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존 마스턴 '네덜란드 매춘부'

clint 2020. 1. 25. 21:08

 

 

 

존 마스턴의 <네덜란드 매춘부(The Durch Courtesan)>1605626일 출판조합 기록부에 등록되었고 같은 해 존 하제스에 의해 사절판으로 출판되었다. 작품의 저작 연대는 마스턴이 네덜란드 매춘부의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 몽테뉴의 <에세이(Essays) >가 영어로 번역된 1603년에서 1605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사설극장인 블랙 프라이어즈(Blackfriars)’에서 여왕폐하 소년극단’ (Children of her Majesty's Revels) 의해 초연되었다

 

 

 

 

 

<네덜란드 매춘부>는 네덜란드 출신의 창녀를 등장시키고 다양한 외국어 텍스트와 원전을 인용해 이국적인 색채를 풍기지만 그 배경은 런던이다. 동시대 런던의 사실적인 묘사는 프란세스치나가 쓰는 네덜란드 억양의 영어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발사로 변장한 코클드모이가 쓰는 사투리와 대조를 이룬다, 주인공을 네덜란드 매춘부로 한 설정은 평범한 매춘부에서 복수를 위해 살인까지 교사하는 악의 화신으로 변모해 남성에게 위협을 가하는 파괴적인 여성을 손쉽게 타자 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17세기 초 런던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해 국내외 각지에서 상인과 이주민이 몰려들었다. 매춘은 런던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맞물려 호황을 누리던 산업으로 이 시기 많은 작가들이 창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썼다. 특히 네덜란드 매춘부의 이미지는 당시에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유곽의 이름이 네덜란드캠프였올 정도로 전형적인 것이었다. 이런 상업주의적 배경 속에서 타락한 인간관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창녀 프란세스치나와 포주 메리포가 운영하는 유곽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프리빌은 도덕적 타락을 경고하는 친구 말뢰르의 충고에 내 집이 매음굴이 되지 않으려면 할 수 없지 않은가,() 네덜란드에서 전쟁이 계속되어야 우리 영국에서 전쟁이 안 일어나지라고 매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매춘이 정숙한 아내와 가정을 남성의 욕망과 성적인 타락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피난처라는 프리빌의 주장은 정숙한 아내와 매춘부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1605년에 나온 사절판 패러텍스트(paratext)에서 작가는 이 작품의 주제가 매춘부의 사랑과 아내의 사랑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합법적인 사랑을 위해서 창녀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주인공 프리빌을 통해 마스턴은 여성을 정숙하고 순종적인 아내 아니면 타락하고 사악한 창녀로 이분화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의 횡포와 모순을 잘 보여준다. 자신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점잖은 집안의 정숙한 처녀와 결혼하려는 프리빌에게 격렬하게 분노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창녀 프란세스치나와 달리 베아트리스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지조를 시험하려는 프리빌의 잔인하고 무책임한 시도에도 그를 비난하지 않고 끝까지 헌신적인 태도를 지닌다. 이런 차이는 감정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프란세스치나보다 희생적이고 순종적인 베아트리스가 가부장제에 쉽게 편입될 수 있는 바람직한 여성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내연관계를 유지했던 프란세스치나를 쉽게 버리는 프리빌은 결혼관계에서도 아내 베아트리스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 우려된다. 슬픔과 비탄에 빠져 거의 자살직전까지 갔던 베아트리스에게 제대로 된 사과의 말도 하지 않는 프리빌은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한다. 게다가 타락하고 사악한 창녀를 버리고 정숙하고 온순한 베아트리스를 취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뻔뻔스러움을 보인다. 여기에 작가는 크리스피넬라란 다소 진보적인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당시 결혼에서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위선과 남녀 관계의 불평등함에 주목하게 한다. 그녀는 동등한 남녀관계가 없는 결혼생활에서는 절대로 미덕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으며 따라서 자신의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결혼하기들 거부한다. 또한 그녀는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로 표현하고 심지어 미덕이라는 관념을 부정하고 자신이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 관습에 따르기를 거부한다. 크리스피넬라의 여성 중심적인 솔직한 발언은 여성을 창녀와 아내로 나누는 이분법이 부자연스러움을 고발하며 나아가 사랑을 빼앗긴 프란세스치나의 항변과 분노에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크리스피넬라가 부부의 사랑과 어느 정도의 권한을 담보로 타이스퓨의 결혼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결국 그녀도 순종적이고 침묵을 지키며 남편의 성적 요구에 응하는 아내의 모습으로 변하리라는 게 예측된다. 이에 덧붙여 마스턴은 멀리그럽이라는 상인 계층 부부를 등장시킴으로써 가정/창녀 집, 정숙한 아내/타락한 창녀라는 이분법을 좀 더 흐리게 만들고 있다. 멀리그럽 부부의 관계는 군림하는 남편과 복종하는 아내라는 가보장적인 결혼생활과 차이를 보인다. 남편은 아내를 의지하며 아내의 잘못을 비난하지 않고 동업자로 대한다. 반면 아내는 남편과 함께 술집을 운영하며 가정과 영업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에 위치해 남성고객들에게 자신의 성을 상품으로 제공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현실적이고 저속한 면이 있으나 서로의 감정에 충실하고 부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상호의존하고 협조한다는 면에서 철저히 가부장적인 다른 두 쌍의 결혼 관계와 비교된다. 작가는 멀리그럽 부부에게 풍자의 화살을 돌리지만 이들을 통해 근대 초기 지본주의 사회에 새로 부장하는 시민계층의 도덕관과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존 마스턴 (John Marston)

