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하인리히 하이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

clint 2020. 4. 15. 10:02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대한 전설은 바그너 시대엔 극히 전형적인 신세대들의 주제였다. 이 이야기는 “1600년대에 구전되는 전설의 형태로 생겨났었지만, “겨우 19세기 초반에서야 문학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줄거리는 통일된 형태를 이루고 있지 못했다. 전설의 배경이 되는 홀란드(Holland)는 오늘날 네덜란드에 속하는 일부 지역으로서, 암스테르담, 영어식 발음으로 헤이그라고 불리는 덴 하크(Den Haag), 그리고 로테르담 등의 북해 연안의 항구도시들이 이 지역의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과거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바 있어, 일명 스페인령 네덜란드(Spanische Niederlande, 1556~1581)라고도 불렸다. 그 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네덜란드는 유럽의 열강으로 등극한다. 그러면서 네덜란드는 역사상 최고의 황금 세기라 불리는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네덜란드의 부()는 항해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들의 배는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 동인도까지 다다랐으며, 오늘날 인도네시아라 불리는 곳, 본국보다 몇 배나 더 큰땅을 식민지로 개척하기도 했다. 항해술을 통해 얻어낸 부와 무역 능력에 대한 의식은 서서히 민족적 자부심으로까지 발전해갔다. 원래 네덜란드인들은 신을 두려워하는 기독교 민족이었으나, 점차 기독교적 겸손이나 경건성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바로 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네덜란드인의 전설이 생겨난 것이다.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험을 즐기는 선장이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악마의 함정에 빠져 저주를 받게 된다. 그에게 내려진 저주는 유령선을 타고 폭풍이 부는 바다를 영원히 떠돌아다녀야 하고, 만나는 배마다 불행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선 난파를 당해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구출된 뱃사람들의 체험과 미신 섞인 환상, 그리고 그들의 허풍 또는 거짓말 등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바람을 기다리다가 불길한 징조를 알려주는 유령선들을 보았다는 그들의 말에서 시작하여 전설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그너가 읽은 하이네의 글은 슈나벨레보프스키 씨의 회고록(1834)이다.

그 나무로 만들어진 유령선, 이 무시무시한 배는 네덜란드인이란 그 선장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선장은 한때 모든 악마들에게 이름 모를 어느 지역에서 엄청난 폭풍이 일고 있는데도 배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다고, 그리고 또한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라도 항해를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악마는 말꼬리를 잡으며 그가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 바다를 방랑해야 하며, 오로지 한 여성의 사랑 맹세를 통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여성의 사랑 맹세를 믿지 않은 멍청한 악마는 괘씸한 선장에게 매 7년마다 상륙하여 결혼하고,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구원 작업에 임해도 될 것을 허락했다.” (발췌)

 

 

 

 

하지만 하이네의 글을 그대로 작품으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다. 몇 가지 변화를 주게 된다. 우선 네덜란드인의 반대 인물에 해당하는 에릭이라는 인물을 창조해낸다. 네덜란드인과 에릭 간의 대결구도, 여주인공 젠타를 둘러싼 삼각관계는 순수한 바그너의 작품이다.

 

7년 만에 육지를 밟게 된 네덜란드인의 마음속에는 희망절망이라는 두 개의 감정이 교차되고 있다. 특히 전설 속에서 주목을 끌었던 것은 우선 악마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악마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악마와 맺은 계약에 대한 내용은 모두가 네덜란드인의 독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네덜란드인의 방랑의 원인은 저주이고, 그 저주는 네덜란드인 자신의 오만함에 기인하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된 저주인 셈이다. 네덜란드인은 오로지 한 여인의 사랑을 받아낼 때에만 이 저주에서 벗어나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만, 그 여인은 결코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7년마다 육지에 내려가 결혼을 하고 사랑의 맹세를 받을 기회가 있지만, 언제나 거짓된 사랑만을 경험하고 다시 바다에서 방랑하게 된다. 즉 네덜란드인의 방랑은 영원히 반복되어야 하는 형벌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고 만 것이다. 자연스런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세상 종말을 알리는 최후의 심판밖에 없다. 세상의 마지막 종말을 동경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실현해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게 사랑은 진정한 휴식을 약속하는 열쇠였지만, 젠타를 만나기 전까지 그 사랑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대상일 뿐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다름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구원의 핵심은 바로 희생적인 한 여인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