람은 앞으로의 시간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낳거나 낳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취직, 결혼, 임신, 출산 등 이전 세대에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세상은 우리에게 당연하기를 요구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정작 아무것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개인의 책임'은 쉬운 것 하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스스로의 노력을 저울질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개인의 책임진영이 마주하게 된 상황은 모든 미혼여성에게도 있을 듯한 일이기도 하다. 기창과 진영이 마주 앉아 있던 테이블, 그 테이블의 시간은 미혼인 여성뿐 아니라, 기혼인 여성에게도 불시에 찾아드는 사건일 터. 그녀의 미래를 송두리 째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순간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진영이라는 캐릭터만이 겪는 고유한 사건이라고 볼 수 없다. 출산에 대한 보장 없이 찾아오는 임신은 여성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사건이다. 여성의 대다수가 임신이라는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계획하지 않은 일이 발생해서가 아니라, 그 계획되지 않은 일이 내 신체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공포의 수치는 남성과 여성에게 결코 대등하지 않게 부여된다. 임신을 제일 먼저 알게 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려하는 그 대목에서부터 여자는 홀로 고민을 하게 된다. 분명 연애는 두 사람이 했는데, 임신테스트기에 빨간 두 줄이 명백해진 시점부터 진영은 완전하게 혼자임을 깨닫는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몇 년간 내 곁에서 한 치도 멀어진 적 없던 남자가 새삼 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기창이 어떤 말을 내뱉든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속수무책으로 헛소리나 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기창이 아무리 동참하려 해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 앞에서 진영은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곧 결혼하고 아이들 낳을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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