엘리자베스 시대 말기와 제임스 1세 재위 초기에 활동했던 시인이자 희곡 작가다. 작품 활동은 비록 10여 년에 그쳤지만 신랄한 풍자와 난해하고 독특한 스타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옥스퍼드셔에서 존 마스턴과 마리아 마스턴 사이에서 태어나 1576107일에 세례를 받았다. 존의 아버지는 당시 네 개의 법학원(Inns of Court) 중 하나인 미들 템플 (Middle Temple)의 저명한 변호사였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난 마스턴은 1592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1594년 졸업 후 법조인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뜻에 따라 미들 템플에 입학했지만 시와 희곡 창작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마스턴은 미들 템플에 거주하면서 1598년에 로마시대 시인 오비디우스와 유베날리스의 풍자시를 모방한 피그말리온의 이미지의 변신(The Metamorphosis of Pigmalion's Image)악행의 처벌자(Scourge of Villanie)를 발표했다. 그의 풍자는 당대의 다른 풍자가들보다 훨씬 신랄하고 난해해 해독이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결국 1599년에 그의 풍자시는 검열에 걸려 캔터베리 대주교와 런던 주교의 명령으로 공개적으로 불태워졌고 출판이 금지되었다.

마스턴은 셰익스피어와는 달리 대중극장이 아니라 상류 계층을 위한 사설극장인 블랙프라이어즈의 소년 극단을 위해 주로 작품을 썼다. 초기작 안토니오와 멜리다 (Antonio and Mellida)(1600), 안토니오의 복수(Antonio's Revenge)(1601)를 비롯해 1603년에 마스턴이 블랙프라이어즈의 주주가 되면서 쓴 풍자적 희비극 불평분자(The Malcontent)1605년에 나온 네덜란드 매춘부(The Dutch Courtesan)가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1607년 마스턴은 헌팅턴 백작을 위해 가면극인 애쉬바이의 여흥(The Entertainment at Ashby)을 썼는데 풍자와 조롱으로 제임스 1세의 분노를 사서 투옥된다. 감옥에서 나온 후 그는 작품 활동을 접고 블랙프라이어즈 극장의 지분도 팔아버린 후 제임스 1세의 궁정교회 목사였던 장인 밑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160912월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된다. 당대 작가들은 돌연히 성직자의 삶을 선택한 마스턴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고 이를 흥미롭게 생각했으나 그는 1634년 죽을 때까지 약 25년간 성직자로 헌신했다.